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이 되면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생각난다고 주변에 말도 못 하는 친구다.
M과는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다.
M은 학군지로 알려진 우리 동네에서도 수재로 유명했다.
그 시절 대부분의 똑똑한 친구들이 그랬듯, M도 곧 유학을 떠났다. 입학금이 비싸고, 들어가기 어렵고 졸업하기는 더 어려운 보딩스쿨로 갔다고 했다.
부모님끼리 아시던 사이라 나와 M 사이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없었고, 그마저도 M이 10대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10대 때는 M과 자주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둘 다 20살이 되면서 M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몇 번 만났는데, 그때 '아, 통하는 대화란 이런 것이구나.'라고 느꼈다. 당시 매일 만나던 제일 친한 같은 학부 친구들과 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교감하는 기분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공부, 인간관계, 커리어, 정치,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했다. 사람이 무섭게(!) 똑똑하면서도, 재치 있고, 다정할 수 있다는 걸 M을 통해 배웠다.
이후 내가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있을 때도 M의 존재가 큰 위로가 되어줬다. 당시 나는 미국에서 모두와 잘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기숙사에 돌아오면 향수병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그때마다 해외 생활을 더 먼저, 더 오래 해본 M과의 Skype 통화와 페이스북 메시지 덕분에 잘 버틸 수 있었다.
한창 자주 연락하던 시절, M이 매년 연말이면 페이스북 메시지로 물어보던 말이 있었다.
송년회 술에 절어 하루하루 지내다가 M의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정신이 번쩍 들곤 했다. 그러게, 친구야. 새해에는 어떤 다짐을 해볼까. 어떤 걸 도전해 볼까.
그렇게 물어봐주던 M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내가 결혼을 하고, 로스쿨을 가고,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느라 바쁘게 사는 동안 M과 연락을 잘하지 못했다. 누구나 아는 대학을 졸업하고 곧이어 누구나 아는 기업에 취업했다는 소식을 들은 참이었고, 막연하게 잘 살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우울증으로 오래 약을 먹어왔다고 했다.
M이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임신 초기였다.
부모님께서 뱃속의 아기를 생각해서 장례식은 참석하지 않는 걸 권하셨다.
집에서 혼자서 일기를 쓰면서 울었다. 뭐가 그렇게 널 힘들게 했을까, 나한테 얘기할 수 없었을까, 그러기엔 연락하지 않은 날들이 너무 길었을까,라고.
아기를 낳고 나서야 M이 묻힌 곳에 가볼 수 있었다.
생전의 M답게 정갈한 곳이었다.
M의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M은 네가, 특별하다고 했어. 너랑 한참 이야기하다 온 날이면 종일 기분이 좋았어."
시간이 흘러 어느새 또 연말이다.
일기장에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소감과 새해는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쓰면서 또 M 생각이 났다. 네게 부끄럽지 않게 나이 들어가도록 노력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