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직을 했다. 어느덧 3번째 직장이다.
첫 직장에서는 신입사원이라, 2번째 직장에서는 새로운 직무로 처음 시작하는 거라 늘 긴장하고 서툴렀다.
이번 직장에는 비교적 빠르게 적응한 것이 스스로도 느껴졌고, 팀원들도 '원래 여기 계셨던 분 같다' 라며 신기해하곤 한다.
마음에 여유가 있으니 일하는 틈틈이 회사 사람들을 관찰하게 되었다. 그래서 써보는 나의 회사 사람 관찰기.
처음 와서 제일 놀랐던 점은, 모두가 상무의 일거수일투족에 '생각보다도 더'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상무의 회의 일정, 커피 일정, 심지어 화장실을 언제 가는지까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상무님 어디 계세요?" "방금 땡땡씨가 1층 카페에서 마주쳤대요.")
이는 이상한 목적은 아니고 주로 2가지인데,
첫째, 점심 무렵 상무가 일찍 나섰다면 부문원들도 일찍 점심을 먹으러 나설 수 있기 때문이고,
둘째, 상무에게 보고하려는 사람은 많고 상무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보고를 위해 타이밍을 잘 잡지 않으면 다른 부문원에게 소위 '스틸' 당하기 때문이다.
본인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해 들은 말인데,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때 "내가 그 사람(당사자)한테 물어보니까~"라고 할 때가 자주 있다.
거짓말이라 하기에는 너무 사소하지만 굳이 그렇게 해야 하나 싶어서 좀 놀랐다.
그런 사소한 정보라도 출처가 본인이라는 것이 여기서는 작은 권력일까?
"우리 엘리베이터 어제 멈춘 거 말이야, 내가 물어보니까 (사실은 A에게 전해 들은 것임) 어제 비 와서 누수된 거라는데?"
"헉 정말요?"
"그렇다니까~" (뿌듯해하며 떠난다.)
어느 날 보고 중, 상무가 팀장을 불러놓고 이야기했다.
"책임져야 할 것 걱정하지 말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하는 대로 업무 해. 회사에서 책임져야 할 게 뭐가 있어? 책임져야 할 것 별로 없어."
다음 날 회의 중, 팀장이 팀원들에게 이야기했다.
"책임져야 할 것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하는 대로 업무 하세요. 회사에서 책임질 것이 뭐가 있습니까. 그렇죠?"
무슨 문제가 생기면 "법무팀 OO변호사님이 이렇게 하라고 하셨는데요?"라고 현업에서 책임 소재를 자주 미룬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어리둥절했지만, 그 내용보다도 윗사람이 한 말을 (같은 청자가 있는 자리에서) 그대로 반복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어쩌면 그분께는 인상 깊은 말이었을 수도.
전 직장에서 중간 관리자 한 분이 일도 잘하고 FM이신 성격이었는데, 그분 컴퓨터에는 포스트잇으로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어려운 것을 쉽게, 긴 것을 짧게.'라고 적혀 있었다. 그 메모에 맞게 그분은 늘 메일도 간단하게 요지만 쓰시고, 회의도 간결하게 하셨다.
현 직장 팀장님도 자타공인 프로 일잘러인데, 얼마 전 컴퓨터에 포스트잇으로 크게 'HOW /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써두신 걸 보았다.
그 메모에 맞게 이 분도 이런저런 현안을 논의할 때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보고, 담당자가 잘 대답하지 못하면 본인이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주신다.
경력사원 B는 3년 전쯤 이 회사로 이직해 왔다.
매일 10명쯤 되는 사람들과 메신저를 실시간으로 하고 있고, 일주일에 서너 번은 다른 팀 사람들과 점심약속을 잡으며, 다른 팀 사람들의 결혼식도 꼬박꼬박 참석한다.
본래 친화력이 좋은 성격이기도 하지만, 경력직이라는 말을 들은 후 생긴 편견인지, 소위 '성골'이 주류인 이곳에서 이 사람이 생존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나도 이 조직의 고인물이 되어 이 조직의 특징을 인지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직 외부인의 관점을 가지고 있을 때 기록을 남겨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