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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Flight May 25. 2020

"할머니 손처럼, 따뜻한 서비스"

- ♪승무원 손은 약손 ♫ ~ -

"승무원 손은 약손" / 사진 출처 http://kid.chosun.com/site/data/html_dir/2002/07/31/2002073100002.html


태국 푸껫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 동료 승무원이 기내 환자가 발생했다며 급하게 나를 찾는다. 승무원과 함께 기내 뒤쪽으로 가보니 중국인 남자 승객이 옆구리를 움켜쥐고 바닥에서 구르고 있다.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으니 (你哪不舒服?) 옆구리가 아프단다. 어떻게 아프냐고 물으니 대답은 하는데 못 알아듣겠다. 환자의 상태를 봐서는 조금 심각한 것 같다. 동료 승무원들에게 임무를 부여했다.


-     xxxx 씨는 기장님한테 환자 발생 보고하세요.

-     xxxx 씨는 닥터 페이징 (Doctor paging)하세요

-     xxxx 씨는 기내 의료 약품 가져오세요

-     xxxx 씨는 환자 일행들 데리고 오세요


환자 승객이 오른쪽 옆구리를 눌러달라고 한다. 아픈 부위를 누르고 마사지를 해주니 좀 낫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기내에 탑재된 맥박 측정기와 혈압 측정기로 맥박과 혈압을 재보니 정상이다. 그래도 환자는 아파 죽겠다는 표정이다.


일행들이 와서 환자 승객의 병명을 얘기해 주는데, 그들은 영어가 짧고 나는 중국어를 잘 몰라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메모지에 병명을 써달라고 한 후 중국어 사전 어플로 확인해 보니 '신장 결석'이다. 내가 병명을 알아맞추자 환자 승객이 쓴웃음을 짓는다. 평소 먹는 약이 있냐고 물으니 없단다. 위성전화를 통해 지상에 있는 회사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몇 가지 기내 약 처방을 받았는데 환자는  먹겠단다. 그냥 아픈 부위 마사지 해달라고 한다. 이후 두어 시간 환자 옆에 앉아 뜨거운 물을 마시게 하고, 아픈 부위를 눌러 주었다. 마사지를 하다 보니 문득 내가 어릴 적 배가 아플 때 할머니가 내 배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읊으시던 마법의 주문이 생각났다.


-     쓱쓱 내려가라. 할머니 손은 약손! 쓱쓱 내려가라. 할머니 손은 약손….


할머니가 배를 몇 번 주물러 주시면 신기하게도 아픈 배가 뚝딱 나았다. 할머니 손길의 포근함은 세상 어느 약보다 더 큰 효과가 있었다. 나도 환자에게 마법을 써보기로 했다.


- 승무원 손은 약손… 쓱쓱 내려가라… 승무원 손은 약손… 쓱쓱 내려가라


리듬을 넣어 마법을 주문을 넣었다. 승객은 내 마법의 주문이 자장처럼 들리나 보다. 옆에서 가끔씩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뱃속의 아픔보다 참기 힘든 졸음이 찾아오는 새벽 비행이었다.


내 마법통했는지 환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줄어드는듯 했고 아파서 얼굴을 찡그리다가도 나와 눈길이 마주칠 때면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렇게 두 어 시간 승객을 간호한 후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 중에 미리 요청해 놓은 휠체어가 준비되어 있었다. 담당 직원에게 환자의 상태를 설명한 후 공항 병원으로 모시고 가 진료를 받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승객은 내 손을 꼭 잡고 <뚜어쉐, 뚜어쉐> 연신 고맙다는 인사말을 했다.


비행을 마치고 집에 와서 회사에 <환자 발생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얼마 뒤 회사로부터 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그 승객이 중국에 돌아가 회사에 감사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승무원 덕분에 중국으로 돌아갔고 병원 치료 후 지금은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비행 중에 헌신을 다해 자신을 간호해 준 승무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는 내용으로 메일은 끝을 맺고 있었는데...


"중국 사람들은 웬만하면 칭찬 편지를 보내지 않는데 승무원이 어떻게, 얼마나 잘했길래 이 승객이 감사 편지를 썼냐"며 객실 본부장님께서 궁금해하신다는 것이다. 전화를 거신 분은 내게 그 당시의 상황을 보고서로 다시 한번 써줄 수 있겠냐고 물으셨다. 그러면서 "잘하면 본부장님 표창도 받을 수 있겠네요" 여운을 남긴다.


직원이 요청한 대로 당시 상황과 승무원 조치 내용을 보고서로 제출했다. 그리고 한 달, 두 달, 몇 달이 지나도 본부장님 표창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승무원이라면 누구나 나처럼 했을 테고 ('승무원 손은 약 손'은 나만 했을 것 같기도 하다), 칭송이나 표창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기에 실망 같은 건 없었다.


어느 날, 비행을 가는데 선배 승무원이 환한 얼굴로 "이사무장, 축하해"한다. 웬 축하? 인가 싶어 물었더니 "몰랐어? 사장 표창받았던데?" 회사 소식을 확인해 보니 '서비스 모범' 사장님 표창 직원 명단에 내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닌가. 머리털 나고 처음 받아보는 상이 었다. 그날 함께 비행한 팀원들로부터 많은 축하도 받고, 축하에 대한 감사 표시로, 아직 상금이 입금되지는 않았지만, 비행 가서 팀원들에게 저녁도 한턱 쐈다. 승무원은 팀으로 비행하기 때문에 나 혼자 잘해서 받은 상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 상 덕분에 소고기도 사 먹고, 그 해 인사 고가도 잘 받아 진급도 했으니, 오히려 내가 승객에게 감사 편지를 보냈어야 했나 싶은 생각도 든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아픈 배를 어루만져 주던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 같은 그런 서비스를 하고 싶다고 다짐한다. 진짜로 어루만지는 건 아니고 배를 어루만질 때 배와 손 사이에 생기는 마찰력에 의해 느껴지는 그런 따뜻한 기운을 비행기에서 만나는 승객에게 전해 주는 승무원이 되고 싶다는 의미.....굳이 해석해주지 않아도 되겠지?






* 혹시나 싶어 검색해 보니 "엄마 손은 약손"은 과학적으로 '사실'이란다. 관련 기사는 아래 사이트를 클릭하거나 구글에서 <엄마 손은 약손>을 검색해 보시길..


http://kid.chosun.com/site/data/html_dir/2002/07/31/20020731000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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