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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으는 돼지 Jun 15. 2020

당연하지 않은 삶

당연하다는 말이 당연하지가 않다

회사 사무실이 자리한 건물 화장실은 항상 깨끗했다. 나는 청결한 화장실을 당연하다는 듯이 이용했다. 하루는 무심히 화장실에 들어섰는데, 한쪽 벽에 A4 용지가 붙어있었다. 인쇄된 A4 용지에는 변기 뒤쪽에 일곱 잔의 일회용 컵이 쭉 늘어선 사진과 그 밑으로 '본인 사무실에서 분리수거 좀 하세요'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사진 속 일회용 컵은 건물 1층에 있는 카페 잔이었다. 나도 출퇴근 시에 자주 애용하는 카페라 로고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다음 날에도 회사 업무차 사무실에 들렀다 화장실에 갔다. 어제 보았던 A4 용지 위로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적당히들 하시지 정말 어지간하군요. 댁들은 아무것도 버리지 않은 것처럼... 자신들은 정의로운 것처럼... 그렇다면 제가 몸소 보여드리겠습니다. 진짜 갑질이 뭔지 보여드릴 테니 기대하십시오!!"


심지어 자필로 쓴 글이 아니었다. 본인임을 숨기기 위해 포스트잇에 인쇄를 한 글이었다. 그러니까 포스트잇의 요지는 화장실에 일회용 컵을 일곱 잔씩 늘여놓고 버리는 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이걸로도 갑질이라고 한다니, 내가 더 큰 갑질을 보여주겠다고 오히려 으름장을 내놓고 있었다. 대체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가 싶어 다시 한번 읽고 있는데, 청소부 아주머니가 들어오셨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이 글을 보셨느냐고 여쭈었다. "뭐 어쩌겠어요. 별별 사람이 다 있은께..." 어디다가 콕 집어서 말할 데도 없고, 목소리 내기에도 익숙하지 않은 아주머니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비행하러 간 공항 화장실도 매번 깨끗했다. 공항 화장실은 유독 많은 사람이 들락거리는 곳이니만큼 청소부도 수시로 드나들며 청소를 했다. 유니폼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나는 청소된 화장실을 으레 이용했다. 청소부는 청소 일을 하고, 나는 화장실을 이용했다. 모든 게 당연했다. 그리고 그 당연한 환경을 위해 청소 노동부는 당연하지 않은 생활을 이어왔다. 나는 김포공항 청소 노동자들이 파업 투쟁을 하기 전까지 그들의 살인적인 업무 강도와 열악한 환경을 짐작조차 못했다. 하루 최대 7만명 가까이 승객이 오가는 공항을 청소하는 사람이 50명도 안되었고, 병원에라도 가게 되면 사비로 일당 8만원을 주고 대타를 고용해야 했으며, 입원할 시엔 ‘아프면 나가라’고 해서 치료도 마음껏 받지 못했다.*(경향신문 인용)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서 화제인 게시물을 보았다. 공개된 사진에는 화장실 세면대 앞에 간이 의자를 놓고 식사하는 중년의 청소 노동자 모습이 찍혀있었다. 그가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 화장실을 찾아 겨우 끼니를 때우는 이유는 건물 방문객들이 건물 내에서 음식물 냄새가 난다는 민원을 넣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백 개의 댓글이 휴게실 하나 만들어 주지 않느냐고 분노하며 비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다만 비난을 받아야 할 대상이 구체적으로 적혀있지 않았다.


사실 이런 기사는 전혀 새롭지 않다. 휴게실이 화장실 빈칸이나 걸레를 빠는 개수대 옆이어서 노동자들이 쪼그려 앉아 쉬는 모습의 기사. 그 개수대에서 쌀을 씻어 밥을 지어먹는 부산역 화장실 청소부.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휴게 공간에서 나와 차라리 건물 후미진 계단에 박스를 깔고 앉는 노동자. 뜨문뜨문 뉴스에서도 보지만 매일같이 우리가 들어서는 건물에서 마주치는 노동자의 흔한 모습이다.


                                                                                                                                                                                                                                                                                                                                                                                                                                                                                                                    

지난해에는 서울대 공과대학에서 근무하던 60대 청소 노동자가 대학 내 휴게공간에서 휴식 중 숨졌다. 교도소 독방보다 못한 협소한 공간을 청소 노동자 3명이 나누어 썼다. 에어컨은 고사하고 창문도 없는 지하 휴게실이었다. 서울대는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방치한 상태였고, 결국 심장 수술을 앞둔 노동자는 35도 폭염 속에 의식을 잃었다.


산업안전 보건법 그리고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은 휴게시설 설치, 서서 일하는 근로자를 위한 의자 비치, 수면 장소 설치 등에 관해 규정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설치 기준을 명시하지 않았다. 이에 고용노동부가 구체적 기준을 적시한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 및 운영 가이드를 2018년 8월에 배포하였다. 해당 가이드라인에는 휴게공간의 위치, 규모, 내부 환경, 관리 방법 등이 있다. 그러나 이는 권고사항일 뿐, 의무가 아니다. 사업주들은 위 규정을 준수하지 않더라도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당연히, 2020년인 현시점에도 노동자의 휴게실 풍경은 다르지 않다. 다를 게 없다. 그런 그들에게 포스트잇 뒤에 숨어 "진짜 갑질이 뭔지 보여주겠다"라며 위협하는 사람까지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청소 노동자의 처우는 더욱 열악해졌다. 그들은 건물 및 시설을 깨끗이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이 사용해야 할 마스크는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드나드는 사람이 줄었다는 이유를 앞세워 인원을 감축해 노동 강도까지 높아졌다. 임금 감축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이들은 소리 낼 수 없다. 대부분 청소 노동자는 원청인 기업이 직접 노동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용역업체에 고용된 노동자를 이용하는 간접고용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고용 불안과 실체 없는 책임자 앞에서 노동자는 절로 말문이 막힌다. 정부 차원에서 휴게 시설을 의무 설치하고,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한국의 글로벌 랜드마크라고 높이 치솟기만 하는 빌딩과 호텔에는 수백수천억이 오가는데,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모방하는 넓은 부지의 공원도 생겨나는데, 청소 노동자에게 환풍 잘 되고 적정 온도를 유지하며 쉴 장소에는 돈도 없고 공간도 없다.                                                                                                                                                                                           

서울대 공과대학 지하 휴게실은 사진으로만 보아도 비좁고 구저분했다. 퀴퀴한 공기를 내뿜는 공간이었다. 휴게실 문을 열어두면 서울대 학생들이 지나다닐 때 보기에 좋지 않다고 해서 문은 항상 닫힌 상태였다. 그리고 거기 한쪽 구석에는 『긍정의 힘』이란 책이 놓여 있었다. 이제 고인이 된 그가 책 『긍정의 힘』을 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곳에는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살아보고자 심장 수술을 잡아 놓은 사내가 분명히 있었다.


휴게 공간으로 최소한의 구색만 갖추었어도 면할 수 있는 죽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사업주의 휴게 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미비할 경우 법적인 처벌 규정까지 내리는 방안이 절실하다. 더는 비슷한 뉴스를 보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매일 들어서는 건물에서 마주하는 노동자의 피로를 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며칠 뒤 회사에 갔을 때 화장실에 붙어있던 A4 용지는 떼어져 있었다. 그 후로도 제대로 된 갑질을 보여주겠다는 말이 무색하게끔 화장실은 깨끗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우리 회사 사무실에서는 일회용 컵을 사무실 내에 반입하지 않는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환경 보호를 위해 텀블러 사용을 권장하는 기업 문화를 만들기 위함이다. 사무실에 들어오지 못하는 일회용 컵들이 고스란히 화장실에 버려지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은유 작가는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에서 타인의 고통을 말했다. "내가 구상하는 좋은 세상은 고통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고통이 고통을 알아보는 세상이다." 고통이 없는 세상보다 고통이 고통을 알아보는 세상이 더 어렵게만 보인다. 왜냐하면 내가 식탁에서 당연하게 먹는 밥을 화장실 한 쪽에서 당연하게 먹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화장실에서 밥 먹는 일이 마치 죄인 것처럼 화장실에 사람이 들어서면 급히 도시락을 치운다. 어디까지가 그들의 몫일까. 당연하다는 말은 응당 많은 이에게 당연하게 여겨져야 하는데, 그 마땅함에 있어서 이토록 차이가 난다. 당연하다는 말이 더 이상 당연하지가 않다. 놀랍지도 않은 일이다.



-경향신문, "아무렇게나 주무르고 만졌다"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의 '눈물의 삭발식'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121727001#csidxa7142c94e5d440a93682741935444f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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