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월드와 쿠팡

by 오월의개미

이러다 부자되겠다고, 돈을 쓸 시간도 없다고. 우리끼리 그렇게 말했다. 처음으로 시작한 전일제 일자리는 롯데월드에서였다. 다른 '아르바이트'들과 달라 최저시급보다 시간당 임금을 몇십원 더 쳐주고, 야근수당도 꼬박꼬박 챙겨준다는 말에 지원해 다니게 됐다. 롯데 사명은 어떻게 지어졌는지, 창업주는 어떤 말을 남겼는지, 롯데월드 캐릭터는 어떻게 너구리가 됐는지 등을 배우고, 팀을 배정받고, 세탁된 유니폼을 받아 입고, 담당 직원들에게 간단한 교육을 받고, 나와 같은 '아르바이트생'인 팀원들을 만났다.


한 달쯤 뒤엔가, 팀 동료들한테 그런 말을 들었다. 들어왔을 때 충분히 환영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땐 너무 피곤했다고. 당시 동료들은 매일 8시간 넘게 주 6일 일한지 수개월째였다. 나와 동기들이 들어오면서 그나마 주 이틀 휴무가 지켜지기 시작했지만 초과근무는 여전했다. 주마다 근무표가 새로 나왔는데 10시에 출근해서 10시에 퇴근하는 '텐투텐'이 일주일에 두세번씩 있었다. 8시간 근무하는 날은 주에 한두 번 있을까말까 했다. '오티(오버타임)' 수당이 매일 쌓였다. 실외에서 계속 말하고 움직이며 일하다보니 집에 오면 골아 떨어졌다. 다들 사정이 비슷했다. 오늘 10시에 퇴근해서 옷 갈아입고 복도에서 만나 불 꺼진 잠실역 상가를 10시30분쯤 가로질러 헤어졌다가 내일 9시30분쯤 탈의실에서 하품을 하며 만났다. 다들 피곤으로 낯빛이 까만 와중에도 웃었다.


내가 직접 동의하지 않은, 처음부터 세팅된 야간근로와 연장근로에 대해 혼자 남몰래 이를 갈았다. 이거 불법 아니야? 언제 나한테 하겠냐고 물어본 적 있어? 하면서. 물어보면 동의하지 않을 건 아니었다. 내가 빠지면 누군가 그 자리를 채워야 했으니까. 팀원이 열두시간 넘게 근무하는 걸 막기 위해서 우리는 하루 열한시간씩 일했다.


고등학교 때 법과사회 과목에서 배운 노동법이 '아르바이트' 업계에서는 왕왕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중이었다. 1분만 늦게 출근카드를 찍어도 1시간치 시급이 날아갔다. 기상 상황이 좋지 않은 날에는 조퇴를 시키고 휴업수당도 안 줬다. 인사팀에 왜 조회시간과 종례시간은 시급에 포함되지 않는지 메일을 넣은 적도 있다. 답변은 '양해해 달라'였다.


성수기 때 그렇게 사람을 갈아넣던 회사는 비수기가 오면 칼 같이 사람을 집으로 보냈다. 9시 출근했어? 6시 퇴근해. 10시 출근했어? 7시 퇴근해. 10시 퇴근할 거야? 1시 출근해. 퇴근하라고 등을 떠밀리는 기분까지 들었다. 이제 '정상화' 된 것 아닌가 싶었는데 오래 일한 동료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오티가 쏠쏠했는데, 그렇게 말했다. 몸은 편해졌지만 비수기가 되니 통장에 찍힌 월급이 100만원 가까이 줄었다고 했다. 드디어 노동권이 지켜지는데 누군가는 이걸 싫어할 수도 있구나, 그때 알았다.


우린 대부분 20대 초반이었고, 돈이 필요했다.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지는 각자 달랐겠지만 100만원을 더 주면 웬만한 건 참을만 했다. 내 피곤함은 가장 값이 쌌다. 점심시간에 뛰어 나가 편의점에서 새로 나온 컵라면을 사먹거나 퇴근 후 맥도날드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동료들과 떠들면 피로는 잊혀졌다. 몸을 혹사시킨 대가를 언제 어떻게 치를지는 불분명했고, 월급은 분명히 다달이 들어왔다.


쿠팡 새벽배송 논란을 보며 그때가 생각났다. 우리가 새벽에 일하겠다는데 당신들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노동자도 있다. 그런 노동자를 앞세워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민주노총이 일하려는 사람의 기회를 빼앗는다고 말하는 언론도 있다. 그때 우리가 정말 원해서 더 많이, 더 늦은 시간까지 일했다고 말할 수 있나. 우리 앞에 선택지가 있었나. 롯데월드는 우리에게 기회였나. 돌이켜보게 된다.


롯데월드는 대안이었다. 최저시급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 '아르바이트' 공고들, 갑질 손님 앞에서 우리를 지켜주지 않고 되려 혼내는 매니저들, '점심시간은 굳이 오래 안 쉬고 자유롭게 써도 된다'는 사장들 사이에서 그나마 대기업이니 시스템이 있겠지하고 믿어보는 거의 유일한 일자리였다.


롯데월드가, 쿠팡이 기회가 되려면 우리가 적어도 괜찮은 선택지를 서너 개 정도는 놓고 고민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늦은 시간, 오래 일하면 우리가 조금은 더 숙련되거나 성장했어야 하지 않나. 자신의 시간과 몸과 일상을 갈아넣은 사람들 중 일부는 죽거나 다쳤다. 전부는 지치고 아프다. 야간노동에 수반하는 고임금은 내 몸을 걸고 하는, 일종의 도박의 대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우리는 안다. 쿠팡이 어떤 종착지라는 걸. 곳곳에서 치이고 도무지 선택지가 보이지 않을 때, 급할 때, 지금 벌이로는 부족할 때 '쿠팡이라도 뛰어 볼까?' 쉽게 떠올리게 된다는 걸. 그 누구나 쉽게 떠올리는 선택지가 쿠팡에 됐다는 사실에 대해 사회가 무슨 책임을 졌는지 잘 모르겠다. 적어도 쿠팡을 "일하려는 사람의 기회"라고 말해선 안 된다.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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