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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9

by Flying Shrimpy

아주 오랜만에 부부싸움을 했다.


우리 부부는 소리 높여 싸우지 않고 조용히 입을 닫아버리니 부부냉전 중이라는 말이 조금 더 정확할 것이다.


마침 요가 수업이 있는 날이라 1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빈야사 요가를 했는데도 분이 안 풀렸다.


씩씩대면서 집으로 걸어 돌아오는 길


오전에 잠시 내리다 그친 비 덕분에 상쾌해진 공기,

비 온 뒤 풀 향기,

아파트 못에 사는 개구리 우는 소리,

산책 나온 강아지의 토독토독 발소리,

누군가가 자전거를 잠시 세워두고 벤치에 앉아 탄산음료 캔을 따는 소리,

정갈하게 정리된 분리수거장을 마주했다.


마음이 조금씩 편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오늘 쌓인 모든 일이 점마 남편이 아닌 내 탓이라는 반성을 하게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저 오늘 일은 오늘 밤 잠에 듦으로써 보내주고, 내일은 다시 새롭게 내일의 관계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이르렀다.


이 생각까지 오는 데 13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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