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이 짧은 생각(短想)이 아니라 끊어진 생각(斷想)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합계출산율 0.72명(2023년 기준)의 시대.
이 정도면 이제 임신이 여자의 인생 퀘스트 중 하나일 것까지는 없는데, 결국 내 자의로 임신을 했다.
딩크로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한 기간이 있었지만, 기나긴 고민과 짧은 결심 끝에 시도를 했고, 운이 좋게도 한 번에 임신이 되었다.
임신을 하자마자 마주한 건 거룩한 모성애...일 리는 절대 없고, 100% 현실이었다.
임신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시작된 엄청난 입덧은 울렁거림과 구토와 예민한 후각을 동반했고, 그런 사람에게 왕복 2시간 지하철 출퇴근은 무리였다. 잠깐 숨을 들이쉬는 순간 휘몰아쳐오는 온갖 생물과 무생물의 냄새란.
자차 운전으로 노선을 틀었지만, 서울 도심에서 '빠르게' 가고자 택시를 타는 것은 바보라는 말이 있듯, 출퇴근 시간대 올림픽대로 운전은 지하철 출퇴근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게다가 나는 시니어가 아니므로 회사는 주차 자리를 제공해주지 않았고, 강남 한복판 민영 주차장은 한 달 주차비가 30만 원에 육박했다.
통근 문제 외에도 임신한 상태에서 계속 다녀도 되는 직장이 맞는지 여부를 매일 고민했고, 결국 임신 확인 후 한 달쯤 되었을 때 회사에 퇴사를 통보했다. 떠나는 마당이고 너무 초기라 굳이 임신 소식은 알리지 않았다.
분명 그동안 쌓인 자잘한 불만이 없지는 않았지만, 결정적 트리거는 임신이었다.
재취업이 어렵지 않은 직종이기는 해도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허무한 퇴사였다.
그렇게 힘들고 큰 현실 하나를 제거 후 기혼이고 육아 중인 선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의견이 나왔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저렇게 낮은 것은
미시적, 거시적 시선이 일치하지 않아서인 듯하다.
거창해보이지만, 쉽게 말하자면 대충 이런 뜻이다.
우리나라 국민들 모두 이 나라의 출산율이 낮은 것에 통탄하면서 나라가 자연소멸할 것을 걱정하지만,
당장 내 몸이 힘들기에 지하철, 버스 임산부배려석을 굳이 비워두지 않고,
당장 내 사업장의 운영이 중요하기에 굳이 출산휴가/육아휴직을 법에 정한 기간 동안 주지 않거나, 쓰고자 하면 각종 눈치와 불이익을 주는 것.
개인적인 경험으로 풀어보자면
거의 100%에 수렴한 높은 서류 합격률에도 불구하고, 면접장에서 기혼 무자녀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짜게 식는 면접관의 표정과, 그 사람들이 내 이력서 위에 휘갈겨쓴 '기혼'이라는 메모, 그리고 결국 최종에서는 탈락하는 과정,
위 사실을 하소연하자 "근데 네가 사업 운영하는 대표라고 생각해봐, 너 같아도 같은 조건이면 미혼 여자나 미/기혼 남자를 뽑는게 합리적이지 않겠니...?"라고 말한 엄마,
우여곡절 끝에 복직하게 되어 임신 소식을 알리니 축하한다면서, 출산 후 복귀는 3개월 미만 기간 안에 가능한지 물어보는 시니어,
임산부배려석에 앉아 분명 휴대폰을 보고 있었는데 내 임산부뱃지를 보더니 갑자기 눈을 질끈 감고 자는 척 하는 아저씨,
용기내어 자리 좀 양보해주십사 했더니 "아이고 유세는, 나도 한 때 임산부였어!!"라고 짜증내는 아주머니도 겪었다는 지인의 썰까지.
...이미 다 보고 듣고 한차례씩 분노한 뒤 지나간 일인데, 이렇게 글로 다시 쓰니 또 한번 마음이 갑갑하다.
위와 같은 상황이 계속되는 이상, 지원금을 100만 원, 200만 원을 늘려도 여자들은 아이를 가지지 않을 것이다. 나만 해도 뱃속의 아기가 너무 소중하고 기다려지긴 하지만, 임신 전엔 몰랐던 현실을 알게된 뒤 절대 둘째는 없을 것임을 다짐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