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이후의 삶,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
특별할 것도 없었고 특별하지도 않았다.
아직 방사성 동위원소 치료가 남았고, 암환자라는 딱지를 5년 동안 붙이고 살아야 한다. 정기검진을 통해 5년 동안 전이나 재발이 발견되지 않으면 그제야 산정특례 딱지를 뗄 수 있다. 갑상선암 환자들은 그것을 ‘졸업’이라고 부른다.
갑상선 암은 원인을 찾기 어렵다. 유전적 요인의 영향도 크지 않고, 흡연, 음주, 불규칙한 식습관과의 직접적인 인과도 분명하지 않다.
간암 환자는 술을 마시던 자신을, 폐암 환자는 담배를 피우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과거를 후회한다. 그리고 이후 금주나 금연 등을 통해 생활을 바꾸고 건강을 관리한다.
하지만 갑상선암 환자는 그럴 만한 ‘나쁜 습관’을 도무지 찾을 수 없다. 현재까지의 의학적 연구로는 뚜렷한 인과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니 결국 ‘뽑기 운이 좋지 않았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금주나 금연처럼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무엇’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 사실은 어떤 이들에게는 수술 이후에 혼란과 무력감의 시간을 던져주기도 한다.
갑상선암 진단 직후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왜 하필 나인가?’였다. 신이 있다면 ‘나는 어떤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시련을 받는 걸까’ 따지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결국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치료의 방향을 잡고,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수술 과정의 회복을 위해 쉬고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죽음’이었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고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하지만 100세 시대라는 말을 하도 많이 듣다 보니, 40대의 나에게 죽음은 너무나 멀게 느껴졌었다. 교통사고로 매일 7명이 죽는다고 하지만 죽음이 와닿지도 않았다. 어림과 나이 많음에 상관없이 죽음은 가까울 수 있지만 크게 생각하고 살지 않았다.
하루가 소중해졌다. 그 하루를 더 늘릴 수 있는 방법으로 살고 싶었다. 좋은 것을 먹고 좋은 생각을 하며, 꾸준히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천에 옮기고 있다.
갑상선암은 뽑기라지만, 다른 질병은 건강관리를 통해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건강관리 안 하다가 50대, 60대에 다른 암에 걸릴 수 있었을 텐데, 나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나에게 질병을 준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실질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은 있다. 갑상선 호르몬제를 꾸준히 복용해 재발률을 낮추고, 정기검진을 통해 몸의 이상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일. 이 두 가지는 평생 이어갈 나의 과제다.
난 여전히 잘 먹는다. 달라진 게 있다면 조금 더 건강하게 먹으려고 하는 점이다.
우리 집의 밥은 백미에서 콩, 귀리를 섞은 밥이 되었다. 밥을 먹기 전에 콩부터 골라 우걱우걱 먹는다. 콩과 밥을 함께 먹는 건 아직도 영 익숙하지 않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 항상 채소를 산다. 오이, 파프리카, 샐러리, 당근, 방울토마토 등 예전에는 쳐다도 보지 않았던 것들이다. 계란볶음밥을 먹든 피자를 먹든 식전에 샐러드를 만들어 먹는다.
완벽히 건강하게 먹는 것은 어렵다. 다만 덜 해롭게 먹으려 노력할 뿐이다. 나는 음식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음식으로 느끼는 행복이 크긴 큰가 보다.
점심으로 버거킹 와퍼나 빅맥이 먹고 싶으면 집에서 방울토마토를 조금 챙겨간다. 콜라는 제로콜라로 먹으며, 감자튀김은 라지가 아닌 기본을 시킨다.
음식을 먹을 때 항상 음료를 곁들였다. 음료 대신 물이나 차로 바꾸려 노력했고, 그래도 당기는 경우는 식혜 제로나, 복숭아 아이스티 제로, 콜라 제로 같은 제로음료를 마신다. 물론 음료를 아예 안 마시는 게 제일이지만, 조금은 낫지 않을까 싶다.
뷔페를 가면 샐러드를 먼저 한 접시 채워서 먹는다. 어느 정도 속을 채워줘서 과식도 막아주고, 소화에도 좋을 것이라 믿는다.
아무래도 외식보다는 집밥이 건강에 좋기 쉽다. 사 먹는 것이 쉽고, 체력과 시간도 아낄 수 있지만 그래도 집밥을 먹으려고 노력한다. 곧 6인용 식기세척기를 12인용으로 바꿀지도 모르겠다. 요리 준비에 시간이 드는 만큼 설거지 시간이라도 절약하면 좀 더 집밥을 먹지 않을까 싶다.
암에 걸리기 전이나 지금이나 내 삶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곧 학교에 복직할 것이고, 병에 걸린 적이 없었던 것처럼 아이들을 지도할 것이다.
예전처럼 일어나 씻고 학교로 출근할 것이며, 수업을 하고 업무를 보다가 집에 갈 시간이 되면 퇴근할 것이다. 주말에는 집에서 아내와 넷플릭스를 보거나 근교로 나들이를 갈 것이다.
매일 챙겨 먹어야 하는 약이 하나 생기긴 했다. 40대를 넘어가니 친구들도 하루에 약 1개씩은 챙겨 먹는다. 누구는 혈압약 누구는 고지혈증 약 등 약의 종류만 다를 뿐이다. 하루의 시작을 약 한 알로 열고, 한 시간의 공복만 지키면 된다. 그 정도면 나 역시 평범한 사람의 범주 안에 있다.
결국 달라진 것은 많지 않았다. 잠시 ‘평범함’을 잃었다가, 다시 ‘평범함’을 찾았다. 다만 있을 때는 몰랐던 그 소중함을 지금은 고맙게 여길 줄 알게 되었다.
가을도 끝나간다. 애당초 너무 짧긴 했다. 거리의 사람들은 패딩을 입고 다닌다. 찬바람이 더 불고 눈이 내리는 것이 당연해질 때쯤이면, 나는 6학년 아이들을 졸업시킬 것이다. 그렇게 다섯 번의 아이들이 지나가고 나면, 나도 암에서 졸업할 것이다. 졸업장은 없겠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단단해져 있고 여전히 잘 먹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