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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Flight May 25. 2020

"Yes, I am a Yes Crew"

- 내 사전엔 'No'가 없다.

영화 Yes Man 재미있다. 강추 / 만석 비행기 사진 출처 https://m.blog.naver.com/kiwanryu/221505314566?view=img_30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 안은 빈 좌석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승객들이 기내 좌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공간적 거리와 마음의 여유는 비례하나 보다. 석일 때는 승객들도 예민해지고 승무원들도 여유가 없어진다. 낯선 사람이 옆에 앉으면 신경이 쓰이는 게 인지상정.


오늘 비행 중 내 업무는 부팀장 듀티.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서비스를 주도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해결해야 한다. 어떤 일을 맡으면 그 업무와 관계된 사건이 생긴다. 내가 부팀장 듀티를 맡지 않았을 때는 아무 일 없이, 평화롭게 목적지에 도착하던데, 부팀장을 하면 꼭 일이 생긴다. 이런 걸 '징크스'라고 하던가?


아니나 다를까 비행 중 주니어 승무원이 도움을 요청한다. 본인 담당 존 (Zone) 승객이 좌석과 관련하여 불만을 말씀하단다.


승객을 찾아가 내 소개를 하고 불편한 것이 있는지 여쭈었다. (보통 "오늘 비행의 부사무장입니다. 담당 승무원으로부터 불편한 점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도와드릴까요?" 라고 말한다. 정.중.하.게)


승객은 “비행 중에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하는데 창가 쪽 좌석이라 화장실 다니기가 불편하다. 복도 좌석으로 바꿔 달라”고 하신다. 승객 불편을 경청 후 나는 "알겠습니다. 만석인 상황이라 쉽진 않겠지만 노해 보겠습니다"고 말씀 드렸다.


장거리 비행에서는 대부분의 승객들이 복도 좌석을 선호한다. 비행 중 화장실 가기도 쉽고, 기내 산책이 필요하거나 스트레칭이 하고 싶을 때 옆 승객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복도 쪽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 '다들 복도 좌석을 앉고 싶어 하는데 (경험상 '거의)'

- '누가 창가 좌석을 앉으려 할까? (있기나 할까?)'

- 그래도 해결해 드린다고 약속은 했는데(괜히 했나?)'

- '만석인 거 모르시나 (딱 봐도 아실 텐데)'

- 그냥 가시면 안 되나 (안되니깐 승무원에게 얘기했겠지)'

- '그래도 우리 엄니 같은 분인데(도와 드려야지)'


복도 좌석을 찾아 기내를 한 바퀴 돌아보는 내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으로 가득하다. 복도 좌석은 커녕 빈자리 하나 없다. 그때 문득 한 승객이 생각났다. 비행 중 수시로 승무원 좌석 (Jumpseat)으로 와 창문 덮개를 열고 창 밖을 바라보던 승객... 그 승객이 복도 쪽에 앉아 있었는데...


그 승객을 찾아 창가 쪽으로 좌석을 바꾸시는 것은 어떻겠냐고 물으니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신다. 본인은 오늘 비행기를 처음 탔기 때문에 비행기 바깥 풍경이 너무 보고 싶었단다. 창 밖을 볼 수 없는 복도 좌석이라 아쉬웠는데 어찌 내 맘을 알고 좌석을 바꿔주냐고 고마워하신다. 바깥 풍경이 궁금할 때마다 승무원 좌석으로 가 창문 덮개를 열어보곤 했는데 그것도 승무원 눈치가 보였단다.


두 분의 좌석을 서로 바꾸어 드리는데 서로 고맙다고 인사를 나누신다. 두 분의 환한 표정을 보니 내 마음도 밝아진다.


승객의 문제를 해결해 드리고 식사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는데 한 승객이 "오늘 식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불만을 말씀하신다. 본인은 고기를 못 먹는데 오늘 식사에는 모두 고기가 들어 있다며 입꼬리가 쳐져있다.


마음 같아서는 육지로 내려가 싱싱한 야채를 잔뜩 뜯어와 승객 앞에 놔드리고 싶지만, 지금 이곳은 에베레스트보다 수백 미터 더 높은 고도의 하늘. 그렇다고 승객을 굶게 할 수 는 없다. 이코노미 클래스 식사 재료들을 이용하여 메뉴에도 없는 비상 식사를 만들어 드렸더니 굳었던 표정이 표지고 얼굴에 미소가 돋는다.


그때 한 승객이 나를 부르신다. 이번에는 어떤 불만이실까? 걱정하며 승객을 찾아뵈니 기내 서신을 건네주신다. 혹시나, 서비스에 불편이 있어 기내 서신을 작성하신 것인지 물으니 환하게 웃으시며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하신다. 아까부터 불만 승객들을 응대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승객들의 불만과 불평에 항상 Yes로 대답하는 내 모습에 감동을 받아 칭송 편지를 쓰셨다고 하신다. 나를 보니 짐 캐리가 주연한 영화 Yes Man의 모습이 생각난다며, 앞으로도 그렇게 비행을 하라며 격려해 주셨다.


만석으로 운행되는 장거리 비행, 이런저런 소소한 문제들이 발생해서 조금은 지쳤었는데 승객의 칭찬 비타민을 먹고 나니 기운이 솟는다. 그리고 이후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샌프란시스코 비행을 무사히 마쳤다.                    


                                  <2009년 10월 샌프란시스코 비행 일기에 적혀 있던 내용을 이곳으로 옮긴다>





* 기내 상황이 항상 Yes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No 라고 해야 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업그레이드를 요청할 경우, (술 취한 승객이) 술을 더 달라고 할 때, 주변 승객에게 불편을 끼칠 때는 나도 No를 외친다.


* 승객의 요청에 바로 No 라고 말하면 승객은 쉽게 상처 받는다. 그때는 No 와 No 사이에 두툼한 쿠션 (Cushion)을 깔아 놓는다. 죄송합니다만, 요청을 들어드리고 싶습니다만,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해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어쨌거나 결과는 No라는 얘긴데, 참 길게도 늘어놓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만, 그게 바로 고객에게 상처를 덜 주기 위한 거 아니겠습니까~


* 지금은 고객 서신이 없어졌다. 이제는 대한항공 홈페이지를 접속해서 칭송/불만을 접수해야 한다. 비행 중에 "고객 서신 가져오세요"라는 승객의 한 마디에 승무원이 울고 웃던 때가 있었다. 라떼는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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