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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으는 돼지 Jul 07. 2020

승무원 면접에서 떨어진 날

승무원 면접 합격 발표 날에는 케이크 한 판을 고이 옆에 두고 확인했다. 합격한다면 그대로 케이크를 들고 거실로 나가 가족들과 축하 파티를 할 생각이었다. 혹여 떨어진대도 달달한 케이크는 울적한 기분을 달래기 위한 효과적인 디저트라고 생각했다. 승무원 면접 전까지는 그래도 체중 관리해보겠다고 케이크를 멀리했으니까, 떨어진 마당에 가릴 건 없었다.


합격자 조회 화면에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나면 “죄송합니다, 날으는 돼지 님은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로 시작하는 문구가 튀어나왔다. 혹시 전산 담당자의 실수는 아닌지, 면접관이 나와 옆에 면접자를 헷갈려서 점수를 잘못 준 건 아닌지 모를 일이었다. 몇 번이고 다시 확인을 해도 불합격이었다.


불합격이란 말에서 짝사랑하는 이에게 거절당한 기분을 새삼 느꼈다. 이럴 거면 면접관은 그때 왜 내 답변에 웃어줬으며! 승무원이 되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뭣 하러 물어봤는가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일개 승무원 지망자인 나는 그저 방문을 열지 못하고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속상하고 서운한 데다가 억울하기까지 한 심정에 눈물이 그야말로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고등학교 시절 나를 상사병에 걸리게 해 수능을 망치게 만들었던(핑계?) 전교 부회장 남자애에게 차였을 때도 찔끔거리는 정도로 눈물이 나왔는데... 항공사에 대한 사랑이 이토록 크다니.


열리지 않는 방문에 엄마랑 아부지는 딸이 공채에서 떨어졌음을 직감하고, 눈치 보느라 노크도 하지 못했다. 울고 울다가 지치면 그제야 옆에 놓인 케이크가 눈에 들어왔다. 불합격 문구가 보이는 화면 앞에서 케이크를 놓고 우적우적 먹기 시작했다. 눈치 없는 오빠가 벌컥 문 열고 들어와 그 모습을 보더니 “왜 사냐” 한마디를 던지고 나갔다. 그렇게 승무원 면접에서만 8번을 떨어졌으니, 케이크도 총 8판을 해치운 셈이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비행과 그 비행을 책임지는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지만, 이따금 내가 그리던 승무원의 모습으로 비행을 이어나가고 있는지 자신이 없다. 지금은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케이크 한 조각씩을 곁들여 먹는다. 승무원 친구들과 각자 비행 에피소드를 풀어놓으며 웃다가 한 입씩 먹기에 바쁘다. 문득 케이크를 고르다 조각 케이크 옆에 한 판짜리 케이크를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 혼자 울면서도 케이크 한 판을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던, 그러면서도 포기할 수 없어 울음을 그치고 다시 내일 할 모의 면접 스터디 모임을 잡던 그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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