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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Flight May 27. 2020

"서비스는 계속되어야 한다"

- 그만 좀 묻자고요! -

1.

비행기에서 내리면 나도 고객이 된다. 객실 승무원이 된 이후 내가 서비스를 받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을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기대 이상의 서비스를 받으면 ‘그 서비스에서 무엇을 배울까’ 생각해 보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한다.


허리 통증으로 병원에 갔다. 비행 때 승객의 무거운 가방을 선반에 넣어주다가 허리에 무리가 갔나 보다. 집에 돌아와 스트레칭을 하고 핫팩으로 아픈 부위를 마사지했지만 통증이 가시지 않았다. 이왕 치료받을 거 제대로 받아보자는 생각으로 허리 치료를 전문으로 한다는 동네에서 제법 큰 한의원을 찾아갔다.


전문 병원답게 단계가 많았다. 의사 면담 후 침, 추나요법, 물리치료, 그리고 도수 치료. 검진서 작성 후 의사 면담을 하고 추나를 받으러 갔다. 의료진이 묻는다. "어떻게 오셨어요?" 의사에게 했던 얘기를 반복했다. 추나를 받고 침 치료실로 갔다. "어떻게 오셨어요?" 이번엔 간호사가 묻는다. 다시 그녀에게 아픈 부위와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침 다음에는 물리치료다. "어떻게 오셨어요?" 물리 치료사에게 다시 한번 아픈 부위와 이유를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도수 치료. 역시나 또 묻는다. "어떻게 오셨어요?" 그날 병원을 떠나기 전까지 총 네 번이나 의사와 간호사, 물리치료사 분들께 나의 아픈 부위와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물론, 병원 근무자들은 나를 처음 만나기 때문에 볼 때마다 아픈 부위와 이유를 물어볼 수 도 있겠지만 (병원 시스템을 잘 몰라하는 얘기일 수 있다. 혹 내가 잘 못 알고 있다면 이해해 주시길) 환자 입장에서는 똑같은 설명을 반복해야 했기에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가 환자 정보를 공유하면 좋을 텐데'라는 아쉬움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한 번이니깐 넘어가자 생각하고 그다음 주에 병원을 다시 찾았는데, 간호사가 또 묻는다. "어떻게 오셨어요? 어디가 아프세요?" 치료 때마다 나는 같은 질문을 받고, 같은 대답을 해야했다.


이후로 집 앞 작은 한의원으로 옮겼다. 손님이 적은 곳이라서 그런지 한번 다녀온 후 두 번째로 갔을 때 간호사와 의사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 "허리 통증은 어때요?" 묻는 의사의 말에 허리뿐만 아니라 마음도 나아졌다.




2.

한 사람이 미국 출장길에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어느 호텔에 묵게 되었다. 평소 알레르기 비염이 있는 이 사람은 호텔에 알레르기 비염 손님을 위한 베개가 있는지 물었다. 그러나 호텔에는 일반 베개만 있을 뿐 알레르기 비염 손님을 위한 베개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다음 날 업무를 마치고 뉴욕으로 간 이 남자는 우연히 샌프란시스코에서 묵었던 호텔과 같은 체인의 호텔에 가게 되었다. 방 안에 들어간 그는 깜짝 놀랐다. 침대 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제공해 드리지 못한 알레르기 비염 베개를 준비해 드립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그를 위한 베개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가 감동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이야기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 우연히 읽게 된 서비스 감동 사례다. 내가 하는 일이 서비스 업무이다 보니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사례를 자주 찾게 된다. 귀감이 되는 사례를 만나게 되면 ‘어떻게 내 업무에 적용해 볼 수 있을까’하고 고민해 보고 내가 비행기에서 만나는 승객들에게 응용해 보겠다고 다짐한다.


런던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일이다. 이륙 후 창가 좌석의 주문형 오디오 비디오(AVOD)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승객에게 사과한 후 업무 매뉴얼에 따라 수리를 해보았다.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복구되지 않았다. 그날은 만석이어서 좌석을 옮겨드리기도 여의치 않았다.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승객에게 정중하게 상황을 설명한 후 기내에 탑재된 DVD 플레이어를 제공했다 (지금 이 서비스는 없어졌다. 라테는~ 있었다). 하지만 죄송한 마음에 담당 승무원에게도 이 사실을 전달하여 다른 불편사항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심을 보일 것을 당부했다.


해당 승객은 인천을 거쳐 오클랜드까지 가는 손님이었다. 오클랜드행 항공기에서 같은 불편을 겪지 않도록 인천 도착 후 지상 직원에게 해당 승객의 좌석 및 AVOD 시스템 점검을 요청했고 담당 사무장에게도 세심한 서비스를 부탁드렸다.


런던에서 돌아온 며칠 후 그 승객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승무원들의 배려로 오클랜드에 잘 도착했다는 내용의 감사 메일이었다. AVOD 문제로 불편했지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승무원들의 모습이 감동적이어서 앞으로도 계속 대한항공을 이용하겠다고 했다.


고객에게 발생한 불편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어떤 고객은 우리 곁을 떠나고 어떤 고객은 우리 곁에 남는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감사 메일을 보내주니 오히려 내가 더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하는 일로 인해 사람들이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니 이 일을 하는 나도 신나고 보람을 느낀다.


내일은 캐나다 밴쿠버로 간다 (이 글은 2011년 2월 비행 일기에 쓴 글이다). 어떤 승객을 만나고 어떤 일이 생길지 벌써 기대가 된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항상 최선을 다하는 승무원이 되고 싶다.




* 몇년 전부터 '무봉제 (seamless)' 상품이 인기다. '봉제'는 재봉틀이나 손으로 바느질하여 의류나 완구 따위의 제품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무봉제니깐 바느질한 실이 보이지 않거나 없다. 그래서 자국도 남지 않고 편하다.


* Seamless Service라는 것도 있다. 꼬맨 자국 없이 매끄러운 서비스. 서비스 단계마다 고객이 니즈를 반복해서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 Seamless Service가 필요한 대표적인 곳이 항공사다. 목적지까지 도착할 때까지 승객들은 수 개의 단계를 거친다. 항공권 예약 - 체크인 - 수하물 - 출국 - 탑승 - 비행 - 도착....각 여행 단계때마다 본인의 요구를 직원들에게 계속 설명해야 하면 얼마나 피곤할까?


*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기내'에 한정되지만, 승객의 비행은 나 이전에 시작됐고 이후로도 계속된다. 승객에 대한 서비스가 계속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무몽제 빤쯔. 그러고 보니 나도 무봉제 빤쯔다. 그래서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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