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정 욕구가 대단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때는 말을 바라지 않았다. 내가 잘하고 있단걸, 그것도 꽤 잘하고 있단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말이나 칭찬에는 별로 목 메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대학생 때, 지금도 대학생이지만. 학과 공부에 별로 욕심이 없었다. 유일한 공부 욕심은 글 읽고 글 쓰는 것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런 수업이 얼마 없었다. 그런 수업에서 만난 교수님은 날 꽤 좋아하시는 것 같았고 나는 그 약간의 애정을 나에 학업에 대한 인정으로 받아들였다. 그 밖에 나에게 중요했던 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잘 재밌게 지내고 있느냐였고, 그건 아주 잘했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나는 지금 반쯤 사회인이다. 인턴으로써 여러 가지 잡일을 도맡아 하는 중. 그러니까 잘하고 있을 땐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실수하거나 없을 땐 빈 자리가 느껴지는 그런 일이다. 인정 욕구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아주 강렬히 원하고 있었나보다. 내가 잘하고 있다는 걸 증명받고 싶었다. 더 참아라, 더 눈 똑바로 떠라, 더 정신 차려라, 더 신경써라가 아닌,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말과 이렇게 하면 더 좋겠다는 길잡이가 필요했다.
어제 친구가 자기네 아빠한테 내 칭찬을 했다고 했다. 난 또 신나버려서 무슨 칭찬을 했냐고 물어보았다. 친구는 내가 똑똑하다고, 나중에 같이 일하고 싶다고 했단다. 나는 정말 기뻐서 글썽였다. 나는 내가 괜찮은 사회인이 될 거라는 말이 필요했나보다. 아무래도 부모님의 '넌 사회생활 못 할 거야. 그러니까 공부나 더 해라' 나 '그렇게 하나하나 불만 가져서는 사회 생활 못해.' 같은 말들이 나에게 너는 괜찮은 사회인이 되지 못할 거라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를 위해서 '나'를 포기할 생각이 없으니까. 나의 사고 방식(저 사람은 저렇게 행동하면 안 되는데, 이런 대우는 너무 부당한데, 이런 의사소통 방식은 너무 답답한데, 와 같은)을 바꾸라는 말은 나는 영원히 사회에 부적응할 거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친구의 말은, 그건 아주 작은 가능성에 지나지 않지만 내게 희망을 품게 했다. 나는 어딘가에서는 아주 괜찮은 사회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어딘가는 나를 필요로 할 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자리가 있을 것이다,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