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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Flight May 28. 2020

"동료 승무원도 나의 고객"

- 인간적이고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 

작년에 창사 50주년을 기념해 역대 유니폼 행사를 가졌다. 사진 속에 물론 나는 없다. 출처는 https://news.koreanair.com/



승무원은 팀으로 비행한다. 한 팀은 보통 15명 내외로 구성되어 있다. 팀장(TP - TEAM PURSER)과 부팀장 (TA - TEAM ASSISTANT PURSER) 그리고 팀원이다. 팀장은 비행 중 주로 상위 클래스 (퍼스트/프레스티지 클래스)에서 근무하며 비행을 총괄한다. 부팀장은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근무하며 서비스를 진행한다. 팀장 부팀장의 근무 공간은 다르지만 언제든지 서로를 서포트할 수 있도록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팀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지난 7년 동안 육아 문제로 부산에서 단거리 위주의 비행을 했기 때문이다. 7년의 부산 생활을 청산하고 올해 서울로 복귀했다. 오랫동안 장거리 비행을 하지 않아, 장거리 비행에 익숙해질 때까지 팀원으로 비행하라는 회사의 배려? 가 있었다. 7년 전 서울에서 비행할 때는 팀장 (TP)으로 근무했다. 


팀장이기 전에 내가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이 여자이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남자는 화성에서 오고,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고 하지 않은가! 서로의 DNA가 다르다 보니 혹시나 나의 행동과 말이 그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조심한다.




동료 승무원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배려'다. 특히나 팀원들이 비행에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지금도 외모상, 그리고 마인드상 그렇지만) 나도 한때는 팀원이었다. 내가 팀원이었을 때 싫어했던 선배들의 모습이 있다. 


도착 후 호텔 가서 술 먹기, 아침 뷔페 몇 시간씩 먹기, 시간 맞춰 밥 먹기, 남 뒷 담화하기, 비행 외 시간에 카톡 보내기 등... 팀원들은 그런 팀장의 모습을 싫어하지만 싫다고 말할 수 없다. 어쨌거나 팀장은 평가자니까. "팀 생활하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는 관리자 앞에서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는가!


내가 팀장이 되고 나서는 가급적 저런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쩔 수 없이 할 때도 있다. 그때는 양해를 구한다고 쓰고 '팀원 눈치를 본다'라고 읽는 거 아니지?). 해외 도착 후 호텔에서 함께 묵다 보니 아침 뷔페를 먹으러 내려가면 어쩔 수 없이 승무원을 마주치게 된다.


"사무장님, 같이 먹어요" 팀원들이 얘기하면 나는 미안하다고, 가지고 온 책의 클라이 맥스를 읽어야 해서, 책을 픽업 전까지 다 읽어야 해서, 영화를 다운 받아 왔는데 픽업 전까지 다 봐야 해서... 등등의 이유로 따로 앉는다. 그리고 진짜로 가지고 간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며 밥을 먹는다. 멀리서 팀장이 혼자 밥 먹는걸 보면 팀원들이 신경 쓸까봐 꼭 책이나 영화를 가지고 내려간다. 


술도 혼술이다. 나에게 있어 술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영화를 볼 때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굳이 내 옆에 누가 있을 필요는 없다. 아내 면 모를까!. 그리고 아내도 승무원이었다. 아내가 승무원이었을 때 남자 팀장들과 술 먹는 게 싫었다. 전화 너머로 아내의 피곤함이 들려오는데 술자리를 계속하려는 분위기 파악 못하는 팀장들이 싫었다. (여기서 팀장은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또한, 극히, 아주 극히 일부를 말한다. 아내는 팀장 복이 많은 편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술 자리 좋아하는 팀장을 %로 따지면 100의 1명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사무장님! 아니니깐 오해하지 마세요). 


남자 입장에서 나의 여친이, 아내가 다른 남자와 술 마시는 모습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친, 남편에 대한 배려라고나 할까? 내가 여승무원들과 술을 안 마시는 이유는 그들도 누군가의 여친, 아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끔, 아주 가끔 마시기도 하는데 (팀 회식 정도), 그때도 조건이 있다. 술은 내가 사고, 1시간을 넘기지 않기. 1시간 알람을 맞춰놓고 알람이 울리면 나는 자리를 떠난다. 술값은 술자리에 남은 팀원에게 카드를 주거나 혹은 내 방으로 차지 (Charge) 시키라고 협박(?)한다. (술값을 내가 내야 해서 술자리를 피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팀이다 보니 대화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팀원의 고충을 해결해 줘야 하거나, 팀원이 목표 달성을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가 필요할 때. 그런 대화의 시간은 비행 중에 갖는다. 일명 커피 타임. 'xxx 씨 커피나 한잔해요' 각자 기호에 따라 나는 커피, 팀원은 알아서 뭔가를 마시며 얘기를 나눈다. 


그리고 나의 원칙 한 가지. 절대 팀원 험담을 하거나 뒷담화하지 않기. 물론 나도 인간이다 보니 그런 거 다 해봤다. 그런데 해보니 상대방에 대한 편견만 생기고 뒤끝이 개운치 않다. 그리고 험담과 뒷담화의 화살은 나중에 나에게 돌아온다. 귀가 있어 어쩔 수 없이 듣게 되지만 입은 내가 컨트롤 가능하다. 내 입에서 남에 대한 얘기나 험담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팀은 1년 단위로 바뀐다. 새 팀이 짜이면 팀장들은 팀원들에게 '1년 목표 계획'같은 걸 받는다. 1년 동안 무슨 자격을 취득할 거고, 업무적으로 어떤 목표를 세우고 달성할지... 팀원들은 결코 달성치 못할 목표 앞에 좌절하며 열심히 글짓기를 한다. 나도 팀원들의 목표를 알아보긴 하지만 글보다는 대화를 선호한다. 앞에서 말한 커피 탐임(혹은 차 기호에 따라 물도 된다)을 가지며 비행 중에 팀원의 목표를 알아본다.


대신 팀원들에게 나의 '꿈'을 보낸다. 나의 '꿈'은 매우 구체적이다.


"저의 꿈은 우리 팀이 전체 380개 팀에서 189등을 하는 겁니다. 189등을 퍼센티지로 환산하면 49.7368421 입니다. '못해도 중간만 하자'라는 말이 있지만 저는 중간보다 아주 약간, 정말 약~간 잘하는 게 꿈입니다. 물론 더 잘하면 좋겠지만요...


"자격은 3명이 업그레이드하면 좋겠습니다. 4명도 좋고, 5명도 좋고, 10명도 좋지만, 욕심 안 내고 3명이면 감사하겠습니다."


"방송도 2명만 업그레이드하는 게 제 꿈입니다. 더 하면 물론 좋지요".


"팀원 3명을 진급시키는 게 제 꿈입니다. 진급 대상자 모두 되면 금상첨화겠지만, 진급자 2명 내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저는 최소한 팀원 3명이 진급하는 게 꿈입니다. 그리고 저의 상급자에게 팀원 3명이 진급할 수 있도록 어필하겠습니다."


나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마친다. "꿈이 현실이 되면 꿈이 아니죠. 꿈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꿈입니다. 제 불가능한 꿈에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그리고 돈키호테의 글을 첨부한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완벽한 관리자라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결점과 흠이 많은 인간이다. 다만 나의 결점과 흠을 알고 또 내가 싫어했던 옛날 팀 관리자의 모습을 닮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행동과 말로 인해 상처를 받은 동료 승무원들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머리 숙여 사과한다. 그들이 이곳에 와서 내 사과를 받아줄리는 없지만 (있음 리플 다셔. 스벅 보낼께)




비행할 때 나는 숫자 '3'을 좋아한다. 1은 외롭고, 2는 너무 가깝고, 3은 적당히 가까우면서도 거리가 있는 숫자다. 나는 팀원들에게 숫자 3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비행 전 브리핑에서는


"비행 중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3분 이내에 문제 해결이 안 되면 그 문제는 내 문제입니다. 저에게 가져오세요."


"오늘 비행에서 실수해도 걱정하지 마세요. 3번째 실수까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눈감아 줍니다. 실수해도 알려만 주세요. 내가 커버해줄께요".


숫자 3은 승객 탑승 때도 적용된다. 승무원들은 승객 탑승 전 각자 맡은 위치에서 대기하는데 많은 경우 사무장들이 승무원들을 너무 일찍 대기시켜 비행 전에 승무원의 얼굴에서 스마일이 사라진다. 나는 이때도 '3'을 강조한다.


"승객 탑승 3분 전까지 쉽시다. 잠시 눈을 감고 있어도 돼요. 탑승 3분 전에 알려드릴께요."


"자! 탑승 3분 전입니다. 이제부터 물 한잔 드시고, 스트레칭 하면서 각자 위치에 스탠바이 해주세요". 


가끔은 승객 탑승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한다.


"첫 번째 승객께서 지금 에스컬레이터 타셨습니다. 비행기 앞 도착 45초 전, 캐리어를 끌고 쇼핑백을 들고 오십니다. 파란색 재킷에 청바지를 입고, 안경을 쓰셨네요. 도착 25초 전....


기내 마이크를 잡고 승객 탑승 생중계를 하고 있으면 아일 (Aisle)에 나와 있는 승무원들이 웃고 있다. 


"그 미소 그대로 유지하면서 승객분들 맞이하는 겁니다. 다들 화이팅"


남들이 보기엔 "사무장이 너무 가벼워 보이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으나 나는 엄숙하고 심각한 팀장보다 동료들에게 웃음과 미소를 주는 인간이 되고 싶다. 그들도 나의 고객이기에, 앞으로도 쭈욱~




* 엄숙하고 심각한 거. 해봤다. 딱 한 번. 팀도, 나도, 팀원들도 모두 힘들었다. 이후로는 안 한다. 


* 술 마시는 사무장님을 폄하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것도 하나의 팀 관리 방법 - 팀웍 - 이다. 술을 마시며 팀 분위기를 띄우고 속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다. 그치만 평소 술 없이 팀 분위기를 띄우고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는 없는 걸까? 17년 동안 술로 인한 사건 사고를 너무 많이 봐와서 개인적으로 술을 좋게 생각할 수 없다. 사람이 미운게 아니라 술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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