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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Flight May 26. 2020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 고객의 말씀을 성장의 계기로 삼자 (말은 쉽다) -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지금까지 승객들로부터 칭찬받은 내용의 글만 썼다. 그 글만 읽은 사람은 내가 스마일 좋고, 젠틀하고, 친절한 승무원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 대략 틀린 말도 아니지만 사실 승객으로부터 두 번 불만을 받은 경험이 있다. 불만 내용을 이곳에 적는 것은 '고객 정보 보호 '차원 에서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생략하겠다.


한 달에 보통 장거리 2번, 중거리 2번, 단거리 4번, 국내선 2번 정도 비행을 한다 치고 17년을 비행해 왔으니 (2+2+4+2 = 10번 x 12달 = 일 년 비행 횟수 120번 x 비행 년수 17년 =) 지금까지 2,040번 비행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충~


2040회 동안 2번의 불만을 받았으니 백분율로 계산하면 (2 / 2,040 x 100=) 내가 불만을 받을 확률은 0.098 퍼센트 (1,000번에 대략 1번)가 된다. 1000번에 1번이면 뭐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승객의 불만은 업무 고가뿐만 아니라 마음에 커다란 생채기를 남기기 때문에 후유증이 크다.


승객 불만이 발생한다고 해서 모든 잘못을 승무원 탓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는 승무원이 작성한 경위서를 검토 후 승객의 오해라든지 억지 주장, 승무원이 매뉴얼을 지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고객 불만일 경우 승무원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승무원 잘못이라고 판단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내가 받은 2건의 불만 중 1건은 내게 큰 데미(Damage)가 없었다. 승객의 오해로 발생한 불만임이 나중에 밝혀졌기 때문이다. 나머지 한 건도 사연이 있는데, 역시나 이곳에 쓰는 것은 프로 답지 않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칠 수 있는 바람 부는 갈대밭, 혹은 속 깊은 구덩이가 있다면 몰라도...


"불만을 받았다고 화를 낸다거나 승객을 원망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어느 책에서는 말하고 있지만, 그게 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지만 사실 불만을 받았을 때 화가 나고, 승객을 원망했음을 고백한다. 그렇지만 '화'를 품고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슴속 '화'가 내 표정에 나타나 또 다른 불만의 불씨가 될 수 있다. 나는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 좋은 글을 읽고,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하며 땀을 흘리는 등의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이겨냈다.


사실 오랫동안 큰 사건 사고 없이 비행해 왔다고 자만하며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고객 불만은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좀 더 겸손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대나무가 크게 자라기 위해서는 마디가 필요한데, 고객 불만은 나를 더 성장시켜주는 좋은 마디가 되었다. 그리고 내 비행 생활의 쉼표였다. (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난번 만난 선배 승무원은 "지금까지 비행하면서 승객으로부터 한 번도 불만을 받지 않았다"고 은근 자랑했다. (선배 승무원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지만) 승객 불만을 받지 않는 방법은 간단하다. 승객과의 접촉을 줄이고, 승객과 필요한 말만 하며, 승객이 필요로 할 때만 나타나서, 요구하는 것만 주고 사라지면 불만을 받을 일이 없다. 승객이 승무원 호출 버튼을 눌러도 '다른 승무원이 응대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승무원 근무 공간인 갤리에 '짱'박혀 있으면 안전하다.


승객에게 더 잘해주고 싶어서, 승객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서 아일 (Aisle)에 나가는 횟수가 많을수록, 승객과의 대면이 많을수록 불만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렇지만 불만이 두려워 승객과 마주치지 않고 대화하지 않고, 승객에게 밥과 음료수만 건네주는 건 영혼 없는'자판기 서비스'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나는 기내에서 책을 보고 있는 승객과는 책을 주제로, 처음 파리 여행을 가는 승객에게는 루브르 박물관에 대해서, 네팔 여행을 가는 승객과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관해서, 기초 한국어 책을 보는 외국인 승객과는 경복궁 민속 박물관에 대해서 얘기를 나눈다. (그냥 '예'가 그렇다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내 얘기만 주저리 하는 것이 아니라 승객이 좋아할 만한 대화 주제를 가지고, TPO에 맞는 대화를 한다는 의미이니 오해 없기를)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다. 어려움을 겪고 나면 더 자라고 강해진다는 의미이다. 고객 불만은 안 받는 게 최선이지만, 받아도 너무 의기소침하지 않기를.... 오히려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한 자기 발전의 계기로 삼기를 나 자신에게 다짐해 본다. (말은 쉽다. 실천이 어렵지...)





* 승무원 같은 서비스 업계 종사자를 '감정 노동자'라고 한다. 감정노동이란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억누른 채 회사나 조직의 입장에 따라 말투나 표정 등을 연기하며 일하는 것’을 말한다. 언젠가 기사에서 본 건데 감정 노동에 가장 많이 시달리는 직업 중 하나가 항공기 승무원이라고 한다.


* 아무리 큰 비행기라도 기내의 물리적 공간은 좁다. 좁은 공간에서 일하다 보니 승객도 승무원도 마음의 공간이 좁아진다. 비행기에서는 감정 상하는 일이 많이 발생한다.


*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산책을 하며 햇빛을 먹고, 운동을 하며 땀 흘리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 내가 나의 소중한 감정을 보호하고 치유해 주는 방법이다. 이 글 쓰고 나는 앞 산에 다녀올 생각이다.

산에 도착! 햇빛도, 꽃도, 나무도, 바람도, 다 좋다. 이유미씨 책은 4권이다. 삶과 사물에 대한 그녀의 시선이 좋다. 4권 다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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