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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Flight May 01. 2020

잊지 못할 비행 (2) ㅡ 인도 뭄바이

- 물난리를 탈출하라 -

인도 뭄바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 비가 오고 있었다. 일기 예보를 보니 내일도 '비'다. 3박 4일 비행이라 하루하고 반나절 자유 시간이 주어지는데, 처음 온 인도 비행. 비가 온다고 호텔에만 있을 수 없다. 다음에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데 시내 구경이라도 가야겠다.


다음 날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여승무원들은 곱게 입은 옷이 비에 젖을까 다들 호텔에 있겠단다. 버스에 탄 사람은 나를 포함해 기장과 부기장 단 세명뿐. 그들도 나처럼 사진이 취미라 했고, 각자의 손에는 성능 좋은 D SLR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버스 운전기사에게 팁을 주면서 사진 찍기 좋은 곳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기사도 정해진 일정이 없는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단다.


그날 우리 셋은 세계 최대의 빨래터로 알려진 '도비가트'를 시작으로, 몇 군데 힌두교 사원을 들렸다. 인도 사람들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서 사진기를 들이대면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주었고, 가끔은, 사진기를 들고 있는 우리를 보고는 사진을 찍어 달라고 먼저 부탁을 하곤 했다. 인도의 문 (GATE OF INDIA)을 끝으로 그날의 사진 여행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하루 종일 비가 오고 있었지만 사진 찍는 것에 열중해서 몸이 젖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우리는 각자 찍은 사진들을 돌려보며 '품평회'를 가졌다.


같은 피사체라도 찍는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까지 내 사진의 주제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의 표정뿐만 아니라 감정까지 사진에 담으려 했다. 낯선 사람이 커다란 사진기를 들고 다가오면 대부분의 사람은 거부감을 느끼고 사진 찍히는 것을 거부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몰카'를 찍을 수밖에 없는데, 나는 그런 사진을 싫어했다. 사진 찍고 싶은 대상에 웃으며 다가가 나의 의도와 목적을 말하고, 허락해 주면 그때 셔터를 눌렀다. 거절하면 돌아섰다가, 뜸을 두고 다시 웃으며 부탁했다. "당신의 모습을 사진을 찍으면 예술이 될 것 같다. 당신은 예술적으로 생겼다. 사진 찍게 허락해 줄래?" 두세 번 부탁하면 대개 사진을 허락해 주었다.  (아래 사진들 밑에 글과 사진 더 있음)






* 당시 사진기에 담은 인도/인도 사람들



각자의 개똥철학이 담긴 사진을 서로 감상하며 호텔로 돌아오는데, 이상하게 호텔 셔틀버스가 움직이지 않는다. 아까 서 있던 자리에 그대로다. "무슨 일이에요?" " 비도 많이 오고, 퇴근 시간이어서, 차가 많이 밀리는 거야". 운전기사는 별거 아니라는 듯 무심히 말했다.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 앞은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우리 맥주나 한잔 할까요?" 기장이 묻는다. 좋다! 비 오는 날은 막걸리지만 여긴 막걸리가 없으니 맥주나 한잔하자. 어차피 버스 안에는 우리 셋밖에 없다. 호텔에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겠고, 오늘 하루는 시간이 많으니 맥주나 마시면서 버스가 출발하길 기다렸다. 그렇게 두어 번 버스와 슈퍼를 오가며 맥주를 사 와 마시는데도 버스는 출발할 기미도 없고, 밤이 깊어갔다.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갑자기 밝은 빛이 들어와 단잠을 깨운다. '호텔에 도착했나?' 눈을 떠보니 어? 아침이 밝았다. 하루가 지난 거다. 그런데 어제 버스가 서있던 자리 그대로다. 운전사도 운전대에 기대어 잠들어 있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기장과 부기장도 눈을 뜨고 이게 무슨 일이냐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저 앞에 강물이 범람해서 고속도로를 덮쳤어. 물이 빠져야지만 차가 움직일 수 있어". 호텔까지의 거리를 물으니 10km쯤 된단다. 고속도로를 쭈욱 따라 3시간쯤 가면 나온단다.


길게 늘어선 인파. 나도 저기 끼였다.

비는 그쳤지만 강물이 언제 줄어들지, 버스가 언제 출발할지 모르겠다. 우리 셋은 걸어가 보기로 했다. 대충 10km쯤 걷다가 인도 사람들에게 호텔 이름 대면 - 하얏트 - 위치를 알려주겠지.


버스에서 내리는데 땅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버스도 바퀴가 반쯤 물에 잠겨있다. 앞을 보니 물난리를 벗어나려는 차량, 사람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다. 우리도 그 행렬에 끼어들었다. 물속에 뛰어드니 가슴 높이까지 물이 올라온다. 우리는 호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런 물난리 속에서 동양인 세명이 사람들 틈에 껴서 걷고 있는 게 신기한지 현지인들도 우리를 쳐다본다. 우리가 들고 있는 사진기를 보면서 사진을 찍어달라는 사람도 있다. 사진기가 젖을까 머리 위에까지 올리고 걷고 있었다. 사진기야 다시 살 수 있지만 이런 상황은 다시 만날 수 없다. 우리는 물속에서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한참을 걸으니 사람들이 팔짱을 끼기 시작한다. 강물이 센 곳이라서 혼자서는 건널 수 없단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살기 위해서 서로 스크랩을 짜서 건넌다. 기장, 부기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물속에서 사진을 찍다 보니 다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인도 사람들이 나에게 손을 내민다. 같이 물을 건너자는 거다. 비닐봉지에 사진기를 넣고 왼쪽, 오른쪽 인도 사람과 팔짱을 꼈다. 그리고 한 발짝, 한 발짝 거센 강물을 조심히 헤치고 나왔다. 몇백 미터쯤 걸으니 물살이 약해지고 생사고락을 같이한 주변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렌즈에 물이 들어갔는지 찍는 사진마다 습기로 뿌옇다.


세 시간쯤 걸었나 보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호텔이 저쪽에 있단다. 사람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오는데 길바닥에 하얀 천에 쌓인 무언가가 놓여 있다. 저게 뭐냐고 물으니 '죽은 사람'이란다. 그러고 보니 천 밖으로 시커먼 발이 삐져나와 있었다. 물난리 중에 죽은 건가? 그렇다고 시체를 길바닥에 저렇게 그냥 내버려 두다니...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해가 떴다. 호텔이 저 멀리 보인다. 문득 땅 위에 노란 것이 군데군데 보인다. 저건 또 뭘까? 싶었는데.... 똥이다. 사람 똥. 어떻게 사람 똥인지 아냐고? 아니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아나. 나도 사람인만큼, 그리고 매일 아침 그 똥의 생산자로서, 사람 똥과 된장 정도는 찍어먹지 않아도 구분할 줄 안다. 개 똥을 사람 똥으로 착각하는 거 아니냐고 할 수 도 있지만 그건 분명히 사람 똥이었다. 개 똥은 보통 시커먼데 그건 노란, 샛노란, 소화 잘되는 음식을 먹어, 예를 들어 평소에 섬유질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어 평생 변비란 걸 모르는 사람이 똥꼬에 힘주지 않고도 편하게 뱃속에서 내밀어 버릴 수 있는 그런 똥이었다. 인도는 화장실이 부족해 아무 데나 큰일을 본다던데, 그것이 저 똥인가 보다. 비가 올 땐 물에 씻겨가, 혹은 물에 잠겨 못 봤는데, 해가 뜨니 똥이 보인다. 그렇다면 아까 내가 건넌 물도 똥물이 아니었을까?


호텔에 돌아오니 온몸이 진흙 (어쩌면 똥?) 투성이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놓고 때 때수건으로 온몸을 박박 문질렀다. 물난리로 뭄바이 공항도 폐쇄되었단다. 그 탓에 우리가 타고 돌아갈 비행기도 인천공항에서 출발을 하지 못하고, 뭄바이에서 하루 더 체류하였다.


인도 비행은 두 번 더 갔다. 첫 번째 비행의 임팩트가 너무 강해 이후 비행에서는 호텔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호텔은 호텔 너머 택시의 클락션 소리, 릭샤 경적 소리, 사람들의 똥 냄새를 완벽하게 차단해 주었지만, 문득문득, 함께 강물을 건너자고 나에게 손을 내밀던 인도 사람들의 짙은 눈빛이 아른거리곤 했다.





* 인도 사람들과 함께 물난리를 헤쳐가며 찍은 사진들...

사진이 갈 수 록 흐릿하다. 빗속에서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도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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