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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Flight May 01. 2020

잊지 못할 비행 (1) ㅡ 북한 평양

- 내 기억 속에 '확' 꽂힌 비행 얘기 -

2020년 현재 대한항공은 44개국 125개 도시를 취항하고 있다. 125개 도시 중에 내가 안 가본 도시는 어디 있을까? 대충 세보니 열 개 정도 되는 것 같다. 몇 년 전 취항했다가 승객이 없어 단항 된 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 승무원 사이에서 사파리 투어가 인기였는데...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 배경지였던 짤쯔브르크의 나라 오스트리아 비엔나. 또 어디가 있을까? 은퇴까지 아직 많이 남았으니 언젠가는 다 가볼 수 있겠지?


"내레 고저 남조선에서 왔쑤다" 

지금까지의 비행 중에서 가장 잊지 못할 비행을 하나 뽑으라면 평양 비행을 꼽을 수 있겠다. 비행을 시작한 지 1년쯤 지났을 때였다. 비행 스케줄에 '평양'이 찍혔다. 남한의 NGO 단체가 전세기를 타고 북한을 방문한단다. 그 비행에 내가 불렸다.


-     ‘평양 시내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오는 거야?’

-     ‘평양 시내 구경할 수 있는 거야?’

-     ‘평양 사람들하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거야?’


회사에서는 평양 비행을 앞두고 주의 사항을 메일로 보내주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북한 사람들을 자극하지 말 것’이 주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실망스럽게도 당일 갔다가 돌아오는 퀵턴 (QUICK TURN)비행이었다. 그래도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 일 수 도 있는 평양 비행을 앞두고 마음이 설레었다. 평양 비행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성능 좋은 카메라도 챙겼다.


평양 비행은 만석이었다. 비행시간이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았다. 김포공항에서 이륙하면 바로 평양 공항이었다. 제주도보다 가까운 거리였다. 이륙 후 승객들에게는 간단한 식사와 음료가 제공되었다. 짧은 비행시간에 만석 비행... 정신없이 서비스를 하다 보니 어느새 평양 공항 도착을 알리는 기장의 방송이 들렸다. 승무원들은 식사 제공과 동시에 걷다시피 했다. 식사를 받은 승객들은 받자마자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반납해야 했다. 그래도 평양을 방문한다는 설렘에 누구 하나 불만이 없었다.

평양에 도착 후 비행기에서 내리니 와! 하늘은 파랗고, 공기는 시원하다. 매연 하나 없다. 공항 한 복판에 큼지막하게 걸려있는 김일성 수령동지의 사진이 보인다. 사람들은 공항을 배경으로, 수령 동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승무원들은 공항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체류 시간은 약 3시간... 간단한 입국 절차를 거쳐 공항 내 식당으로 갔다. 점심 메뉴는 평양냉면.... 맛이 담백하다. 조미료가 하나도 안 들어간 것 같다.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지만, 평양에서 먹는 진짜 평양냉면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경험이었다.


밥을 먹고 한 시간 정도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승무원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공항 내 면세점이 전부였지만 다시는 못 올 기회였기에 열심히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면세점에서 철쭉 술과 담배도 샀다. 신기하게도 달러로 물건을 살 수 있었다. 


경계의 눈빛으로 우리는 바라보는 북한 사람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도 하고, 팔짱도 끼고, 친한 척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한 아줌마가 나에게 결혼을 했냐고 물었다. 미혼이라고 대답하니 "이렇게 잘 생긴 남자가 결혼도 안 했음 문제 있는 거 아니냐"고 농을 건다. 내가 "남조선에서는 이렇게 북조선만큼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없다"라고 옆에 있는 북조선 아가씨들을 가리키며 얘기하자 "북조선으로 오라"고 유혹한다. 살짝 마음이 흔들렸으나 곧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가 출발한다는 안내 방송이 들려 아쉬움을 뒤로하고 평양을 떠나야 했다.


다녀온 지 16년이 지났지만, 함께 사진을 찍었던 북한 사람들, 아저씨, 아줌마, 아가씨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 평양공항 가서 그 사람들을 찾아보라고 하면 사진을 보고 찾지 않더라도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비행, 짧은 인연이었지만 특별하고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평양 비행이었다.


감히 수령님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다니, 총살감이다 / 그도 자유를 꿈꾸는가? / 북한 미녀 아가씨..
우리는 '어깨 동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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