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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 Shrimpy Jan 20. 2023

일상을 수련처럼

요가를 처음 시작한 지 7년이 되었다

요가를 만나기까지


돌아보면 나는 꾸준히 운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대학 입시가 끝나고는 당시 열풍이 불었던 핫요가를 했고, 대학 시절 방학 때는 수영을 했으며, 프로 복서로 데뷔한 친구의 추천으로 복싱도 배워보았다.

취업준비생 시절에는 커브스 센터를 주 3~4회씩 다녔고, 입사 직후에는 2년 간 필라테스를 꾸준히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운동들 사이사이 다니던 헬스, 그 외에도 어릴 때 하던 농구, 축구, 탁구, 배드민턴, 골프 등등을 포함하면 지금까지 아무 운동도 하지 않고 지내는 기간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주기적으로 새로운 운동, 심지어 다이나믹한 운동 위주로 찾아다니던 내가

돌고돌아 소위 '정적인 운동'으로 인식되는 요가에 정착하게 되었을까.


그전에도 여기저기서 단기적으로 요가수업을 수강하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꾸준히 하고 있는 요가 수련의 시작은 2016년 즈음이었다.


출근 전 진행되는 아침 필라테스를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사정이 있어 수업을 빠지게 되어서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다른 요일에 갔더니 그 날은 요가 수업이 진행되는 날이었다.

호흡법부터 필라테스와는 전혀 달라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몰입해서 1시간 동안 요가를 하고 나니 야근과 사회생활에 지쳤던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지는게 느껴졌다.

그 다음 달에는 아예 요가로 등록해버렸고, 퇴사할 때까지 아침 요가 후 출근이 일상이 되었다.


몇 년이 지나고 의미를 부여해보자니 운명 같다.


왜 하필 요가인가?


1. 내가 만난 선생님들

무엇보다 지금까지 만난 선생님들의 덕이 큰 것 같다.

그동안 꽤 오랜 기간 함께한 요가 선생님 서너 분이 계셨는데, 모두 정말정말 다정하고 멋진 분들이었다.


내 첫 요가 수업을 맡으셨던 선생님께서는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수업 전에는 그 날의 컨디션을 물어봐주시고, 몸상태를 세심하게 관찰했다가 수업 끝나고는 걱정해주시거나 칭찬해주셔서 보살핌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 컨디션은 어떠세요?"

("저 어제 과음했어요..."라고 하면 그 날 머리서기나 후굴은 스킵해주시던 배려왕...)

“살이 왜 이렇게 빠졌어요.“

“처음 오셨을 땐 자세가 곧았는데, 척추가 왜 약간 휘고 있죠?”

(그 때 막 부서를 옮기고 듀얼 모니터를 쓰기 시작하고 야근이 몰릴 때였다.)

“오늘 자세 정말 잘 나왔어요! 확실히 늘고 있네요.“


또 수업 중에는 “조금 더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라고 하실 때가 많았는데,

요가 특성상 선생님들께서는 절대 무리할 것을 권하시지 않고 평소 학생의 수련 양이나 유연성을 눈여겨 보시다가 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권하신다는 걸 알기 때문에, 선생님을 믿고 눈 딱 감고 해보면 정말 조금 더 내려갈 수 있고 몸이 더 열리던 적도 많았다.


수업 마무리 즈음 사바아사나(Savasana, 송장자세)를 할 때는 조명을 꺼주시고 아로마 오일을 살짝 얹어주시면서

찌푸리고 있던 미간, 꽉 다물고 있던 입...등등에서 모든 힘을 빼라고 해주셨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몸 구석구석에 힘을 주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며 조금 더 이완할 수 있었다.

힘든 일이 겹치는 시기에는 이 시간에 나도 모르게 찔끔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러면 선생님은 모른 척 조용히 지나가 주시고, 수업이 모두 끝난 후 수강생 모두에게 위로가 되는 말 한마디를 해 주시고 나마스떼- 라고 해주셨다.


요가를 하는 친구들과 발리로 요가 여행을 떠난다고 말씀 드렸을 때는 여러 요가원과 비건 식당들을 추천해주셨다.

이후 선생님도 수련을 위해 발리에 머물기로 하셔서 수업을 더 이상 못하게 되셨을 때 어찌나 서운하던지.

이어서 오신 선생님도 정말 좋으셨지만, 요가의 처음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이라 특히 기억에 남는다.


2. 요가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개인적으로 요가하는 분들이라면 한번쯤은 각자의 선생님들로부터 들어봤을 법한, 그리고 나도 앞서 언급한 선생님들로부터 배운, 요가가 일반적으로 가르쳐주는 삶의 태도가 있다.


1. 마음의 평화

2. 남과 비교하지 않기

3. 나를 무리하게 푸시하지 않기

4. 내 몸에 집중하기

5. 수련을 계속하는 한, 나는 어제보다 나아지게 되어있다.


이런 태도들을 수련 때마다 듣고 체득하다 보면, 운동을 넘어서 ‘수련’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이 때 내게 요가가 없었더라면 더 일찍 퇴사했을 거란 말을 자주 했다.

분에 못 이겨 혼자 참다가 나가거나, 누구 한 명 들이받고(…) 나가거나.

요가를 한다고 해서 원래 자주 초조해하고 성급한 성격의 내가 보살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신 같은 횟수로 욱하더라도 그걸 다스리려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이게 정말 내가 화 낼 일인지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3. 함께 하는 사람들

요가는 혼자 하는 수련이면서도 동시에 함께 하는 운동이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함께 호흡하는 법, 함께 근육을 쓰는 법을 배우면서도, 옆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준다.


같은 수업을 듣는 분들과는

“오늘 수업 정말 좋았죠?”

“오늘은 은근히 빡세네요!”

등등의 담소를 나누며 알게 모르게 친근함을 쌓아갔고, 사정이 생겨 수업을 쉬게 되었을 때는 어느 요가원에서든 또 만나자고 아쉬워했다.


그리고 친구들 중 같은 시기에 요가를 시작한 사람들이 있는데, 제일 큰 힘이 된다.

일주일에 요가를 하는 횟수, 실력, 수련하는 장소 모두 다르지만, 새로운 자세에 도전하거나, 안 되던 자세가 되거나, 그 날 수련에서 좋았던 점 등등을 유선/무선으로 나누고, 가끔 시간이 맞고 좋은 수업이 생기면 원데이 클래스도 같이 참여한다.

시작은 같았지만 몇 년이 지나고 나니 그 동안 꾸준히 요가를 해온 사람, 드문드문 해오던 사람, 그리고 수험생활로 거의 하지 못했던 나는 당연히 엄청난 실력 차이가 생겨버렸다.

그렇지만 우리가 공유하는 것이 ‘요가’이기 때문에 각자 상황에 맞게 수련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고, 비교하지는 않게 된다.

그리고 요가를 좋아하는 우리지만 돌아가면서 ‘요태기(요가+권태기)'라고 부르는 시간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데, 그때마다 다 지나가리라고 북돋아주고, 수련이 정말 좋았던 날은 이러이러한 점이 좋았다고 이야기해주며, 다른 나라의 요가원 소개글을 공유하면서 같이 또 가보자고 하면서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

어떤 동작이 되었을 때의 좋은 기분을 공유하고 가끔 요가복을 함께 공구하는 것(?)까지.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조금 더 일찍 요가를 접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앞으로도 요가를 계속 하게 될까?


사실 이 글은 요가를 시작하고 2년 정도 되었을 때 쓰기 시작했다.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마무리하지 못했던 건, 요가에 대한 내 마음이 정리된 글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벅차기도 하고 자주 변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 7년이 된 지금도 계속 요가를 하고 있다.

7년 간 요가만 한 건 아니고, 수험생활 시작 후에는 필라테스도 2년 정도 하고 잠깐 헬스도 했다.

그러다 시험 3개월 전부터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다시 요가를 시작했는데,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쉬지 않고 돌아가던 머리가 요가 매트 위에 설 때만큼은 잠시 쉴 수 있었기 때문에, 역시 큰 도움을 받았다.


요가는 이미 내게 운동보다는 마음 수련의 의미가 더 크고, 매트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가능하며, 여러 나라 요가원을 방문해보고 나니 전세계 아쉬탕가/빈야사 플로우는 같아서 만국에서 통하는 언어 하나를 배운 느낌이 좋아서, 앞으로도 계속 하게 될 것 같다.


요가만이 완전무결한 운동/수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오늘은 애정만을 담아 썼다.

요가에 대한 여러 책을 읽고 요기(yogi)들과 대화하면서 알게 된 새로운 관점, 요가와 요가하는 사람들에 대해 아주 조금 있는 아쉬운 부분은 다음 기회에.


오늘도 나마스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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