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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Flight May 29. 2020

"외국어도 서비스다 (3)"

- 나의 4개 국어 도전기, 세 번째 '영어 (1)'

1. 내가 영어에 눈을 뜨게 된 계기


난 영어를 그다지 좋아하거나 잘하지 못했다 (과거다. 현재가 아니라). 알파벳을 처음 배운 건 중학교였다. 생긴 게 약간 이국틱 해서 어렸을 적 별명이 '튀기 (별로 좋은 의미는 아니다. 엄니 아부진 토종이다)'였다는 것 빼고는 영어와 별 인연은 없었다. 알파벳을 처음 배운 것도 중학교 입학해서였다. 내 영어 실력(이랄 것도 없이) 은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만 겨우 따라갈 정도의 수준. 굳이 점수로 얘기하자면 100점 만점에 60점 정도?


그러다가 또! 어떤 날을 계기로 (항상 나에겐 뭔가 획가닥 바뀌는 '계기'가 있다) 내 영어 점수가 100점 만점에 100점으로 탈바꿈했으니 그날의 신기했던 경험을 먼저 얘기해보자.


그날은 중학교 2학년의 어느 날로 기억한다. 시험을 앞두고 영어 책을  보는데 She is beautiful 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대충 뜻은 알겠고 ('그녀는 아름답다' 아니겠어) 그래도 공부를 꽤 잘했던 작은누나에게 문법적 설명을 부탁했다.


"응, 이건 '그녀는 아름답다'란 뜻이야. 여기서 beautiful이 '아름답다'란 뜻이고 품사는 형용사지"


그때,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 근데 (충청도는 '그런데'를 '근데'라고 발음한다. 느리다는 말을 듣기 싫어, 말을 빨리하고 싶은 마음에 '축약법 - 축지법이 아니다'을 많이 쓴다. 예를 들어 '됐습니다'는 '됐슈'로, '괜찮습니다'는 '괜찮아유' 식이다. 알고 보면 충청도 말이 제일 빠르다. 그닝께 무시하지 말라고~ 근데 어디까지 얘기했지? 또 삼천포다)


"누나 근데, 형용사가 뭐야?" 내 인생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영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영어 (이것도 참 얘기가 긴데, 휴....길다) 내 인생에서의 영어는 "누나 근데, 형용사가 뭐야"라는 질문을 던진 그날의 전과 후로 나뉜다.


내 질문을 듣고 누나가 한마디 한다. "넌 그것도 모르고 영어 공부를 하냐" 그러면서 형용사가 뭔지 자세히 설명해 줬다. "형용사란 명사의 모양, 색깔, 성질, 크기, 개수 등을 자세하게 설명하거나 꾸며 주는 말이야. 예를 들어 이쁘다. 귀엽다. 잘생겼다. 크다. 작다. 바보 같다 등이 있지"


나는 또 물었다. "근데 누나 명사는 뭐야?" "아니, 명사도 몰라? 명사는 한자로 이름 '명'.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을 나타내는 품사잖아. 책상, 걸상, 운동화, 버스 세상의 모든 사물들의 이름을 명사라고 하는 거야. 야! 너 큰일 났다. 기본의 기본도 모르면서 무슨 영어 공부냐!"


그날 누나는 나에게 형용사 명사 부사뿐만 아니라 영어의 기본 문법 구조 (주어 + 동사 + 목적어)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영어는 기본적으로 '주동목'이야. 주어 자리에는 보통 명사가 오지. 동사는 움직이는 것들을 얘기해. 뛰다 걷다 먹다 같은 거. 그리고 목적어 자리에는 역시 명사가 주로 오지. 알겠어?"


누나의 설명을 듣고 영어 책을 보니 진짜로 대부분의 영어 문장이 '주동목' 구조다. 단어들은 명사 형용사 동사들이다. 단어들을 주동목 구조에 맞춰 놓으니 영어가 되었다. 복잡하게 느껴졌던 영어가 주동목으로 단순화됐다.


그날 이후로 영어가 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단어가 많이 나열돼있어도 (중 2 영어책에 단어가 많아봤자다) 저건 명사, 저건 동사, 저건 형용사 혹은 부사였고, 아무리 문장이 길어도 (중 2 영어책 문장이 길어봤자다) 주동목을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영어 구조는 기본적으로 5개로 나눌 수 있고 주동목은 그중 하나. 그치만 내겐 그냥 주동목 하나였다)


영어 단어가 보이고 구조가 보이니 영어가 한눈에 들어왔다. 배우면 배울수록 재미가 붙었다. 내 머릿속은 온통 영어로 꽉 차게 되었다.



2. 마이 마이 (MY MY)로 영어 외우고, 귀 트이기


그 즈음에 큰 누나는 여상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큰누나는 동생들을 위해 대학을 포기했다. 참 이쁘고 머리 좋은 누나였는데. 생각하니 울컥하다. 큰 누나도 이 글을 보고 있을텐데 분명 울컥할거다. 작은 누나 역시 울컥. 우리 집안엔 울컥 할 일이 좀 많다. 언젠가 그 울컥한 얘기를 글로 표현해 보고 싶은 소원이 있다. 그 글 쓰다가 얼마나 울컥해 질까 생각만해도 울컥하다. 당신들도 보면 울컥할거다. 쓰고 나니 또 울컥해지네. 젠장)


(어디까지 했더라. 울컥하다 길 잃어버렸다) 아무튼 우수한 성적으로 여상을 졸업한 큰 누나는 현대에 입사했다. 그리고 어느 날, 큰누나가 당시 유행하던 빨간색 일본제 카세트 마이 마이를 내게 선물했다. '이걸로 뭘 들을까?'


대략 이렇게 생긴 빨간색 마이 마이 였다.



중 2 영어 교과서 책 내용이 녹음된 테이프를 들었다. 남들은 그거 가지고 유행가 듣던데, 나는 노래에 관심이 없어 영어 테이프만 들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 준 본문 내용을 미국인이 녹음한 목소리로 들으니 귀에 쏙쏙 들어온다. 듣고 또 듣고...듣다 보니 본문이 그냥 외워졌다. 영어 시험을 보면 '빈칸에 알맞은 단어를 고르시오'등의 문제가 나오는데, 나는 본문을 다 외우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답을 맞힐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6과까지 밖에 안 배웠는데 녹음테이프를 매일 들으니 어느새 혼자서 영어 책 끝까지 다 외워놓고 있었다.


교과서를 다 외워놓고 또 들을 거 없나 싶어 찾은 것이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이라서 그런지 그 영화가 가슴에 확 꽂혔다. 사운드 오브 뮤직 노래 테이프를 구해 가사를 보며 노래를 따라 했다. 중학교 2학년에게는 문장도 길고, 단어 수준도 높았지만 사전을 찾아가며 해석하고 노래를 외우고 불렀다.


때로는 영화의 마리아 수녀처럼 당시 내가 살던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소정리 산과 논밭을 뛰어 다니며 두 팔을 벌리고 사운드 오브 뮤직의 노래를 불렀다.


The hills are alive with the sound of music

With songs they have sung for a thousand years

The hills fill my heart with the sound of music

My heart wants to sing every song it hears

My heart wants to beat like the wings of the birds that rise from the lake to the trees

My heart wants to sigh like a chime that flies from a church on a breeze

To laugh like a brook when it trips and falls over stones on its way

To sing through the night like a lark who is learning to pray

I go to the hills when my heart is lonely

I know I will hear what I've heard before

My heart will be blessed with the sound of music And I'll sing once more



주인공 사진을 나로, 배경을 소정리로 바꾸면 된다.


영화를 백 번 넘게 봤던 것 같다 (역시 과장법이다). 노래 가사와 영화 대사를 외우고 나니 중학교 3학년 (일 년이 지나 3학년이 되었다) 영어 책이 우습게 느껴졌다. 승무원이 되고 런던 비행을 처음 왔을 때 사운드 오브 뮤직 뮤지컬을 보러 갔다. 영국식 영어라 발음이 듣기 어려웠지만 가사를 알고 있어 대사를 알아 듣는게 어렵지 않았다.


* 대한항공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짤쯔브르크)인 오스트리아에 취항하고 있지만 비행 스케줄이 나오지 않아 아직까지 가보진 못했다. 코로나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비행이 재개되면 왠지 짤쯔브르크에 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간절하게 원하면 우주는 도와주니깐 말이다.



3. 고등학교 시절의 영어


고등학교 영어가 중학교 영어보다 훨씬 어렵다고 하지만 사운드 오브 뮤직을 외운 사람에게는 '껌'이었다. 그래도 학력고사 (그래! 난 학력고사 세대다) 준비를 위해 문법 공부를 해야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영어는 내게 있어 공부가 아니라 취미다. 억지로 하는 건 공부고 좋아서 하는 건 취미다. 난 당시 종로 학원에서 펴낸 영문법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워버렸다. 문법적 구조분석 같은 건 필요 없었다. 그런 건 문법 학자에게나 필요한 거. 나는 그런 거 모르겠고 그냥 좋아서 외웠다. 당시 애들이 서태지와 아이들 가사 외웠다면 나는 문법책을 외웠다.


문법 책 다 외우고 나니 또 고등학교 영어 교과서가 우습다. 영어에 비해 수학 성적은 형편 없었다. 다행히 그걸 영어가 매꿔줬다.



4. 대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영어를 공부하다.


대학교는 이문동에서 다녔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어를 제일 잘한다는 사람들이 모인 학교였다. 처음 대학 갔을 때 놀랬다. 외국인도 많고 캠퍼스 여기저기에서 영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불어 이태리어 아프리카어 등 각국의 언어가 난무하고 있었다.


한국 학생들도 죄다 외국 물을 먹고 오거나 외고 출신이 많아 한국어보다 영어로 대화를 하는 애들이 많았다. 그들의 영어 실력은 내게 있어 '넘사벽'이었다. 영어 문법책 달랑 한 권 외우고 논밭을 달리며 사운드 오브 뮤직을 부르던 나의 영어 실력이 무척 초라하게 느껴졌다. 영어 발음도 난 좀 구수한 편이다. 내가 영어하면 사람들이 묻는다 "너 충청도 사람이지".


다시 태어나도 외대 갈거다. 다시 태어나도 대한항공 갈거다. 다시 태어나도 아내랑 결혼할거다. 진짜다.



그런데 또 내 영어 공부를 몇 단계 상승 시켜준 계기가 있었으니 (그 놈의 계기는 항상 있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외국인이 한 명 눈에 띄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Excuse me. My name is xxx. I go to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y major is English. But my English is not so good. I want to practice my English with you"


했더니 그 외국인이 뭐라고 하는데 못 알아듣겠다. "What? Would you please say that again?" 했더니 그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자기 입을 가리키며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 똑바로 들으라는 식으로) 뭐라고 하는데 또 못 알아듣겠다. 그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제 갈 길을 가버렸고 나는 영어 전공자 주제에 그것도 못알아 들었다는 자책감에 그를 따라 갈 수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하숙집에 와서 친구에게 그 외국인 얘기를 들려주며 "야 그 친구가 나에게 했던 말이 '아미너비커리'였던가? 그런데 그게 뭔 뜻이냐" 물었더니 친구가 웃으며 "그것도 몰라? I am in big hurry. 바쁘다는 말이잖아." 친구의 말을 듣고 망치로 얻어 맞은 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내가 다 아는 단어, 문장인데 그걸 몰랐다니. 그때부터 영어 발음 공부를 다시 했다. 축약이나 연음 법칙 같은 걸 공부하고 단어와 문장을 읽을 때 적용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충청도 사람이 어디 가겠는가! 여전히 내 영어 발음에는 충청도 냄새가 났다.


언어를 배우는 이유는 표현하기 위해서다. 배우고 쓰지 않는 언어는 죽은 언어다. 어느 날 하숙집 선후배들에게 선언을 했다. "저는 오늘부터 영어로 말하겠습니다. 제가 영어로 말하더라도 재수 없게 생각지 말아주세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숙집 친구들을 만나면 영어로 대화 했다. 내 전공이 영어인 것을 알고, 내가 영어를 매우 좋아하지만 '암미너비커리'를 못 알아들을 정도로 영어 실력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안 하숙집 친구들은 나를 비웃기는 커녕 응원해 주었다. 그렇게 해서 내 영어 실력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 쓰다보니 길어지네요. 여기서 1부를 마감하고 2부에서 뵙겠습니다. I will be right back?


* 그런데 진짝 궁금해서 그런데, 제 글 재미있어요? 있음 있다고 말씀 좀 해주세요. 리플로....(리플 늘리려는거 아님. 그냥 글의 방향을 잡고 싶어서. 가끔 혼자 열심히 갈 때, 내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나 나침판이 필요해요. 지금 이 순간....지금 여기, 말로는 뭐라 할 수 없는 이 순간...이 노래 부를때가 아닌데. 치킬앤 하이드 뮤지컬로 4번 봤어요. 거봐요. 자꾸 딴데로 샌다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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