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ppy Flight May 29. 2020

"외국어도 서비스다 (3)"

- 나의 4개 국어 도전기, 세 번째 '영어 (2)'

5. 영자 신문으로 어휘와 표현 늘리기


본격적인 영어 공부를 위해 Korea Times 신문을 구독했다. 매일 아침 5시에 신문이 배달됐다. 내 영어 실력에는 벅찬 수준이었지만 '하루에 사설 1개만 보자'는 생각으로 사설 부분을 가위로 오리고 나머지는 버렸다. 그렇게 오린 영어 사설을 노트 왼쪽에 붙이고 오른쪽에 단어를 정리했다.


영자 신문은 수준은 높지만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건들에 대한 배경 지식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는 며칠 내내 정치 얘기만 나왔다. 한번만 단어를 정리해 놓으면 계속 같은 단어가 나와 자연스럽게 반복할 수 있었다.


처음 사설을 읽고 정리할 때는 2시간 정도 걸렸는데 일년쯤 지나니 그냥 한번에 읽고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영어 실력이 향상 있었다.


Stuck between rock and hard place 진퇴양난의 / 코로나 급증을 Spike로 썼네. 감염자가 갑자기 팍! 올랐구나.



6. 오성식의 굿모닝 팝스로 듣기 실력 향상 시키기


아무리 단어와 표현을 많이 알아도 말을 못 알아들으면 소용없다. 교재 내용이 녹음된 성우 발음은 실제 발음에 비해 너무 친절했다. 미국에 가서 직접 부딪치며 영어를 배우는 게 제일 좋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오성식의 굿모닝 팝스. 굿모닝 팝스는 영화와 팝송을 통해 영어를 공부하는 방송이다. 진행자 오성식 아저씨는 유쾌했고, 방송 내용은 유익했다.


굿모닝 팝스에 나오는 영화 대사들을 수 번, 수 번 반복해서 들었다 (이건 진짜다). 마치 영화의 주인공처럼 연기도 해보았다. 교재는 주요 대사 위주로 일부만 실어놨지만 1권의 교재를 마치면 전체 내용이 담긴 파일을 구해 영화를 봤다. 이미 수번 듣고 연습했던 영어 표현들이라 귀에 쏙쏙 들어왔다.



아저씨 덕분에 대한항공도 들어오고 결혼도 하고, 이 글도 쓰네요. 땡큐 베리 감사해요.


군대 가기 전까지 매일 아침 영자 신문을 읽고 굿모닝 팝스를 들었다. 굿모닝 팝스는 내 인생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굿모닝 팝스 덕분에 군대에서 펜팔을 하게 되었고, 그 펜팔로 대한항공에 입사하게 되었고, 그래서 아내를 만났고, 현재 이렇게 살고 있고, 지금 런던 히드로 공항 앞 르네상스 호텔 1520호실에서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내 모습은 굿모닝 팝스에서 시작됐다고 말하면 매우 큰 과장이겠지만, 그것이 내 삶에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해도 역시 매우 큰 과장이다. 부장인가?)


* 굿모닝 팝스와 나의 인연에 대한 내용은 브런치 1화에 실려있다. 서비스 차원에서 링크 걸어준다. 친절한 해삐님...

https://brunch.co.kr/@flykal/29



7. 군대에서 영어 공부하기


입대를 했어도 영어에 대한 내 열정은 식을줄 몰랐다. 아니 오히려 더 뜨거웠다. 당시 쫄다구들은 일과외 시간에 책을 볼 수 없었다. 영어 책을 볼 수 없으니 영어에 대한 갈증은 심해지고 열정이 (욕구 불만으로 터지기 직전) 불타오르고 있었다.


어느 날 화장실에 갔다. 똥 묻는 신문지가 휴지통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부대 간부가 똥 누면서 신문을 보다가 버리고 갔나보다. 이후 또 누가 똥을 쌌나 보다. 똥 닦은 휴지가 신문지 위에 놓여져 있었다. 신문지에도 똥이 조금 묻어 있었다. 똥 묻은 신문지에서 알파벳이 눈에 뜨였다. 똥 묻는 자리에서 정확히 13cm 미터쯤 떨어진 자리에 영어 칼럼이 있었다.


나는 손에 똥이 묻을까 조심하며 칼럼을 찢었다. 그리고 똥을 누면서 칼럼을 읽었다. 똥을 다 눈 후에는  칼럼을 군복 주머니에 소중하게 보관했다. 때로 영어에 대한 목마름이 심할 땐 그 칼럼을 꺼내 보며 영어에 대한 갈증을 달랬다.


자주 화장실에 들렸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매일 화장실에 영어 칼럼이 실린 신문지가 버려졌다. 대부분 똥이 묻어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영어 칼럼 부분을 조심스레 찢어 읽고 군복에 보관했다. 어느 날 몰래 칼럼을 보다가 고참에게 들키고 말았다. 나의 할아버지 뻘인 (진짜 할아버지란건 아니고 그러니까 내가 자대 배치 받았을 때 곧 제대를 앞둔 고참을 할아버지 군번이라고 부른다. 입대 후 1/2 시점에 입대한 쫄다구는 아버지 뻘...군대 다녀온 사람은 다 안다)


그 분은 입대 전 서울 시립대를 다니던 김대영 병장님이셨다. 성품이 선하고 젠틀하고 특히 책을 좋아하셨다. 그 분은 제대 후 복학을 대비해 틈틈이 영어공부를 하고 계셨다. 내가 영어 칼럼을 몰래 보고 있는 것을 본 그 분은 "너 영어 좋아하냐?"고 물으셨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편하게 봐" 그리고 소대원들에게 명령하셨다. "오늘부터 일과 외 시간에는 계급에 상관없이 자유다. 하고 싶은거 해. 책도 보고 운동도 하고. 암튼 자유. 알겠지." "네!" 그건 제대를 앞둔 그분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 이후로는 편하게 내무 반에서 신문 칼럼을 볼 수 있었다. 똥은 조금 묻었지만...(똥 얘기만 해서 쏴리.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자)



8. 복학 후 영어공부


군 제대후에도 영어 공부는 계속됐다. 전공이 영어니깐 당연하지. 잠깐 다른 외국어로 외도를 시도해봤는데 (스페인어와 일본어) 결국 영어로 돌아왔다 (조강지처가 좋더라. 썬연료가 좋더라). 그때부터는 혼자 하지 않고 같이 했다. 당시는 천리안. 나우누리, 하에텔 같은 PC 통신이 있었다. 온라인 모임을 통해 여러 학교에서 온 학생들과 신촌이나 종로에서 모여 영어 스터디를 했다 (당찬토끼 잘있지? ㅋㅋ 스토리 텔러 활약상을 잘보고 있어 ^^).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배경 지식을 읽고 그것에 대해 토론하는 식으로 모임이 진행됐다. (물론 영어로)


그러면서 천천히 취업 준비도 했다. 내 목표는 오직 대한항공이었기에 항공사와 대한항공 자료를 수집하며 항공사에 대한 꿈을 키워 나갔다. 이때 경험하게 된 것이 국립 민속 박물관 영어 자원 봉사였다. 그것에 대한 내용은 브런치 2화에 있는데, 그거 안 읽고 왔지? 아래 링크로 걸어주겠다. (서비스 정신 투철하다)


https://brunch.co.kr/@flykal/30



9. 현재 나의 영어 공부는


지금은 영어공부를 거의 하지 않는다. 핸드폰의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면 자동으로 영자 신문 사이트가 뜬다. 그걸 그냥 대충 흩어 보는 정도다. 얼마 전까지 중국어와 일본어에 꽂혀 영어를 공부할 여유가 없었다. 한번에 두 세가지 언어를 한꺼번에 공부하면 헷갈린다. 한가지 언어를 어느 정도 수준까지 끌어 올린 후 다음 언어를 공부하는 것이 내 경험상 나에게 맞다. 그래서 중국어 일본어 공부하는 동안 영어 책은 쳐다 보지않았다.


그렇지만 마이 마이로 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사운드 오브 뮤직을 듣던, 영어 문법 책 한권을 통채로 머리에 넣어버린, 하숙집 친구들에게 '난 몰라 영어로만 말할거야' 하던, 똥 묻은 신문의 영어 칼럼을 신주단지 처럼 모시던, 그 열정이 어디가겠는가!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동안 많이 채워놨기에 고갈되지 않고, 녹슬지 않고,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꺼내서 사용하고 있다.



10. 비행에서의 영어 사용기


영어 실력이야말로 승무원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 중에 하나다. 항공사를 이용하는 승객은 국적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 다양한 국적의 승객들과 한 가지 언어를 사용해서 대화를 해야 한다면 그때 필요한 언어가 바로 영어다. 그래서 승무원들은 항상 영어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다. (난 없다. 쏴리)


'비빔밥과 소고기가 있습니다. 무엇으로 드시겠습니까?'

'승무원 호출 하셨습니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이런 서비스 영어 표현은 승무원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진짜 실력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나온다. 비행 중 '이레 (IRRE : IRREGULARITY)가 발생하면 사무장은 기내 방송으로 승객들에게 안내를 하고 양해를 구한다. 기내 방송문은 드라이 하고 짧다. 구체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항공기 간격분리로 출발이 지연되고 있다'라는 방송문구가 있다. 방송 문구는 'AIRCRAFT ENROUTE SEPARATION'인데 승객들은 궁금해 한다. 왜 항공기가 간격분리를 하지? ENROUTE SEPARATION이 뭐지? 나는 좀 구체적으로 방송을 한다.


"운전을 할 때 앞차와의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하듯이

항공기도 안전 운항을 위해 항공기가 간격 분리를 해야 합니다.

이 간격 분리 작업에 약 10분간 소요될 예정입니다.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어로는


"When we drive, we have to keep a safe distance with a car ahead of us.

That rules also apply to aircraft. To maintain a safe distance with an aircraft

before us, our departure is now being delayed. It's all for the safe operation of

the aircraft. It takes about 10 minutes and thank you for kind understanding."


한번은 김포공항에 착륙했는데 공항에 벼락이 치고 있었다. 항공기가 주기장까지 가기 위해서는 지상 직원들의 도움이 필요한데 안전을 위해 그분들도 대피해 있는 상태였다. 이런 경우 보통 '기상 관계로 관제탑의 지시에 의해 현 위치에서 대기하겠습니다' 라고 방송을 하는데 역시 나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한다.


"손님 여러분, 밖을 보세요. 벼락이 치고 있습니다.

항공기가 주기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상 직원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이 벼락치는 상황에서는 그분들도 근무를 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수시로 상황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하신 분께서는 승무원 호출 버튼을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Ladies and genglemen, as you can see outside

we have thunder and lightening.

In order to get to the parking area, we need ground staff assistance.

But they can not work under the current situation.

We are not sure how long it will take till we reach to the parking area.

We have to wait here until weather conditions becomes better.

But we will inform you as soon as we get new notice.

If you need any help, please let us know"


이런 식으로 좀 풀어서, 구체적으로, 승객들이 알아 듣기 쉽게. 친절하게 설명을 드리는데 이것 또한 고객을 위한 서비스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방송을 할땐 생각할 겨를이 없다. 한국어 문구 생각하고 영작하고 나면 그 사이에 번개가 그치고 항공기가 주기장에 도착해있다.


나는 거의 1분 이내로 한국어와 영어 표현을 생각한 후 방송한다. 그게 1분이나 걸리냐고, 1분이나 걸리면서 영어를 잘한다고 해? 반문하면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1분은 필요하다. 그래도 기내 방송인데 정중하고 정갈한 표현, 문법적 오류가 없는 표현을 찾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다. 그리고 기내에 중국 승객, 일본 승객이 많으면 4개 국어로 해야 한다. 그땐 또 2분쯤 걸린다.


아무튼 1분 이내로 방송문에 없는 기내 방송을 할 수 있는 건 군대 있을 때 화장실에서 똥 묻는 칼럼을 보면서 쌓아온 영어 실력 때문(라고 쓰고 음청 낯간지러워 죽겠다. 저의 실체를 아는 회사분께서 보시면 그냥 눈감아 주세요. 이 브런치 글 컨셉이 그래요. 이 글만 보지 마시고 글 전체를 보면서 제 글에서 차고 넘치는 '고객 만족, 서비스, 열정' 그럴걸 좀 봐주세요. 네?)


출처는 구글 / 타 항공사 분들 죄송해요. 구글 검색해서 퍼왔어요.



11. 마무리하며


'이레 (IRREGULARITY 이상 상황)' 방송을 자주 하는 것은 아니다. 매 비행 '이레'가 발생하는 건 아니니까. 매일 발생하면 스트레스 받아 일찍 죽는다. 굳이 횟수로 세보자면 서너달에 한번 있을까 말까?다. 보통은 기내 방송문에 있는 내용 그대로 방송한다. 그러니깐 내가 매 비행 내 맘대로 방송을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우리 방송 담당 강사님, 네?


방송문 내용을 벗어나 임의대로 방송을 하면 리스크 (risk 위험)가 좀 있다. 문법적으로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승객들이 오해하실 수 도 있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방송문대로 하는 건데, 방송문대로 하면 승객분들이 또 승무원을 부르신다. "저게 뭔소리여?"


그래서 나는 승객들이 이해하기 쉬우시라고, 승무원들이 승객들에게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게, 좀 친절하고 구체적이고, 소리에 생명은 없지만 인간미가 느껴지도록 방송을 하고 있는 거니깐, 이게 다 '고객의 만족'을 위한 거니깐, '그래 너 영어 잘해 잘났다. 오냐, 다음에 비행기에서 너 만나면 영어 얼마나 잘 하는지 보겠어'식으로 오해하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Thank you for your kind understaning!





* 어학연수를 갈만도 한데 왜 안갔을까? 돈도 돈이지만 영어 공부라면 한국에서 해도 충분하다는 자만심때문에 (돈 없어서라고는 죽어도 말 못하지?) 굳이 영어 공부를 위해 해외에 나가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가 아니고 돈 없어서지 뭐. 아니라니깐!)


* 해외 여행도 항공사 입사 후 처음 가봤다. 깜짝 놀랬다. 해외를 간다는 것은 언어를 배우는 것 이상의 뭔가가 있었다. 그걸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삶의 다양성'이라고 할까? 한국에서 살 땐 내 주변이 내 삶의 바운더리 였다. 고만큼만 보이고 고만큼만 크고, 고렇게 살았다. 외국 나가보 시야가 넓어지고 마음이 넓어지고 (옹졸하게 살고 있지만) 그걸 통해 (지구 인구 80억, 같은 인생은 단 한개도 없다. 내 삶은 지구상 유일무일하다) 내 삶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 내가 만약 인생을 다시 살게 된다면 (그럴 일은 없다)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밖으로 나갈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긴장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하리라. 그리고 좀 더 바보가 되리라. 되도록 모든 일을 심각하게 생각지 않으며 좀 더 많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 . 나는 매 순간을, 매일을 좀 더 뜻깊고 사려 깊게 사는 사람이 되리라. . . 이 순간을 즐기며 살아가리라. . . 데이지꽃도 더 많이 따리라" 그리고 다음부터는 미국 시인 돈 헤럴드 글인거 몰랐죠? (그래도 대한항공에 입사하리라, 지금 아내랑 결혼하리라, 지금 아들을 또 낳으리라. 딸한 명 더 낳으리라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이건 내 시다)



매거진의 이전글 "외국어도 서비스다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