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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개미 Jan 21. 2020

2020년의 튤립 여섯 송이

꽃은 좋고 쓰레기는 만들기 싫어서 아저씨한테 신문지로 싸주시라 했다. 식탁에 꼭 꽃을 꽂아두는 그 친구는 나보다 더 환경주의자라 비닐 포장을 싫어했을 것이다.

2020년의 나는 여러 모로 뻔뻔해졌다. 원래는 모르는 사람들과 한 마디 더 하는 게 참 귀찮고 어려웠는데 이젠 군소리 참 잘한다. 원래보다 더 거침 없어진 것이 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르겠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 화원 창의 꽃이 너무 예뻐서 한참을 밖에서 구경하다 들어갔다. 기웃거리는 게 다 보여서 내가 들어오기만을 계속 기다리고 있던 사장님이 “뭐 드릴까요”했다. “제가 오늘 친구 세 명을 만나요. 근데 그중에 한 명한테 꼭 꽃을 선물하고 싶은데요”까지 말했더니 사장님이 내 의도를 알아채고 “한 명만 주면 질투하지.”라고 답했다. 튤립이 세 송이씩 있으니 색만 고르라는 사장님. 한 송이에 이천 원밖에 안 해서 여섯 송이 전부 달라고 했다.

포장하지 마시고 신문지에 한꺼번에 싸 달라고, 그리고 남는 신문지 세 장만 주시라고 했더니, 꽃 좀 아시네, 사장님이 그랬다. 나는 꽃을 전혀 모른다. 선물 받은 적도 준 적도 많지 않다. 그냥 꽃을 선물하고 싶다는 문득 든 생각을, 그리고 비닐 소비를 덜 하고 싶단 생각을 실천할 수 있어졌다.


꽃집을 나서면서 내가 되게 뻔뻔해졌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의 나 같으면 비닐에 싼 튤립 한 송이를 쥐고 나왔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난 신문지에 싼 튤립 여섯 송이와 신문지 세 장을 안고 있었다. 어떤 ‘주의자’가 돼 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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