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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Flight May 28. 2020

"안전에는 양보가 없다"

- 승무원은 사법 경찰입니다 -

며칠 전 '기내 난동 발생 시 객실 승무원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사내 온라인 과정을 들었다. 평소 같으면 '다음'버튼을 누르거나 소리만 키워놓고 딴 일을 했을텐데, 이번 교육은 내용이 유익해 집중해서 듣고 포인트는 화면 캡쳐까지 했다. '비행 중에 난동 승객이 발생하면 저걸 써먹어야지' 생각하면서...


2016년 기사를 읽어 보니 국내 항공사 기내 난동 건수가 443건으로 이는 5년간 11배가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이것도 4년전 자료다. 4년동안 우리 집 값도 꽤 올랐는데 (강남에 집을 샀어야 했는데...), 기내 난동 수치도 상승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도 17년간 비행을 하면서 다양한 기내 난동 행위를 경험했다. 술 마시고, 담배 피고, 욕하고 등등. 예전에는 (라떼는~ 말이야) 그래도 좋은게 좋은거라고 기내에서 해결하고 비행기에서 내리면 종료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그걸 악용하는 승객들도 있어 ('담배 펴도 승무원이 그냥 보내주네' 식으로) 이제는 난동 행위를 끝장내기 위해서, 궁적으로는 항공기 안전을 위해서, 단호하게 대처하고 있다.


기내 난동의 주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술'이다. 사람은 술을 마시면 이성을 잃기 쉽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면 유독 술을 먹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다. 여행에 대한 설레임, 해외 출장에 대한 긴장, 장거리 비행에서 잠을 자기 위해서 등등 술을 찾을 이유가 생긴다. 한 두잔이면 좋겠지만 기내 술은 공짜~ '공짜는 양잿물도 마신다'는데, 술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술'하니 기억나는 승객이 있다. 홍콩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였다. 승객도 승무원도 밤새 날아와야 하는 비행...그래도 비행기를 타는 승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나와 동료 승무원 모두 밝은 표정으로 (나 혼자만의 착각?)탑승 인사를 하고 있었다.


승객 탑승이 거의 끝나갈 즈음, 저 멀리서 한 승객이 뛰어 오고 있다.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시던 승객은 승무원에게 탑승권을 보여주시며 "뒤에 오는 승객, 취한거 같아요. 술 냄새도 나고, 욕도 하고...무서워서 뛰어 왔어요" 불안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셨다.


잠시 후 그 승객이 지목한 술 드신 승객이 나타났다. 술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나는 평소 비염을 앓고 있다) 갈짓자 걸음에 눈이 약간 풀리고 얼굴이 붉으스레 했다. 그래도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드리며 탑승권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뭐? 니가 뭔데?" 승객의 입에서 반말이 나왔다. 아버지 뻘이시니 반말이야 할 수 있지만 반말과 함께 나온 술 냄새. 평소 비염을 앓고 있던 나도 느낄 수 있는 진한 양주 냄새. '안주는 오징어 땅콩?'


"항공 보안을 위해 승객 탑승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술 취한 승객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정중하게 부탁을 드렸지만 승객은 "안 보여줘. 안보여줄거니깐 한번 해보자"고....으름장을 놓으셨다.


더이상의 대화가 안될 것 같아 기장님께 보고를 드렸다.


(브런치 버전. 이거만 읽자) : "기장님. 술을 드신 승객께서 탑승권 제시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탑승이 힘들 것 같습니다.


(실제 버전 - 이건 읽지 말것) : 기장님, 술 취한 승객이 타셨는데 탑승권 제시를 거부하시네요. 다른 승객에게 욕도 하고, 승무원에게 반말을 하십니다. 많이 취하셨어요. 기내 안전을 위해서 탑승 거절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기장님은 내 판단을 존중할테니 탑승 거절이 필요하면 그렇게 하라고 하신다. 내 판단에 오류가 있을까 싶어 시니어 승무원 2명과 잠깐 상의 후 맘 속으로 '탑승 거절'을 결정했다.


기장과의 대화를 옆에서 듣던 승객이 화를 낸다. "비행기 못 타게하겠다고? 오! 좋아. 너 그거 한번 해봐.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나 너네 회사 회장하고 고등학교 친구야! 임마! 너 오늘 사람 잘 못 골랐다"


사실 나는 그 승객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비행 전 탑승 승객 정보가 담긴 서류를 미리 읽었기 때문이다. 기업체 대표(CEO)에 우리 비행기를 백만마일 이상 타신 MMC 였다. 그래서 술을 드셨음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정중하게 탑승권 검사를 요청드린건데 협조를 안해주시니. 그렇지만 회장님 동창인지는 몰랐다. 그런건 승객 정보에 안 적혀 있기 때문에.....


그래도 어떻하나 탑승권을 보여주시지도 않고, 욕설에 협박에....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신 상태. 마침 지점장님이 오셔서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상황 설명 후 탑승 거절을 말씀 드리니 지점장님이 곤란해 하신다. 승객이 내리면 짐도 내려야 한다. 지연이 발생할거고, 하필 MMC라니, 라운지에 모시고 가서 달래드려야 하고...."사무장님, 그냥 가시며 안되요?" 지점장님의 얘기를 듣고 있던 승객의 어깨가 올라간다. 헛기침도 하시고 마치 "거봐. 너 사람 잘 못 봤다고 했지!"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너가 감히 나를 못타게 해? 내가 누군지 알아? 너희 회장 친구야!"


마침 기장님께 콜이 왔다. 바깥 상황을 궁금해 하셔서 보고를 드리니 지점장님과 나를 칵픽 (조종실)으로 부른다. 그리고 지점장님께 한 말씀 하신다. "사무장님 결정대로 하세요. 탑승 거절 진행해 주세요." 기장님과 나의 판단이 그렇다니 지점장님도 어쩔 수 없는 듯, 승객에게 한 말씀 하신다. "회장님, 내리시죠."


상황이 급반전되길 기대했었나? 회장님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으나, 상황을 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탑승권 보여주며 착한 승객으로 변신하기에는 회장님의 가호가 있지. 회장님은 지점장님의 안내를 받으며 쓸쓸히 퇴장하셨다.


비행 중 회장님의 비행(여기서 비행은 飛行이 아니라 非行 이다)을 목격한 승객에게 '목격자 진술서'를 받고 보고서를 작성하여 인천 공항 도착 후 회사에 발송했다. 회장님의 동창이라고 주장하셔서 며칠 회사로부터, 혹은 우리 회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전화기는 울리지 않았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 다시 홍콩 비행을 갔다. 마침 지점장님이 게이트에 오셔서 그날 회장님께서 비행기에서 내리신 후의 근황을 여쭈었더니 "라운지에서 주무시고, 다음 날 아침 비행기로 얌전히 돌아가셨다"고 알려주신다. 비행기 타실 때 탑승권도 잘 보여주셨단다.


항공기의 보안과 안전에는 예외가 없다. 사회적 지위와 높낮이를 가리지 않는다. 항상 친절한 승무원이지만, 안전과 보안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하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가 써놓고도 좀 멋진 생각이 들어 어깨가 잠시 '으쓱'해진다)




* 기내 난동 발생 시 난동 승객에 대한 승무원의 '경고'는 다음과 같다.


"기내에서 승무원은 사법 경찰입니다 (Crew is the juducial police in the cabin)"

"손님은 지금 항공 보안법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You are against the aviation security laws)"

"항공보안법을 위반하셨습니다. 수사기관 제출용으로 녹화 시작합니다 (You are against the

  aviation security laws. We will start recording for the evidence)"


* 기내에서 승무원은 사법 경찰권을 갖는다. 법 조항에 그렇게 나와 있다. 궁금하면 찾아보시길...


* 대표적인 기내 난동 사건은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기 바란다. 참 많기도 하다. 포스코 라면 상무부터, 바비킴 사건(이건 좀 오해 여지가 있으나...), 치과 의사 괌 비행 난동 사건, 그리고 땅x....아니다.......요기까지만 하자. 기내 난동에 대해서는 '할많하않'.


* 맥주나 마시러 가야겠다. 안주는 오징어로 할까? 땅콩으로 할까?



매년 테이저 쏘는 연습도 한다. 지금까지 기내에서 수 번 발사했다. 나 말고, 다른 승무원들이. 나는 아직 사용할 만한 일을 겪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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