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글 제목을 보더니 "그러다 사람들한테 몰매 맞아" 한마디 한다. 그래! 제목이 좀 어그로스럽다 ('어그로스럽다의 의미는 '관심을 끌고 분란을 일으키기 위하여 인터넷 게시판에 자극적인 내용의 글을 올리거나 악의적인 행동을 하는 일'이라고 네이버가 알려줬다. 엊그제 내 글 구독자에 장모님 이름이 떴다. 장모님은 '어그로스럽다'는 의미를 잘 모르실 것 같아 장모님을 위해 그 정의를 적어본다. 참, 친절한 사위다. 그쵸 장모님?)
제목만 보면 "뭐야, 코로나한테 고맙다고? 미친 거 아냐?" 욕먹을 것 같다. 그렇지만 코로나를 원망한다고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코로나를 받아들이고 코로나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를 고민해야 할 때다.
나도 코로나가 밉다. 코로나 때문에 월급이 반 이상 줄었다. 5월 전까지 2달을 쉬었고, 5월 한 달 비행을 했지만 평소 비행 시간의 2/3도 안됐다. 승무원은 기본급이 적은 대신 비행 수당을 받는다. 비행 시간이 줄면 그만큼 월급도 적어진다. 두 달 놀고 달랑 한달 비행 후 앞으로 또 4개월 (6월부터 10월까지)을 쉬어야 한다. 코로나가 잡히지 않을 경우 그 이상 쉬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도 있다.
어제 런던에서 도착했다. 300명 태울 수 있는 비행기에 고작 70명의 승객만 탑승했다. 다들 세자리씩 차지하고 앉으니 거리두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마스크는 모든 승객이 쓰고 있다. 거기에 더해 고글, 심지어 방호복을 입고 탄 승객들도 여럿 있었고, 몇몇 승객은 10시간 10분 비행 동안 물 한모금 마시지 않았다.
주변 승객들이 숨쉬는 것 조차 불안한 비행. (그래도 나는 비행 중 두 번 밥을 먹고 - 비빔밥과 스크램블 에그 - 스프라이트 1캔, 커피 2잔, 물 3잔, 스낵 믹스 1개, 치즈와 포도 등 잘먹고 잘왔다)
런던 비행이 5월의 마지막 비행이었다. 인천공항 랜딩 후 주기장으로 이동하는 중에 창밖을 보았다. 저멀리 수십대의 비행기들이 도열해 있다. 비행기는 하늘에 떠 있을 때가 제일 멋진데 (나도 유니폼 입고 하늘을 날 때가 제일 멋진데 - 착각은 자유지만). 언제쯤 비행기도 나도 하늘을 훨훨 날 수 있을까? 입국장은 썰렁하기 그지 없다. 평소대로라면 세계 각지에서 입국하는 사람들로 북적댔을 텐데. 비행 끝나면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입국 심사가 오래 걸리면 몸과 마음이 급했었는데, 요즘은 공항을 빠져나오는데 KTX를 탄 기분이다. 집에 늦게 가더라도, 입국 심사가 늦어지더라도, 완행 타는 느낌이 들더라도 제발 입국장이 승객들로 가득 채워지는 날이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
코로나가 원망스럽다고 원망만 하며 지낼 수 없다. 어짜피 벌어진 일 돌이킬 수 없다. 이제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해야 할때다. 오늘이 휴직 1일차. 10월까지 쉰다면 나에게 주어진 날은 122일. 앞으로 이 122일을 어떻게 잘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해본다.
우선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이렇게 매일 매일 최소한 한 편이상 글을 쓸 것이다. 그동안 비행 수첩에 메모해 놓은 비행 얘기, 비행기에서 만났던 사람, 비행기에서 경험한 에피소드 등을 글 속에 담아 보련다. 글쓰기 강사님이 진행하는 글쓰기 모임도 하나 등록해 놓았다. 남에게 보이려고, 잘 쓰려고 욕심내진 않겠지만 휴직 기간을 통해 내 글이 좀 더 업그레이드 되길 바래본다.
운동도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꾸준히 해왔지만 역시나 코로나 때문에 센터가 몇 달간 문을 닫았다. 다행히 다음주부터 오픈한다고 하니 음악에 맞춰 신난게 '줌바'할 생각이다.
중국어 주말반도 신청해 놓은 상태다. 스크린 중국어로 매일반도 있지만 토요반을 등록했다. 교육 효과를 위해서는 매일반이 좋겠지만 학원까지 가는데만 2시간이 걸린다. 매일 왕복 4시간 (3시간 47분 걸린다)을 다니기에는 무리다. 토요일 4시간 동안 일주일치를 한꺼번에 몰아서 배우고 주중에는 배운 내용을 수시로 복습할 생각이다.
9월까지 3개월 동안 중국어를 배우고 10월에는 한달만 스크린 일본어를 등록할 예정이다. 코멩멩이 친절한 일본어 소리도 그립다.
내 인생 최장의 휴가 (정확히 말해서 휴직)가 시작됐다. 비행시간이 시간이 100시간에 육박했을 때, 맨날 만석 에 미국, 유럽, 동남아, 중국, 일본 순방 (이라니 가당치 않다)을 다닐 때 그렇게 '휴가, 휴가'를 외쳐댔건만 막상 휴가가 시작되니 반갑지만은 않지만 그렇다고 어쩔 도리가 없다. 글쓰기고, 중국어고 일본어고 자시고 코로나가 진정되고 승객이 늘고 비행이 재개되어 휴직이 취소되고 낼 모레 당장 비행이 시작된다면 쌍수를 들고 (아내가..음! 나도) 환영할 것이다. 아무튼 그런 날이 빨리 오길 바래본다. 무진장~
*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자. 코로나! 땡큐! 가 진짜 땡큐가 아니란 걸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충실히 배운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혹시?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