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ppy Flight May 13. 2020

비행기에서 만난 사람들 (3-1)

- 비행이 맺어준 평생 인연 -


아내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승무원 동기 모임에서였다. 일반직을 떠나 비행 한지 4년쯤 되었을 때였다. 이제는 다들 비행 업무에 익숙해져 객실에서 자기 자리를 착착 다지고 있었다. 사무장 직책을 맡고 있는 동기도 있었다. 4년 정도 비행하니 이런저런 '이례 Irre' (항공 용어 : Irregularity 비정상 상황)도 경험하고, 다양한 승객/승무원을 만나다 보니 오랜만에 동기들과 모인 회식 자리에서는 안주가 필요 없을 정도로 대화 주제가 풍성했다.


대화 도중 동기 종현이가 나에게 한마디 했다. 종현이는 비행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여승무원 송미를 만나 사귀다가 결혼을 하였고, 동기 모임 당시 애가 둘이었다. (지금은 셋이다)


-- 형 (종현이는 나보다 4살 어리다)은 비행한 지 4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사귀는 사람 없어? 꽃밭에서..어? 어?


역시나 비행하자마자 여승무원과 결혼한 주현이도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주현이도 현재 애가 셋이다.


-- 형, 여승무원중에 이쁘고 참한 애들 많은데. 한 명 골라 결혼해. 남승무원은 여승무원하고 결혼하는 게 최고야. 외모야 말할 필요 없고, 서비스 마인드가 장착돼 성격 좋지, 비행 업무를 잘 아니 대화 거리도 많지, 그리고 자주 집도 비워주잖아. 4년 동안 뭐했어? 괜찮은 사람 많은데...


그때 종현이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며 전화기를 들었다. 종현이는 얼마 전 객실 강사 교육을 받았다. 그 강사 과정 중에 박 xx 여강사가 있었는데, 이쁘고, 똑똑하고, 성격 좋아 보였단다. 아무튼 나랑 잘 어울릴 것 같다며, 박강사가 공항 근처에 산다는 것 같은데, 전화해서 우리 회식 자리에 불러보겠단다.


뚜르르~ 뚜르르~ 동기들 모두가 종현이가 켜놓은 스마트폰의 스피커 소리에 귀를 쫑긋했다. 몇 번 저쪽으로 가는 신호음이 들리고 딸칵~ 전화받는 소리가 들리더니 종현이가 스피커를 끄고 전화기를 든다. 두 사람 사이에 몇 마디가 오간다. "아! 그래요. 에이 괜찮아요. 다들 아는 승무원들이에요. 술과 고기는 우리가 쏠게요" 종현이가 박모 강사를 이곳으로 오게 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잘 안 되는 느낌이다. 나라도 오기 싫겠다. 다들 모르는 사람들이지, 대부분 남자지, 자기보다 직급 높지, 회사 사람들이지, 뭐 좋다고 오고 싶겠는가! 그때, 종현이가 전화를 끊으며 아쉬워한다.


-- 형! 장거리 비행 갔다 와서 피곤하다고 집에서 쉰 대.


-- 그래? 아쉽네.


겉으로는 아쉬워했지만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런 시끌벅적한 술자리에서, 평소에도 빨간데 술을 마셔 더욱 빨개진 얼굴로 그녀를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언젠가 인연이 있다면 다시 보겠지' 그날은 그렇게 동기들과 술과 고기, 또 비행, 승객, 동료들을 안주 삼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술에 취해, 얘기에 취해가면서도 나는 종현이가 알려준 박 XX이라는 이름만은 머릿속에 저장해 두었다. 그 이름의 주인공이 훗날 내 아내가 될 줄은, 그때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일반직으로 입사해서 승무직으로 전직한 사내 파견 동기들. 공채 승무원들과 비교해서 외모가 떨어짐을 인정한다. 한 명 빼고...




동기모임이 있은지 얼마 후 나는 날개를 잠시 접고 사무실 근무를 하게 되었다. 훈련원에서 서비스 강의 교안 개정 작업을 해야 하는데, 성격 좋고, 잘생기고, 몸매 좋은 (이건 아니잖아!) 내가 뽑힌 것이다 (그게 그거랑 무슨 상관?).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에 파묻혀 강의 교안 작업에 몰두했다. 신입 객실 승무원들이 입사하면 훈련원 강사들이 교안을 보며 안전/서비스 강의를 하는데, 내가 만드는 이 강의 교안이 대한항공의 객실 서비스의 '질 (퀄러티)'을 좌우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일했다. 그날도 컴퓨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자판을 두들기고 있었는데, 훈련원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들어왔다.



- 안녕하십니까! 다음 달 신입 승무원 훈련 강사로 내려오게 된 박 XX입니다.


다음 달에 입사하는 신입 승무원들이 많은가 보다. 신입 승무원 훈련을 담당하게 될 현장 강사들 (평소에는 비행을 하다가, 신입 승무원이 입사하면 비행을 멈추고 훈련원에서 신입 훈련을 담당함)이 어제와 오늘 인사차 훈련원에 들렸다. 나는 교안 작업에 열중하느라 그들이 인사를 해도 대충 받는 둥 마는 둥 했는데, '잠깐, 지금 인사 온 저 신입 강사 이름이 뭐랬지? 박 XX? 동기모임 때 종현이가 얘기했던 그 승무원이잖아? 하마터면 나랑 인연을 맺을뻔한? 이쁘고, 똑똑하고, 성격 좋다고 종현이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던 그 승무원. 속으로 생각하는데, 이놈의 얼굴이 생각만으로도 빨개지기 시작했다. 마침, 내 옆에 평소 나의 빨간 얼굴을 가지고 놀리기 좋아하는 김 차장님이 계셔서 박모 여강사와 내 얼굴을 왼쪽 오른쪽, 왔다 갔다, 번갈아 보시더니만


--잉! 강사님 (나) 왜 요렇게 얼굴이 빨개졌어? 신입 강사 내려온다고 좋아서 그런 거야?. 맘에 들어?


그 말을 듣고 박강사도 얼굴이 빨개진다 (화가 나서?)


-- 잉! 박 XX 강사님도 얼굴이 빨개졌네? 뭐야. 나를 사이에 두고 왜 두 사람이 얼굴이 이렇게 빨개지는 거야! 둘이 맘에 들면 내가 엮어줄까? 싱글끼리 엮어줘 봐?


주변 강사들도 덩달아 웃고, 웃음소리가 커질 수 록 훗날 나의 아내가 될 박 XX 승무원과 나의 얼굴은 불타올랐다. 그때는 몰랐다. 몇 달 후 박 XX 승무원과 내가 사랑에 빠질 줄은....


사진 출처는 '구글'. 십일 년 전 내 교육생 들. 지금은 사무장이나 애기 엄마가 돼있을 듯. 난 사진을 공개한 적이 없는데, 내가 나눠준 사진을 본인 인스타에 올려서 검색 가능.


매거진의 이전글 비행기에서 만난 사람들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