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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로빈 May 09. 2022

완전하지 않아 더 아름다운

초승달을 바라보며


밤하늘의 보름달을 발견하면 반가운 마음에 사진부터 찍게 되지만 초승달이 떠 있을 때는 왠지 그리움과 애틋함이 느껴져서 그저 바라보게 된다. 그 감정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다가,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서 기안84 작가의 전시회를 둘러보던 주호민 작가가 '그림에 있는 초승달은 본인의 채워지지 않은 욕망을 나타낸 것인가'에 대해 묻는 것을 보고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보름달이 꽉 찬 달이라고 한다면 초승달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어두운 밤하늘에 어느 한 구석이 빈 채 떠 있는 초승달의 불완전함과 외로움에 마음이 쓰인다.






내 마음 한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 텅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살아왔다. 사랑할 만한 것이라면 무엇에든 빠져들었고 아파야만 한다면 기꺼이 아파했으며 이 생에서 다 배우지 못하면 다음 생에서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그 텅 빈 부분은 채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해도. 그건 슬픈 말이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면서 나는 내가 도넛과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됐다. 빵집 아들로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깨달음이었다. 나는 도넛으로 태어났다. 그 가운데가 채워지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_김연수,『청춘의 문장들』


주변에 사람이 많든 적든, 뭔가를 얻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누구나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나 바라던 목표를 이루었을 때 예상치 못하게 공허함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원래부터 내 안에 다른 것들로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끊임없이 메워나가야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비어있는 부분도 온전한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인 것이다. 어딘가에 완전한 행복이 있다고 믿으면 주변의 소소한 즐거움을 놓치는 실수를 하듯이 완벽한 자신을 기대하다 보면 진정한 나를 스스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면 외로움과 공허함은 더 커지게 될 것이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자존감이 낮아지게 된다. 또한 이미 가진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을 불행하게만 여기는 안타까운 상황이 생긴다. 물론 내 안의 빈 부분을 인정한다고 해도 찾아오는 고독감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것을 부정하기보다 비교적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어느 산모가 아기를 낳고 건강 상태가 조금 좋지 않아서 CT를 찍어봤는데 잠시 후 혈압과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농담도 나눌 정도였지만 30분 있다가 그 산모가 사망을 했어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의사로서 그게 얼마나 괴로운지 몰라요. 저는 빚을 갚자고 생각했어요. 한 명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더 살려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시작을 했죠. 그렇지만 잊히진 않아요. 제가 죽을 때까지 기억에 안고 가야죠.  _산부인과 의사 전종관
실은 전, 말기 암 환자의 가족이었어요. 제가 의과대학에 들어가고 2년 차 되었을 때, 저희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셨지만 재발하셔서 마지막 한 달간 정말 고생하시다 돌아가셨거든요. 저는 그때 철이 없었죠. 투병하시던 2년의 시간이 기억나지 않아요. 암 환자의 가족으로서 느꼈던 마음이 진료 현장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그렇게 힘들어하실 때 진통제 하나 못 드렸던 게 저는 너무 속상해요. 그래서 회진을 돌다가 환자가 밤새 고통으로 힘들었다고 하면 어머니가 생각나면서 감정 이입이 돼요.
제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하며 진료를 하다 보니, 암이 우리의 생명을 끊는 순간이 온다고 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 속에 추억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런 것들은 교과서에 없는 내용이잖아요. 이건 어머니가 저에게 가르쳐 준 교훈이라고 생각해요. _간담췌외과 의사 강창무


부족함을 인지하는 순간 성장의 원동력을 얻기도 한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방송에서 각 분야의 뛰어난 의사들을 인터뷰한 것을 보았다. 어쩌면 우리는 만족스러운 부분을 발전시키기보다 아쉬운 부분을 채워가려는 동기가 더 크지 않나 싶다. 자신 안에서 마음 아프게 자리 잡은 기억을 만회하고 싶은 의지가 추진력을 만드는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 행동과 결과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현재에 최선을 다하면서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사소하지만 나에게도 그러한 경험이 있다. 캐나다를 여행할 때 같은 홈스테이에서 머물렀던 브라질인에게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잘 알지 못했는데, 나는 서울의 지하철이 얼마나 편리한지 등에 대해 은근히 자랑을 늘어놓았다. 얼마 후 그 브라질인에게서 한국과 일본 여행을 결심했다는 연락이 왔고 그때부터 나는 어디를 소개해야 좋을지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나름 결정한 곳은 창덕궁과 인사동이었다. 왠지 한국에 처음 오는 외국인이라고 하면 반드시 들러야 할 대표적인 장소가 아닐까 싶어서다. 오랜만에 만나 호기롭게 창덕궁에 데리고 가서 둘러보는데 궁금해하는 점들이 꽤 있었다. 처마에 있는 저 인형은 무엇인지, 여기는 뭐하던 곳인지 등을 물어보는데 하나도 제대로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영어로 설명해야 하는 부담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나조차 창덕궁에 대해 잘 몰랐다. 심지어 일본에서 방문한 곳들과 비교하며 이야기를 할 때 자존심은 상했지만 이렇다 할 변론을 하지 못했다. 그 일은 계속 내 머릿속에 맴돌았고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해서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언제일지는 몰라도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그때와 같은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고 부끄러움을 만회할 기회가 있었으면 해서다. 학창 시절에는 그토록 암기하기 귀찮았던 것들이 동기가 부여된 순간 싫지만은 않았다. 또한 그 과정에서 유적지와 박물관을 둘러보는 취미가 생겼고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아직 부족하지만 아쉬운 경험으로 인해 오히려 새로운 취미와 공부에 재미를 붙였으니 꽤 좋은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밤하늘의 초승달이 마냥 슬프거나 안타깝지만은 않다. 달이 차올라 보름달이 되어도 다시 초승달로 돌아가는 것처럼 항상 완전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의 빈 곳을 발견하였다고 해서 자책하거나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다. 되려 그 부족함을 극복하기 위해 에너지를 발휘하여 성과를 이룰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빈 부분에서 느껴지는 내적 갈등을 해소하고 균형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유인이 된다. 사람의 강점이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측면이 사실은 내면을 부단히 채우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그래서 외부의 시선과 평가가 좋다고 해도 자신은 스스로 부족함을 끊임없이 만회하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겸손하게 된다.

또한 빈 곳을 반드시 채우지 않는다고 해도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 완벽해 보이는 사람보다 어딘가 빈틈이 있는 사람에게 정이 가듯 초승달도 그렇다. 꾸준히도 밤하늘에 나타나서 위로를 전해주는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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