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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Flight Jun 07. 2020

# 승무원과 '3M'

-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

사진 제공 : 구글씨


승무원으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Must not do) 세 가지가 있다. 이것을 승무원들은 '3M'이라고 부른다. 세 가지 모두 영어 알파벳의 'M'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 M은 Miss Briefing (비행 지각)이다. 승무원은 항공기 출발 2시간 전 지정된 장소에 모여 비행 브리핑을 한다. 브리핑에서는 동승 승무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그날 비행편의 승객 정보, 항공기 특징 및 비상 보안 장비, 목적지 출입국 절차 및 서류에 대한 내용을 확인한다.


* 브리핑 시간은 국제선/국내선에 따라 다르다.

* 코로나 사태로 쇼업 장소가 공항으로 변경됨에 따라 브리핑 시간도 1시간 20분전 으로 뀌었다.


승무원들은 보통 브리핑 시작 30분 전까지 쇼업을 한다. 브리핑은 승무원끼리 팀웍을 다지고 친밀한 관계 (Rapport)를 형성하는 단계이다. 쇼업 시간을 너무 빠듯하게 잡았다가 허겁지겁 브리핑 실에 들어오면 '정신없는 승무원'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라도 여유를 가지고 출근한다. 또한, 브리핑에 늦으면  큰 실수를 저지른 것처럼 비행 내내 사무장님과 동료 승무원들의 눈치를 보게 되니 승객과 서비스에 집중하기 힘들다. 


* 브리핑 전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넉넉하게 1시간 전에 출근하는 게 좋다.

* 승무원마다 다르지만 대개 브리핑 전 1시간 ~ 30분 사이에 출근한다.


두 번째 'M'은 Miss Flight (비행 결근)이다. 비행을 가지 못하는 것인데, 새벽 비행에서 종종 발생한다. 승무원들은 알람을 세 개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는 스마트 폰 알람, 또 하나는 시계 알람, 마지막 하나는 가족 알람이다. 새벽 비행이면 가족들 모두 민감해져 자다가도 "일어나야 되는 거 아니냐?"며 가족들이 승무원을 깨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 나도 아내가 종종 나를 깨워준다.


최악의 M은 Misinflation이다. 항공기 도어 (Door)에는 비상 탈출 시 사용하는 슬라이드 (Slide)가 장착돼있다. 놀이터 미끄럼틀 같은 모양인데 평상시에는 압축돼 슬라이드 버슬에 들어있다. (여기서 Bustle은 물건을 담는 '틀' 혹은 '통'을 의미한다)


비상사태가 발생해 항공기로부터의 탈출이 필요한 경우 승무원은 도어를 열고 슬라이드를 터뜨린다. 이것을 '슬라이드 인플레이션 (Slide Inflation, Slide Deploy)이라고 한다. 슬라이드가 터지면 미끄럼틀이 생기고 승객들은 이 미끄럼틀을 타고 항공기로부터 탈출한다.


슬라이드는 도어가 (Door Mode)가 '암드 (Armed - 장착되다)'돼 있을 때, 도어를 경우 터진다. 승객 탑승이 완료되고 항공기 출발이 끝났을 때 사무장은 기내 방송 혹은 All call (승무원 전원 호출)을 통해 승무원들에게 항공기 도어 Arming을 지시한다. 승무원들은 도어를 Arming한 후 반대편 승무원과 상호 확인한다. 이 상태에서 도어를 열면 슬라이드가 터진다.


'실수'를 의미하는 Mis가 붙으니 Misinflation은 승객 탈출이 필요 없는, 즉 항공기 정상 운항 시에 실수로 슬라이드를 터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기종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1개의 슬라이드는 50명의 승객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다. 1개의 슬라이드가 잘 못 터지면 50명의 승객이 비행기에서 내려야 한다. 혹은, 50개의 좌석을 비워놓고 운항해야 한다. 항공사는 슬라이드 재장착을 위해 항공기를 지연시키든가, 50명이 넘는 승객을 안 태우든가 결정해야 한다.


세 가지 '미스'중에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이 미스 인플레이션 (Misinflation)이다. 항공기가 지연되거나 최소 50명의 승객이 비행기를 못 타니 이에 대한 불편과 보상은 어마어마하다.


부끄럽지만 17년 비행 생활 동안 딱 한번 '미스'를 해봤다. 그나마 가장 피해가 적은 '미스 브리핑'이었다. 항공기 출발 시간을 잘 못 계산해서 발생한 실수였다. 항공사는 일 년에 두 번 - 하계와 동계 - 항공기 운항 스케줄을 정한다. 항공기 운항 횟수와 출발 시간은 하계와 동계가 다르다. 어제까지 하계 스케줄로 가다가 오늘 동계 스케줄이 시작되면, 하계 스케줄에 익숙해져 있는 경우 출발 시간이 헷갈리게 된다.


나도 항공기 운항 스케줄이 하계에서 동계로 넘어가는 즈음에 미스 브리핑을 하게 됐다. 비행 전날 수차례 브리핑 시간과 항공기 출발 시간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에 홀린 듯 브리핑에 8분 정도 늦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경위서를 쓰는 걸로 끝났지만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오브 더 레코드 - 회사 관계자분은 읽지 마시길. 혹 읽더라도 웃으며 넘어가 주시길) 미스 브리핑과 미스 플라잇은 사무장에 따라 구제가 가능한 경우도 있다. 브리핑 시간이 다가오는데 승무원이 안 올 경우 사무장이나 동승 승무원이 해당 승무원에게 전화를 걸어보기도 한다. "XXX씨, 오고 있죠?" 물었는데, 안오고 있다면? 자고 있다면? 큰일이다.


그래도 한 승무원을 구한다는 마음으로, 그 승무원이 공항까지 40분 내로 주파가 가능하다면, 화장이고 뭐고 할 것 없이 (화장은 택시 타고 해도 된다) 비행 필수 휴대품만 챙기고, 비행기로 빨리 오라고 한다. 여기서 40분은 사무장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이다. 브리핑실에 있는 승무원들도 브리핑 (20분 내외)과 공항 이동 (20분)에 대략 40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승객들 탑승이 시작되기 전까지 비행기에 타면 그날 비행은 갈 수 있다.


나도 수년 동안 수 명의 승무원 (이xxx, 박xxx, 최xxx 등등)을 구제해줬다. 전화기 너머로 숨이 넘어가듯 헐레벌떡 뛰어오는 승무원에게 두 가지를 당부했다. 급하게 오더라도 비행기 앞에서는 뛰지 말 것 (승객 앞에서는 우아하게). 비행기 타면 승객 서비스에 집중할 것 (사무장, 승무원 눈치 보지 말 것).


어쨌거나 너그러운 사무장 만나길 바라지 말고 자기 관리 잘해서 승무원으로 비행하는 동안 세 가지 'M'은 절대 하지 않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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