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평범해진 내가
네이버 블로그에 (특히 답답한 일은 많고 얘기할 곳은 마땅치 않은 취준생 시절) 간간히 내 이야기를 쓴 적은 있었지만,
푸념에 가까운 정리되지 않은 글에 유저들은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러다 피렌체에서 머무르던 작은 호텔이 마음에 들어 올린 숙소 리뷰가 제법 인기를 끌었고, 재미가 붙었다.
워낙 여행을 좋아하니 여행지 숙소 리뷰를 꾸준히 썼고, 뒤이어 취업을 준비하면서는 하나하나 취득한 자격증 공부 방법 등을 공유했다.
방문자 수는 계속 올라갔지만, 어느 순간 허무함을 느끼고 그렇게 오래 운영하지도 않은 블로그를 접었다.
훨씬 늦게 접한 브런치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많았다.
'아하!'보다는 '음(끄덕끄덕)'하게 하는, 신문으로 치자면 기사보다는 칼럼에 가까운 글들.
모바일과 웹 버전 모두 UX도 단순하고 편리했으며, 깔끔한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다.
자연스럽게 출퇴근길에 (가끔 업무시간에도) 애용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 달쯤 사용했을까, '나도 이 공간에 글을 쓰고 싶다, '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는 제일 큰 매력은 작가라는 호칭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과 달라'라는 굳건한 믿음이 세월에 걸쳐 조금씩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
그러다 정신 차려 보니 결국 평범해져 있는 사회초년생 직장인에게,
'작가'라고 불리는 상상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그래서 글을 쓰게 된다면 주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지금이 글을 꾸준히 쓸 수 있는 환경인가, 등등을 고민한 끝에 지원을 했다.
브런치 팀, 감사합니다.
어느 분야든 의지는 넘치고 경험은 부족한 아마추어에게는 기회 자체가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물론 기쁨을 만끽할 새도 없이 일이 몰아쳐서 허덕였지만,
덕분에 월요일 아침을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첫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긴 했는데.
지금껏 작가 하면 떠올려왔던 - 그리고 나도 그렇게 되길 꿈꾸던 - 이미지가 있었다.
프리랜서처럼,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주변도 한 번 둘러보고, 다른 손님들과 눈이 마주치면 눈인사도 하고, 약간 인상도 쓰면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
현실은,
글쎄, 말 그대로 현실이다.
만나기로 한 친구의 야근으로 약속이 파토났고,
집에 와서 혼밥으로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저녁을 와구와구 먹었고,
요즘 빠져있는 중국 드라마를 3편째 틀어놓고,
얼굴에는 마스크팩을 붙이고 맥주를 홀짝이면서 첫 글을 쓰고 있다.
꿈꾸던 첫 글쓰기 장면과는 좀 많이 거리가 있지만, 나쁘지는 않다.
고민하다가,
‘책에서 만나 마음에 들어온 구절과, 그 구절을 보면 떠오르는 장면과 사람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쓰기로 결정했다.
물론 글쓰기도 운동처럼 꾸준히 쓰는 것이 제일 중요한 만큼, 중간중간 다른 주제에 대해 쓰고 싶어지면 언제든지 쓸 예정이다.
나의 가장 오래되고 마음에 드는 습관 중 하나가 필사이기 때문이고,
내가 책의 특정 부분을 필사하는 이유는, 가끔은 그 구절 자체가 아름다워서도 있지만, 그 구절을 읽으면서 떠오른 내가 만난 사람들이나 내가 겪은 경험에 대한 내 감정을 보다 잘 표현해주기 때문이다.
필사에 대해 애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반납하기 전 필사하는 경우, 이전에 같은 책을 빌렸던 사람들이 나름의 표시를 해둔 부분이 있는데,
정말 신기하리만치 내가 표시하는 부분과 겹치지 않는다.
사람마다 겪은 순간이 다르다 보니 와 닿는 구절이 이렇게 다르구나, 생각이 새삼 들 때가 많다.
아무튼, 이 공간의 테마도 정할 겸, 이렇게 얼렁뚱땅 첫 글을 발행해본다.
잘 부탁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