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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개미 Feb 18. 2019

동굴 사는 사람 만난 썰

네르하 여행 일기

언젠간 이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스페인 네르하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이미 어두웠다. 낯설고 작은 도시에서는 바다 냄새가 났다. 거대한 캐리어를 끌고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말이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지, 모텔 방에 일반 침대 세 개가 놓여있었다. 다른 두 개 침대 위에는 짐이 풀어져 있었다. 복도와 가장 가까운 침대에 자리를 폈다.


일기를 쓰고 있는데 사람이 네 명 들어왔다. 룸메는 분명 두 명일텐데, 의아해 하는 순간 역한 냄새가 훅 풍겼다. 시선에 그들의 얼굴이 다 들어오지 않아 고개를 치켜 들어야 했다. 남자 세 명의 키가 너무 컸다. 간단히 인사를 나눴다. 한 명이 발코니쪽에서 와인 병을 흔들며 유쥬조인? 물었다. 긴 거리를 이동하느라 종일 한 게 없었던 나는 냉큼 응했다.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올린 일본 여자와 젬베를 들고 다니는 독일 남자가 숙박객이었고 나머지 두 명은 동굴에 사는 사람이었다. 의식하지 않으려 했지만 동굴맨 두 명에게서 고약한 냄새가 났다. 그걸 레게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머리가 한 명은 허리까지, 한 명은 어깨까지 왔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얇은 옷을 여러 벌 겹쳐입었다. 네르하 해변에 있는 동굴에서 반 년을 지냈고, 그 전엔 이탈리아엔가 있는 해변에서 지냈다고 했다. 굳이 출신을 말하자면 한 명은 카리브해 출신, 한 명은 독일 출신이었다. 둘 다 미등록체류자이며 자기가 어느 특정 국가 출신이나 누군가의 자식이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했다. 긴 수염과 머리 때문에 나중에야 알았지만 한 명은 열 여덟이었고 다른 한 명도 나보다 어렸다.


그들은 해변에서 어슬렁거리다 내 룸메들 같이 호의적이고 히피(?)를 만나면 화장실을 빌려서 씻거나 때론 밥을 얻어먹기도 한다고 했다. 막 우리 화장실에서 씻고 나온 이에게 누군가 언제 마지막 샤워했냐고 물으니 “방금!”이라며 농담으로 답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새로웠다. 돈은 한푼도 없고, 옷도 해변에 쓸려다니는 걸 주워입었다. 기타가 한 대 있다. 동굴에서 함께 노래를 부른다. 전기도 없다. 엠피쓰리를 충전할 수 있으면 밥 말리 노래를 들을 수 있을텐데 그것만은 아쉽다고 했다. 둘 중 한 명은 원래 영어를 한 마디도 못했는데 영국 출신의 동굴 사는 사람과 함께 몇 개월 지냈더니 영어를 이만큼이나 하게 됐다. 머리는 짧을 때 어떤 애가 살짝 꼬아줬는데 감지도 빗지도 않았더니 그새 이렇게 ‘such cool reggae hair’가 됐다.


그들은 내게 대마를 권했다. 거절했더니 그치 냄새가 좀 이상하지, 했다. 이것도 나중에 알았지만 원래도 대마 냄새는 구린데 걔네 대마 냄새는 유난히 구렸다. 말린 대마를 산 게 아니라 대마밭에서 자기들이 훔쳐서 직접 말렸는데 이번엔 이상하게 됐다며 민망해했다. 헛웃음이 났다. 품질이 나빠서 안 피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대마는 혼자 다 피지 않고 옆 사람과 돌아가며 핀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넷은 갑자기 마약에 대한 토론을 시작했다. 무슨 영어 약자로 된 화학 합성 마약이 있는 모양이었다. 누군가 ‘나는 그런 합성 성분 마약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더니 다른 이가 ‘나는 화학 성분이든 뭐든 모든 것이 이 지구로부터 왔다고 생각한다’며 마약 철학을 나눴다.


서로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주었다. 어떤 노래가 되게 좋길래 “이거 누구 노래야?” 했다가 밥 말리 노래여서 바보 취급을 당했다. 내가 9와숫자들 노래를 들려주었더니 누가 일본 노래 같다고 했는데 무슨 뉘앙스인지 전혀 못 알아챘다. 동굴맨들은 떠나기 전 나를 동굴로 초대했다. 내일 낮에 룸메들과 함께 해변으로 오라고 했다. 알겠다고 했다. 언제 사람 사는 동굴에 가보겠나 싶어서 신이 났다.


그런데 잠들기 전 생각하니 조금 무서웠다. 나는 유심이 없어서 위급상황이 생기면 구조 요청을 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분명 모두 선한 이들처럼 보였고 나를 해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난 생각보다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낯선 룸메들과 더 낯선 이들의 동굴로 가기로 한 것을 후회했다. 급하게 유럽 동행을 구하는 카페에 들어가 근교 프리힐리아나에 가기로 했다. 약속이 있다며 빠질 생각이었다.


프리힐리아나는 한국인에게 나름 관광 명소다. 언니 한 명 오빠 한 명과 함께 갔다. 나이를 아는 것은 그들이 내게 만나자마자 나이를 물었기 때문이다. 언니는 가는 곳마다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오빠는 내게 어느 대학을 다니느냐고 했고 내가 고대라고 대답하자 자기는 “중대 의대”를 다닌다고 했다. 전공은 물론이고 대학을 되묻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내가 인권에 관심있다는 말을 한 뒤로는 자꾸 내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아~인권에 관심 있으니까~”라며 비꼬는 듯이 말했다.


차라리 모험을 할 걸. 아쉬웠다. 겁이 나서 익숙한 것으로 도망쳤는데 익숙한 것이 나를 실망시켰다. 다음날 난 혼자 해변으로 가서 길이 끝날 때까지 걸었다. 그들이 이곳으로 갔을까 싶어서 발자국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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