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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Flight Jun 01. 2020

# 승무원 아내의 배려

- 난 참 결혼을 잘했다 -

제목을 '난 참 결혼을 잘한 것 같다'라고 썼다가 다시 고쳤다. '결혼을 잘했다'라고...'결혼을 잘한 것 같다'는 자신감이 부족해 보이고, 긴가 민가 하다.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내 고향 충청도 스타일이다. 그랬다는겨 안그랬다는겨...


'결혼을 잘했다'는 확정적이며 선언적이다. 잘 벼린 칼로 무 썬듯 정확하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내가 '결혼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내 글의 독자가 오늘로써 141명인데, 그중 5명은 처갓집 식구다. 장모님, 아내, 처형, 처남, 처제... 그냥 그렇다는 거지 뭐 다른 뜻은 없다. 보고 있죠 장모님?)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승무원이고 (현재), 아내가 승무원이었기(과거) 때문이다. 아내는 내 일에 대해 너무 (강조를 위해 한 템포 쉬고) 너~ (일부러 강조를 위해 길게 발음) 무 잘 안다.


(남)승무원들은 비자금 만들기가 좋다. 승무원의 월급 체계는 일반인과 다르다. 승무원은 보통 세 개의 통장을 가진다. 보통 월급이라고 부르는 기본급 + 비행 수당은 월급 통장에 들어온다.


승무원은 해외 체류 시 '체류비'가 나온다. 퍼듐(Perdiem)이라고 부르는데 체류 국가 물가에 따라 단가가 다르다. 퍼듐은 퍼듐 통장에 달러로 매월 두 번 입금된다. 퍼듐이 가장 쎈 곳은 내가 어제 다녀온 영국 런던. 보통 3박 4일 일정으로 다녀오면 한국 돈으로 25만 원 전후 입금된다. 미국 다녀오면 10만 원 중반쯤, 동남아 2박 3일은 7만 원 전후쯤 입금된다. 그 돈은 현지에서 먹고 마시라고 주는 건데 체류하다 보면 시차 적응에 밤낮이 바뀌다 보니 하루 세끼 다 챙겨 먹기 힘들고 그러다 보니 돈이 남는다. 먹을 거 마실 거 싸가지고 다니면 퍼듐의 상당 부분이 남는다.


기타 통장으로는 국내선 랜딩 차지 (Charge)와 교통비 통장이 있다. 십만 원 이내로 입금되는 데 이것도 가랑비에 비 맞는 줄 모른다고 출근이 많거나 국내선 비행이 많을 경우 은근히 쌓인다.


아무튼 많은 (남)승무원들은 (758명쯤?) 월급과 비행수당은 가족에게 공개하는 반면, 퍼듐과 랜딩차지, 그리고 자잘한 몇 가지 수입을 비자금으로 모으는 경향이 있다 (박사무장, 김에피, 최뭐시기 승무원 등등). 코로나 사태로 비행 시간이 '확' 깍인 요즘을 제외하고 평상시처럼 제대로만 비행을 한다면 본인의 의지에 따라 - 비자금을 만들 것이냐! 말 것이냐 - 월급 (기본급 + 비행수당)을 제외하고도 한 달에 50만 원 이상의 비자금을 만들 수 있다.


* 나같이 성실한 사람은 이 퍼듐을 환전해서 용돈으로 쓴다.


그런데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승무원 출신인 아내는 나의 월급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 한 달 비행 스케줄이 나오면 아내가 계산을 한다. "장거리 2개라~ 미주 하나 유럽 하나 퍼듐이 37만 4천 원쯤 나오겠군. 동남아 2개면 12만 5천 원. 나머지 일본하고 중국 하면 10만 원.. 그리고 국내선 있고... 다음 달 퍼듐이 60만 원쯤 될 테니 용돈 필요 없겠네"


내가 월급 카드로 뭐라도 (몰래)사면 며칠 내로 아내가 안다. 아내가 내 신한카드 비밀번호를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비밀번호를 아내가 설정해놔서 내가 아내에게 '비밀번호 좀 알려줘'부탁한다. (내 계좌인데... ) 아내가 한 마디 한다. "아니! 자기 퍼듐으로 사면되지 왜 월급을 써?"


그럼 나는 또 당당하게 한마디 한다. "뭐! 내가 번돈, 내 맘대로도 못쓰냐. 그렇다고 내가 남들처럼 허튼데 쓰냐고! 책 사거나 뭐 배운다고 쓰는 건데 그것도 못해? 어? 어? ~ 그리고는 아내 표정을 살피다가 "퍼듐 바꿔서 메꿔 놓을게"


그렇다고 아내가 짠돌이는 아니다. 오히려 통이 좀 크다. 자주 (가끔) 내 통장에 돈도 넣어주고 장거리 비행 가면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자주 (가끔) 주머니에 카드도(한도 초과. 사용 불가? ㅋㅋ) 찔러 넣어준다. 엊그저께 런던에 있을 때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자기야, 자기 비자금 계좌번호 좀 알려줘"


"왜? 용돈 주게?" 물어보니 "응, 자기 6월부터 휴직인데 휴직 기간 동안 쓰라고 용돈 좀 넣어주려고" 캬! 그 맘 씀씀이가 정말 고맙다. 그런데 아직 비자금 계좌에 입금이 안되어 있는 게 문제다. 평소에는 그렇게 빠릿빠릿하면서 이런 건 왜 나(충청도 천안 출신) 닮은 건가? 참고로 나도 결혼 후 수년이 지난 후 비자금 카드를 만들었다. 비자금 계좌 안은 오직 나만이 들여다볼 수 있다. 아내가 몇 번 침입을 시도했으나 완벽하게 방어했다. 아직까진...


그래도 어제 런던 다녀왔더니 내가 좋아하는 주꾸미 삼겹살도 해 놓고, 또 두 시간 동안 아내 옆에서 런던 비행 얘기 - 일이 좀 많았다 - 를 주저리주저리 하는데도 하나도 지겹다는 표정 없이 때로는 맞장구 쳐가며 들어주는 아내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일반인과 결혼한 친구는 비행을 다녀오면 와이프가 '좋겠다. 놀러 갔다 와서...' 속도 모르는 얘기를 한다고 속상해하던데 승무원 출신인 아내는 비행이 얼마나 고된지 알기에 비행 전후로 내가 편히 쉴 수 있도록 많이 배려해 준다. 비행 가기 전에는 내가 쉴 수 있도록 아들을 데리고 두세 시간 나갔다 온다든지, 어제처럼 장거리 비행을 다녀오면 밥 먹고 내가 일찍, 혼자서, 편히 잘 수 있도록 발마사지를 해준다. 어제도 저녁을 먹고 아내와 아들의 손에 이끌려 침대에 누웠더니 오른발은 아내가, 왼발은 아들이 마사지를 해줬는데 두 사람의 사랑이 담긴 발마사지를 받다가 어느 순간 꿈나라고 가버렸다.


나처럼 이렇게 아내 자랑을 하는 사람을 뭐라고 하나 싶어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팔불출 (八不出)'이란다. '팔불출 (八不出)'이란 단어만으로는 의미를 알 수 없어 또 검색해 보니 '제 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여덟 달만에 낳은 아이'를 일컫는 팔삭동(八朔童)이에서 비롯되었단다. 팔불출은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서 '좀 모자란', '덜 떨어진', '약간 덜된' 것을 의미한다는데, 그렇다면 나는 팔불출보다 더 모자란 '칠불출(七不出)'쯤 되지 않을까 싶다.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아내가 두어 번 부른다. "자기야! 설거지 언제 해?" - 설거지하고 다시 쓰고 있다. 한창을 쓰고 있는데 아내가 또 부른다. "자기야, 우진이 컵라면 먹고 싶대" 그래서 아들 컵라면에 물 부어주고 3분 기다렸다가 그릇에 라면 옮겨주고 이 글을 마무리한다. 아무튼 백번 생각해도 난 승무원 출신 아내와 결혼을 잘했다. 진짜다. 진짜라니깐!!! (그나저나 브런치 구독자 강퇴 기능 같은 거 없나? 혹은 지인 구독 금지 같은 거...)




* 가족 중에 승무원이 있다면 '비자금'을 털어봐라. 코로나 때는 '십시일반' 서로 도와야 한다. 나만 털릴 수 없지.


* 방금 아내에게서 카톡이 왔다. '자기야, 나 칭찬하는겨? 돌려 까는겨?. 당연히! 칭찬과 찬양의 글이지. 하트 뿅뿅 날려준다. 저 하트는 진짜다. 진짜라니깐!!


아내와 나는 안나푸르나 여신의 중매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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