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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Flight May 03. 2020

비행기에서 만난 사람들 (1)

-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 사람들 - 




승무원은 비행기에서 많은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대부분 탑승 때 처음 만나, 비행기에서 내릴 때 이별하고, 서로 잊혀진다. 그래도 개중에는 내 기억에 깊게 각인되어, 오랫동안 기억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1. 고등학교 동창 만날 썰


부산에서 상해로 가는 비행기 안. 화장실에서 나오던 남자 승객과 눈이 마주쳤다. 보통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어색해서라도 서로 시선을 피할 텐데... 승객이나 나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계속 쳐다본다. 먼저 말문을 연 것은 나였다.


나 : "혹시, 우리 아는 사이 아닌가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승객 : "그렇죠. 나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나 : 동네 분인가? 어디 사세요? 전 김해 사는데....


승객 : 전 상해 살아요. 김해랑은 인연이 없는데... 그런데 왜 이리 낯익죠?


나 : 고향이 어디예요? 전 천안 출신인데..


승객 : 천안에서 고등학교 나왔어요. 천안 북일고..


나 : 어~ 나도 천안 북일고 나왔는데.... 11회....


승객 : 나도 북일고 11회 졸업생인데... 이름이 뭐야?


알고 보니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같은 반도 했었는데 강산이 세 번 바퀴는 동안 만난 일이 없으니 못 알아본 것도 이상하지 않다. 중국인 아내와 딸을 데리고 부산 여행을 왔단다. 당분간 상해에서 살 거라며, 상해에 놀러 오라고 하는데, 아직 가보진 못했다.





2. 카톡 친구 만난 썰


역시 부산발 상해행 비행기에서의 일이다. 한 여자 승객이 케리어 가방을 끌고 오는데 꽤 무거워 보인다. "도와 드릴까요?" 서비스 정신을 발휘해서 가방을 기내 선반에 올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이륙 후 기내식 서비스를 하는데, 그 여자 승객은 아침을 먹고 왔는지 밥을 안 먹겠단다. "땅콩이라도 드시겠어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당사의 땅콩을 한 움큼 쥐어 주었더니 너무 좋아한다.


비행을 마치고 집에 와서 중국어 카톡 스터디에 접속했다. 공부한 중국어 표현들을 사진 찍어 '인증'하는 스터디였다. 멤버들의 이름도, 직업도, 사는 곳도 모르는 온전히 중국어 공부가 목표인 모임이다.


스터디 멤버 중 한 사람이 "본인이 오늘 상해 출장을 와서 스터디 인증을 하기 힘들다"라고 한다. "상해요? 인천서 가셨어요 어느 항공사 탔어요?" 내가 물었다. "아뇨. 부산에서 출발했는데요. 대한항공이요".


부산이라면 오늘 내가 다녀온 비행인데... 이야기를 더 나눠보니 아침에 내가 기내 선반에 가방 올리는 것을 도와준, 비행 중 땅콩을 한 움큼 안겨주었던 여자 승객이었다. 내릴 때 제대로 감사 인사를 못했다며 카톡으로 인사를 하기에 더 좋은 방법이 있다고 알려줬다. 며칠 뒤, 회사에 칭송 레터가 접수됐다. 발신인은 그녀였다.





3. 문재인 승객에게 (그때는 대통령이 아니셨다) '대통령 돼라'라고 명령한 썰


광주행 비행에서의 일이다. 나는 해당 편 사무장이었다. 승객 탑승 전 지상 직원이 "오늘 VIP가 타십니다. 잘 모셔주세요" 부탁을 한다. VIP가 누구냐고 물으니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란다.


그분을 응원하고, 선거 때 그분에게 한 표를 던졌다. 아니, 아내까지 두 표였다. 결과는 내 맘처럼 나오지 않았지만, 한 때 그분을 응원했던 사람으로서 그분이 내 비행기를 타신다니 마음이 설렜다. 잠시 후, 저 멀리 그분이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비행기에 탑승하신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사무장입니다. 광주까지 편히 모시겠습니다. 좌석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분은 "고맙다"라고 하시며 따뜻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셨다.


"악수 한번 해주십시오?" 악수를 부탁드렸더니 내 손을 잡아주신다. 손도, 미소만큼, 따뜻했다. 나는 그분의 손을 놓지 않았다.


"지난번에 대통령 안되셔서 실망했습니다. 이번에는 꼭 대통령 되는 겁니다. 약속해 주세요".


'돼주세요'가 아니라 '되는 겁니다'로 말했다. 부탁이 아니고 명령이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사무장 나부랭이가 감히 대통령 후보에게 명령을 내리다니. 70년대였음 남산에 끌려가 물고문 당했을텐데.


그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몇 달 뒤 나와의 약속을 지키셨다. 아니 내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말하면 오버인가?


* 혹시, 그분이 이 글을 읽고 리플 달아주시는 거 아닌가?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 "리플 다는 겁니다".........라고 얘기해야 하나?

* 그분을 아시는 독자가 계시면 그분께 '리플'하나 부탁드린다고 전해 주세요..

* 전해주시는 분께, 인증샷 보내주시면, 항공사 볼펜 10종 세트 택배로 보내드립니다. '택포'로~



그때, 악수하고 사진 한 장 찍었어야 하는데.... 아쉽다.


* 브런치 북 <비행에 꽂히다>에는 13편의 글만 실었습니다. 나머지 글을 읽기 위해서는 저의 브런치 매거진으로 '환승 (Transit)'하셔야 합니다. 환승을 위해서는 상단 혹은 하단의 제 브런치 아이디 happy flight 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그럼 환승 준비 되셨나요? 벨트매시고, 이륙합니다. 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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