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이 태도가 되지 않게.
갑상선암 수술을 하고 얻은 12주의 휴직 기간 중 절반이 흘렀다. 몸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고, 가벼운 운동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날씨 좋은 해외에서 달리기를 한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이 좋아 한국에서도 달리기를 시작했다. 아니, 시작하려 시도했다. 날씨가 추워지는 계절이었기에 시린 귀를 덮어줄 헤어밴드와 장갑, 러닝화 정도를 샀었다. 하지만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아왔던 인생에 지속적인 달리기는 무리였다. 2-3번 하다 말았던 기억이 남는다. 그래도 이번에는 해야만 했다.
운동을 마음먹은 첫날 아침이었다. 6시 조명 알람으로 눈이 떠졌다. 날이 제법 쌀쌀해져서 따뜻한 이불 밖을 나오기가 어려웠다.
‘무슨 영광을 바라고 출근하지 말고 쉬라고 주어진 시간에 출근하는 사람보다 일찍 일어나려고 한 것일까?’
‘내일부터 하면 안 되는 걸까? 아니 애당초 아침 달리기가 갑상선 수술환자에게 좋기는 한 걸까?’
온갖 잡념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 더 누워있다가는 아침 운동이 몸에 나쁜 이유를 백만 가지는 생각할 것이고 결국 못 일어날 것 같았다. 조심스레 ‘따뜻하고 포근하고 아늑한’ 이불 밖을 나와 ‘춥고 어둡고 삭막한’ 거실로 향했다.
아직도 밖은 어두컴컴했다. 시계를 바라보니 6시 10분이 조금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6주 동안 매일 먹던 ‘신지로이드’를 삼켰다. ‘아마 평생 이 약을 먹으면서 살아가야겠지?’ 차가운 물 기운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그제야 정신이 조금 들었다.
눈을 반쯤 감은 상태로 갑상선 스트레칭을 천천히 했다. 일어나자마자 습관적으로 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어느 정도 몸에 익었다.
갑상선 수술을 마치고 나면 6개월 간 지속적으로 해줘야 하는 스트레칭이 있다. 목 주변의 유착 방지와 움직임 회복을 위해 필수적이다. 특히 전절제나 림프절 곽청술을 받은 경우는 이 스트레칭이 꽤 중요하다. 스트레칭을 게을리하면 목이 당기고 욱신거리는 증상이 몇 년이 지나고도 지속될 수 있다고 한다.
1년 전 잠깐 달리기를 하다 그만둔 이후 처음으로 달리기를 한다. 어떤 스트레칭을 해야 할지 모르기에 유튜브에서 달리기 스트레칭이라고 검색했다. 어느 정도 반복하면 이 스트레칭도 몸에 익을까?
옷을 챙겨 입고 바람막이 점퍼의 모자를 둘러쓰고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린다.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혹시나 흉터에 햇빛이 닿지 않도록 꽁꽁 동여맨다.
새벽의 공기는 바람이 섞여 매우 쌀쌀했다. 이제 가을은 정말 삭제된 건가?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촌스럽게도 줄 달린 이어폰이다. 요새는 충전이 필요 없는 이어폰이 자연스레 당긴다. 핸드폰에서 RunDay 달리기 어플을 실행했다. 여러 유료 프로그램 중에 숨어있는 30분 달리기 무료 프로그램을 찾아 버튼을 눌렀다.
“곧 걷기 시작할 거야.” 이어폰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미있는 어플이다. 마치 옆에서 달리기 코치가 같이 달려주는 것 같다. 새벽의 외로움이 조금은 가셨다. 2분을 천천히 걷고 1분을 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포츠생태공원에 도착했다. 스포츠와 생태라니. 굉장히 직관적인 이름이다. 가운데 넓은 잔디구장을 원형 트랙이 감싸고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평일 새벽에 나올 일이 없어 몰랐는데 대부분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시다. 그 사이로 30-40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달리고 있었다. 달리는 사람들을 따라 트랙을 걷고 뛰고를 반복하다 보면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
“1분 30초 달리기 하자. 페이스를 지켜. 옆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만 뛰어.”
어플의 코치는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건네며, 내가 이 달리기를 그만두지 않도록 도와준다. 참 세상 좋아졌다. 달리기 어플의 코치와 함께 5일을 달려보니, 달리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서 출발할 때는 제법 쌀쌀했던 날씨가 살짝 덥게 느껴진다. 고작 30분 걷고 뛰고를 반복했다고 몸이 뜨거워졌나 보다. 집에 도착해 재킷의 지퍼를 내리니, 이마에 살짝 땀이 맺히고 몸에서는 열기가 난다. 거실에 있는 시계를 바라보니 바늘이 숫자 7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후의 일과는 달리기를 하기 전과 비슷하다. 방울토마토, 두유, 감자가 떨어져서 고구마, 냉동블루베리를 넣은 요거트를 먹는다. 배가 고프지는 않다. 하지만 약을 먹으려면 어쩔 수 없다. 아침을 먹고 남은 식기들을 식기세척기에 넣는다.
“쏴아아아”
샤워기의 물줄기를 튼다. 하루가 시작되기 위한 준비 작업들이 꽤 늘었구나 싶다. 물에 젖은 몸을 수건으로 닦으며, 목에 실리콘 밴드를 붙이고, 그 위로 자외선 차단 필름을 붙인다. 오늘은 도서관을 갈지 카페에 갈지 고민스럽다. 집에 있는 경우도 있다.
오전은 각각의 장소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보거나 한다. 요즘 들어 단편 소설을 자주 보게 된다. 짧은 순간 안에서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김애란 작가의 작품 중에 ‘노찬성과 에반’이라는 단편이 있다. 내용은 단순하다. 한 문장으로도 요약할 수 있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초등학생 찬성이가 암에 걸린 개 에반의 안락사를 고민한다. 하지만 요약으로 전해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깥은 여름 중 노찬성과 에반> by 김애란
에반, 미안해. 우리 사흘만 참자. 딱 사흘만. 그때는 형이 꼭…… 착하지? 조금만 참아, 조금만……
글을 읽는 내내 울컥했다. 나이 들었나 보다.
혼자 먹는 점심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사 먹는 것도 잠시, 슬슬 도시락을 싸볼까 고민된다. 사 먹으려니 버거킹, 맥도날드가 편하다. 매일 외식을 하면 몸에 좋지 않은 것을 먹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며, 그나마 김밥은 낫지 않나라는 생각으로 김밥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낮잠을 잔다. 도서관에서 엎드려 자다 보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열람실 밖에서 누워서 잘 수도 있지만 좀 민망하다. 그렇게 틈틈이 잠을 자면서 체력을 보충해 준다. 며칠을 반복하니 제법 익숙해졌다.
운동하고, 도서관 가서 글 쓰거나 책 읽고, 점심은 채소가 많이 들어간 음식 먹고, 틈틈이 스트레칭을 한다. 오후에는 산책을 하거나 글을 쓴다. 종종 지인들을 만나 저녁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도 식당은 메밀 정식 내지 오리 고기같이 몸에 좋은 음식을 주는 곳으로 간다. 참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이다.
크게 불만 없이 잔잔하게 안정적으로 흐르고 있는 삶이다. 이렇게 체력 관리를 하다가 복직하면 되겠지? 방사성 동위원소 치료를 받고,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그렇게 내 건강을 관리하면서 살면 나는 갑상선암 발병 이전보다 더 건강하게 살 수 있겠지?
문득 슬퍼졌다. 미친 듯이 짠 피자를 혼자 한 판 다 먹거나 불닭볶음면을 먹을 수 없어졌다. 친구들과 같이 여행 가서 캔맥주를 6-7캔 마시면서 새벽 4-5시까지 이야기 나눌 수도 없어졌다. 집들이 온 친구와 게임의 끝판왕을 깨기 위해 동이 틀 때까지 거실에 앉아 손가락이 저릴 때까지 게임을 하던 삶도 끝났다.
써놓고 보니 조금 심하긴 했다. 20대에 졸업해야 할 일을 30대 후반까지 하긴 했었다. 한 때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피할 수 없는 30대 이후의 삶’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안락한 치킨과 함께 평생을 할 것인가 자신을 쇠뽕에 취하게 할 것인가’
나는 반강제적으로 운동(쇠뽕)을 하게 되었다. 치킨이 먹고 싶어졌다.
나는 아직 환자고 몸 내부의 상처는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름기 많은 치킨과 맥주는 상처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치킨이 먹고 싶었다. 거기에 어울리는 맥주까지 한 잔 하고 싶었다. 운동을 괜히 시작했나 보다. 이상하게도 운동을 하면 꼭 맥주가 생각난다.
배달 앱을 뒤적거렸다. 너무 많은 치킨집 사이에서 할인 쿠폰을 주는 치킨집을 골랐다. 기본인 후라이드 반 양념 반을 시켰다. 무알콜 맥주를 샀다. 기분이라도 내고 싶었다.
맥주를 사서 돌아오는 길에 배달원을 만났다. 비상 깜빡이를 켜고 차에서 내리는 배달원을 보았다. 그 순간 직감했다.
‘저건 내 거다!’
설렜다. 비닐봉지를 뜯고 치킨이 담긴 종이박스와 치킨무를 꺼냈다. 치킨무의 국물을 따라 버리고, 각각의 종이박스를 열었다.
매콤한 양념치킨의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고추장 베이스의 달짝지근한 양념의 맛이 먹기도 전에 떠올랐다.
먼저 양념치킨을 꺼내 베어 물었다. 양념이 배여 끈적한 껍질이 느껴졌다. 안으로는 탱글한 속살이 씹혔다. 입 안 가득 매콤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퍼졌다.
무알콜 맥주를 마셨다. 그런데 어딘가 살짝 아쉬웠다. 목을 넘기는 감각이 가벼웠다. 그 쫀득한 거품과 진한 한 모금이 느껴지지 않았다.
입안을 다시 치킨으로 채웠다. 양념 한 조각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후라이드를 집었다.
“파삭 “
바삭했다. ‘그래 이 맛에 후라이드 먹는 거지’ 껍질의 바삭함과 속살의 탱글함이 입안에서 어우러졌다. 소금을 찍어 짭짤해진 가슴살을 끝까지 씹었다. 목이 말랐다.
다시 무알콜 맥주를 마셨다. 2번 3번 연달아 마셨다. 텁텁해진 입안이 개운해지면서 이제야 맥주를 먹는 느낌이 조금 났다. 잠깐이지만 진짜 맥주를 마신 느낌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모든 것을 챙길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놓아야 한다. 물론 그 중간에서 꾀를 피우기도 하지만 놓아야 되는 것들이 생겨난다.
우리는 하지 못함을 아쉬워한다. 같은 일을 놓고도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보다 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재미있다. 운동을 할 수 있는 건강이 있을 때는 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아쉬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운동을 할 수 없는 몸이 되면 운동을 할 수 없음에 안타까워한다.
먹는 것도 비슷하다. 군대에서 훈련을 받을 때 동기 1명은 초코파이류의 과자를 싫어했다. 평소에는 어쩌다 한 번 먹거나 눈앞에 있어도 잘 먹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 동기는 훈련이 시작되고 6주 후 한 상장의 초코파이를 혼자 다 먹었다. 그리고 숙소에 돌아와서 ‘더 먹을 수 있었는데 입안에 더 넣지 못했음‘ 을 한동안 안타까워했다. 사회에서 자유롭게 먹을 수 있을 때는 그저 그랬던 음식도 군대에서 제약을 받자 먹고 싶어 졌던 것이다.
40대가 되면서 더 이상 밤새 술을 마실 일도, 게임을 할 일도, 정크 푸드로 배를 채울 일도 많이 사라졌다. 과식으로 배가 차고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 싫어 뷔페도 잘 안 가게 되었다. 소주도 2-3달에 한 번 먹을까 말까이며, 맥주도 다음날 컨디션 생각해서 무알콜 맥주 내지는 저알콜 맥주를 먹는 일이 잦아졌다.
이미 나이가 들어 잘 안 하고 있는 일이었는데 수술을 받고 건강을 생각해야 된다는 압박감이 생기니 새삼 밤새 술 마시고, 게임하고, 과식하고 싶었나 보다.
현재의 나의 취향은 적당히 마시고, 게임하고, 먹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언제나 가능하다. 운동을 통해 체력을 키우면 그 이상도 가능할 것이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게 아니라 체력이 태도가 되는 나이가 되었다. 병이 아니었어도 운동은 해야 했다.
아직은 이제 막 시작일 뿐이다. 수술을 마치고, 하루하루 회복해 가며, 이제는 운동까지 하면서 그렇게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괜찮은 하루가 하루 또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