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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Flight May 29. 2020

# 승무원과 '잠'

- 잘자는 게 최고다! - 

런던에서의 삼 일째 날이 밝았다. 어제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더니 몸이 개운하지는 않다. 커피라도 한잔 하면 좋은데, 코로나 때문에 커피숍이 죄다 문을 닫았다. 방에 인스턴트 커피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어제 마셨고 (까지 쓰고 방금 '차'라도 마시자는 생각으로 물을 끓이고 있다. 영국 왔으니 홍차에 밀크랑 설탕 넣어 마셔야 겠다.) 


방금 이거 마셨다.


누군가 나에게 "승무원 직업의 가장 힘들 점이 무엇입니까?" 질문을 한다면? '잠'이라고 대답하겠다. 항상 '잠'이 문제다. 나는 승무원 생활이 99% 만족스럽지만 1% 힘든 게 '잠'때문이다. 제때 자지 못하고, 집에서 자지 못하고, 시차가 오락가락하고, 툭하면 밤새고...


"99% 좋아하고 1% 싫으면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1%가 99%랑 맞짱뜬다. 그래도 99% 쪽을 바라보며 살려고 노력 중이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매우 매력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베개에 머리가 닿자마자 잠 드는 사람이 승무원이 되면 최고다. 예전에 팀원이 그랬다. 공항 혹은 호텔 가는 픽업 버스에 타면 바로 눈을 감는다. 눈만 감고 있는 게 아니라 진짜로 잠에 빠져 목적지 도착하면 "아 잘잤다"는 표정으로 일어났다. 단잠에서 깨어나는 그녀의 얼굴을 부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나.


수면 측면에서 나는 그냥 보통이다. 잘 자지도 않고, 못 자지도 않는 편이다. 그냥 적당히 잔다. 나이가 들면 제일 먼저 잠이 준다는데....아직은 집에서 잘 땐 8시간 이상 자는 거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외모만큼 젊어서 그런가 보다. 


'잠을 자기 위해서는 우리 몸에서 멜라토닌이 나와야 한단다. 낮에 햇빛을 많이 받으면 밤에 멜라토닌 분비가 잘된다고 해서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비 오는 날 아니면 무조건 밖에 나가 1시간 이상 걷거나 의자에 앉아 햇볕을 쐰다. (외국에서) 햇볕을 쬘 때는 웃통을 벗는다. 햇볕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다. 웃통 벗는 외국인들이 많아 자연스럽다. 한국에서도 벗고 싶은데 '변태'취급 받을 것 같아 자제하고 있다. 맘 같아선 바지까지 벗고 싶지만 그러다가 경찰온다. 


그리고 5mg짜리 멜라토닌을 가지고 다닌다. 멜라토닌은 매일 먹는 건 아니고, 해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비행 전 잘때, 그때만 딱 하나 먹는다. 한 달에  보통 1개 혹은 2개 정도 먹으니까 중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먹고 시간이 지나면 약간 몽롱해진다. 그 상태로 서너시간 잘 수 있다. 자고 나면 약효가 남아  '잘잤다'는 생각은 안들지만 그래도 '잔 것 같다'는 느낌은 든다.


내일은 비행 전 이걸 먹고 잘 거다.


조금 부족한 잠은 비행 중에 채울 수 있다. 승무원도 비행 중에 잠을 잔다. '벙커 (정식 용어로 Crew Rest Area, 줄여서 CRA라고 한다)라고 불리는 공간이 있다. 대형 기종에 주로 있다. 위치는 기종마다 다르다. 몸을 누이고 뒤틀 수 있을 정도의 크기다. 암막 커튼 비슷한게 있어 잠 잘때 좋다. 


서비스가 끝나면 '레스트 조'가 나온다. 반, 반 교대로 잔다. 비행 시간 12시간에 이륙 후 2시간 정도 서비스 진행하고, 착륙 2시간 전 서비스 한다 치면 레스트 시간이 8시간 나온다. 승무원 밥 시간, 밥 먹고 소화 시간, 중간 승객 스낵 시간 등등 1시간 제해도 7시간이 남는다. 이래저래 짧게는 3시간, 뉴욕이나 애틀란타 같이 긴 비행에서는 4시간 이상 잘 수 있다. 


벙커 가면 길게 못잔다. 2시간 정도 자면 눈이 떠진다. 그래도 다른 동료들에게 방해될까봐 침대에 누워 있는다 (각방이라 크게 방해될 건 없다). 나는 벙커 가면 무조건 자고 나서 딴 짓을 한다. 주로 하는 딴 짓은 독서다. 이북을 가지고 가서 소설을 읽는다. 자다가 깨서 책 읽고, 읽다가 졸리면 다시 잔다. 


벙커서 자는 잠이 '꿀'이다. 보통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현지 시간으로는 낮일지라도 한국 시간으로 새벽 시간대가 많다. 비행기 밖은 해가 쨍쨍인데, 내 몸은 한밤중이다. 그래서 서비스가 끝나면 바로 골아 떨어진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비행기의 숨은 공간 (일반 승객들은 잘 모르는)이다 보니 보안 문제가 걸린다. 예전에 모항공사 벙커에 승객이 숨어 들어가 밀입국을 시도한 적이 있다. 거기 어떻게 들어갔는지, 승무원이 잠을 자는 동안 어떻게 숨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하루가 넘게 그곳에 있다가 나중에 발각됐다. 그 사건 이후 비행전 벙커 보안 검사를 더 철저히 한다. 담당 승무원이 1차 검사를 하더라도 나는 내가 한 번 더 들어가 본다.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나온다. 보안 구역이라 나는 사진을 못 찍겠다. 



자다가 일어나서 "무슨 글 쓸까?"살짝 고민 후 승무원의 잠에 대해 써봤다. 조금 있다가 프론트에 아침 픽업을 주문하고 가지러 가야겠다. 어제는 호텔 앞 공원 겸 숲에서 두시간 정도 시간을 보냈다. 오늘도 거기 갈 생각이다. 책이랑 물이랑 간식 거리 가지고 가서 햇빛을 쬐고 와야지. 햇빛을 배 터지게 먹고 와야겠다. 웃통 홀딱 벗고....(홀딱 벗은 사진도 있는데 그건 안 올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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