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는 쉬는 게 아까워.
학교를 쉬고 있다. 침대에 누워 요양을 할 만큼 몸이 불편한 건 아니다. 신체의 불편함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견딜만한 수준이다. 내가 자영업을 하고 있었다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나갔을 정도다. 직업의 특수함으로 인해 다른 직장에 비해 좀 더 긴 휴직을 누리고 있는 것 같다.
T형 인간에 J까지 섞이면, 퇴원 후 무엇을 할지를 고민한다. 수술 잘 마쳤고, 입원 10일 했으면 남은 기간 적당히 요양이나 하면 될 것 같은데 그게 안된다.
입원과 명절 기간을 빼면 2달 남짓한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다. 그냥 집에서 쉬고 넷플릭스 보면 딱 적당할 기간이었다. 입원하는 동안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을 보는 낙이 얼마나 행복했던가. 퇴원을 하고, 하루 그렇게 쉬고 나니, 40대의 나는 그 시간이 아까웠다.
뒤돌아보면 인생에 1-2달 정도의 휴식 기간은 제법 많았다. 대학교를 입학하고 모든 방학이 그러했으며, 전역할 때 말년 휴가가 그러했다.
그 모든 휴식의 기간은 비슷하게 흘러갔다. 방학의 첫날, 일주일은 놀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밤새 게임을 하거나 만화책을 보았다. 늦은 야식을 먹었고 새벽 2-3시쯤 자고 다음날 11-12시쯤 일어나는 일이 반복됐었다. 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너무 시간을 낭비했다 생각하며, 곧 다가올 개강을 싫어했던 기억이 난다. 그 시기에 여행이나 알바를 했으면 지금보다는 좀 더 성숙한 어른이 되었을 텐데 아쉽기만 할 뿐이다.
직업이 교사다 보니 어른이 되고도 방학이 존재한다. 여름에는 3-4주 정도 겨울에는 8-9주 정도의 방학을 맞이한다.
보통 여름에는 학기 중에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보고, 처리하지 못한 일상의 업무들을 처리하거나 연수를 들으면서 보낸다. 겨울은 제법 길어 이때 2주 내외로 여행을 많이 가게 되고 나머지는 여름과 비슷하게 보낸다.
40대의 나이에도 방학이 존재하는 것은 좋다.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은 꽤나 부러워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맞이하는 방학은 아무래도 어릴 때와는 다르다. 중간중간 해결해야 할 일들이 생겨나고, 나를 찾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방학 중에도 여행을 떠난 기간을 빼면 온연하게 쉰다는 느낌을 받기가 어렵다.
그러다가 아프고 나서야 온연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학교에서도 아픈 사람을 찾지는 않았다. 아내도 내가 쉬면서 회복에 전념하기만을 바랬다.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왜 내가 이런 병에 걸린 거지... 나 무슨 잘못한 거 있었나?'
억울했다. 그렇게 걸린 병으로 얻은 시간을 넷플릭스만으로 보내기는 아까웠다. 아픔으로 주어진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그 아픔이 헛되지 않을 것 같았다.
사느라고 바빠서 놓치고 있던 것들을 찾고 싶었다. 내 삶을 다시 되돌아보고 싶었다. 문득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글을 써보려 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나는 도서관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8시 아내가 출근한다. 완료된 설거지로 가득한 식기세척기를 정리하고 아침의 흔적들을 담는다. 커피를 한 잔 내리면서 거실의 풍경을 바라본다. 적어도 쉬는 동안의 아침은 여유 있기를 바란다. 느지막이 외출할 준비를 한다. 실리콘 밴드 위로 새로 구입한 자외선 차단 투명 필름을 붙인다. 햇볕이 너무 강한 날에는 스카프로 목을 가리기도 하지만 보통은 이 정도로 만족한다.
가방에 율무차 2개, 텀블러, 노트북을 챙기고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지하에 주차되어 있는 차에 몸을 실으면 그제야 하루가 시작된 거 같다.
도서관은 차로 20여분 거리에 있다. 더 가까운 곳도 있지만 이곳의 도서관을 가장 좋아한다. 도서관 가는 것을 좋아해서 화성시에서 5-6개, 수원시에서 9-10개 정도의 도서관을 방문했었다.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서관이다.
오전에는 글을 쓴다. 몇 줄을 쓰다 지우다를 반복한다. 아무래도 이과 출신의 대문자 T에게 글 쓰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글을 쓰다가 막히면 도서관에 있는 책을 찾아 읽는다. 어린아이가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하듯 내가 쓰는 글은 바로 직전에 읽은 글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
앉아 있는 게 지칠 때쯤이면 도서관 밖을 나와 산책을 시작한다. 이 산책 코스가 내가 이 도서관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다. 도서관 옆으로는 한 바퀴를 천천히 돌면 한 시간 남짓의 시간이 걸리는 저수지가 있다. 호수공원처럼 외지인들이 찾아와서 붐비지 않고, 동네 사람들만 산책하듯 드나드는 한적한 공간이다.
저수지의 세월은 오래되었다. 늘어선 나무들의 밑동에는 이끼가 얇게 끼어 있고, 바람이 불면 가지가 서로 스치고 낙엽이 떨어진다.
물가를 따라 걷는 동안 버드나무의 그림자는 물 위에서 흔들리고, 하얀 왜가리는 천천히 날아가고 있다. 하늘로는 구름이 천천히 흘렀고, 자동차의 소음이나 도시의 복잡함이 느껴지지 않는 그 고요함이 천천히 한 바퀴를 돌고 오면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
글을 쓰는 것도 어려웠지만 가장 큰 고민은 점심이다. 몸에 좋은 음식을 도시락으로 싸와서 먹을까 싶기도 했지만 하루 이틀이다. 대체 몸에 좋은 음식이 무엇일까에 대해 채소가 많은 음식이라고 생각되는 얕은 건강지식이 그날의 메뉴를 정했다. 서브웨이가 갑자기 먹고 싶어졌다. ‘이거 채소가 많지 않았던가?’
서브웨이를 처음 접한 것은 군복무를 하면서다. 내가 복무했던 곳은 피자헛, 서브웨이, 타코벨, 필리스테이크 등이 늘어서있는 푸드코트가 있었다. 보통 메뉴를 주문하고 기다리면 되는 패스트푸드 가게에 비해 서브웨이는 복잡한 게 너무 많아 싫었던 기억이 난다.
일단 메뉴를 정한다. 소고기, 햄, 치킨, 참치 등등으로 구분되는 여러 종류의 메뉴가 보인다. 그릴 치킨이 가장 무난하다. 이제부터 고난의 길이 시작된다. 빵을 고른다. 내가 고른 빵에 그릴 치킨이 얹어져 옆으로 넘겨지면 난 그 빵을 따라간다. 들어갈 치즈를 고른다. 치즈가 얹어진 빵이 옆의 채소 칸으로 간다. 채소 칸이 가장 힘들다. 피클은 빼고 올리브는 많이, 토마토는 기본, 양상추는 많이 같은 요구를 앞사람이 하고 있다. 나는 그냥 몽땅 다 넣어달라고 한다. 마지막 관문은 소스다. 10여 개의 소스 중에 무엇을 넣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추천해 달라고 한다. 이 모든 관문을 끝내면 그제야 '단품을 할 것인지 세트로 음료랑 쿠키 내지는 과자를 먹을 것인지 답하고' 결제를 할 수 있다.
주문과 결제 사이의 과정이 너무나 길다. 감자튀김 없이 레이즈 같은 대기업 감자칩을 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들이는 수고에 비해 크게 맛있지가 않았다.
그렇게 제대를 하고 한동안 서브웨이를 잊고 살았다. 무엇보다 지점을 찾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에그마요’라는 이상한 친구가 생겨나며 서브웨이가 지점수를 엄청나게 늘리기 시작했다.
서브웨이의 모든 메뉴에 ‘에그마요’를 추가하면 입맛에 맞는 친구가 나왔다. 감자튀김이 기본적으로 제공되지 않는 점도 건강해 보였으며, 채소를 내 마음대로 추가해서 먹을 수 있다는 점이 패스트푸드 치고 건강한 느낌을 주었다. 키오스크의 도입도 마음에 들었다. 사람을 마주하면서 주문하는 것이 어려운 내향인에게 서브웨이의 문턱이 낮아졌다.
도서관에 앉아 네이버 지도를 켰다. 검색창에 서브웨이 네 글자를 타이핑하니 걸어서 10분 거리에 서브웨이 지점이 검색되었다. 서브웨이는 대학교 내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렇게 난 점심을 먹으러 대학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방문한 대학교는 싱그러웠다. 2학기 동아리 모집을 하는지 부스들이 보였고, 그 사이의 젊음이 비쳤다. 잠시 그 젊음을 구경하다 본래의 목적을 깨닫고 서브웨이로 향했다.
교내에 위치한 서브웨이는 무엇인가 옛스러웠다. 예전에 지점이 적었던 시절에도 있었던 느낌의 서브웨이는 키오스크가 없었다. 예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주문을 받는 모습에 문득 향수가 느껴졌다.
‘아… 이 방식 싫어했었는데.’
에그마요를 시켰다. 엄한 것에 에그마요를 추가하느니 에그마요에 집중하는 것이 여러모로 경제적이었다. 빵을 느낌 따라 고르고 슈레드 치즈를 뿌리고, 채소를 왕창왕창 추가했다. ‘그래! 몸에 좋은 것을 먹기로 했으니까.’ 포카칩 대신에 쿠키를 시켰다. 콜라는 제로로 시켰다.
이 정도면 적당히 건강을 생각한 거겠지라는 생각에 만족스러워하며 포장지를 벗기고 입에 샌드위치를 넣었다. 한 입 베어 물자 부드러운 달걀의 고소함이 먼저 번졌다. 렌치소스는 크리미 하게 입안에 맴돌았고, 스위트 칠리의 달면서 살짝 매콤함이 그 뒤를 이었다.
고소함과 부드러움, 매콤함과 달달함이 한데 섞여서 올라왔다. 치즈의 짭조름함이 빠졌다면 너무 달달하기만 했을 수도 있을 맛이었다. 피클의 아삭함과 올리브의 씁쓸함, 토마토의 상큼함이 뒤섞이며, 식감이 더 다채로워졌다.
샌드위치를 다 먹고 도서관으로 돌아오는 길의 하늘은 높고 맑았다. 도서관 안을 천천히 걸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이곳에 온 것 같았다. 누군가는 공부를, 누군가는 휴식을, 또 누군가는 책이나 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들이 어떠한 이유로 이곳에 왔는지는 모르지만 각자의 자리를 채우며 앉아있었다.
병이 나에게 준 것은 아픔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미뤄왔던 생각을 정리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다시 묻고 정리하는 시간, 어쩌면 그것이 내 아픔의 진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