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민숭달팽이
2013년 "대양을 담은 바다 조수웅덩이"의 제작이 확정된 후 첫 촬영을 성산 수마포로 갔다. 무작정 뭔가 촬영할 것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지만 막상 수중 카메라를 세팅해서 가지고 가니 촬영할 만한 생물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조간대생물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어 생물 찾기나 생태 포착이 서툴렀다. 이리저리 조간대를 돌아다니며 조수웅덩이와 얕은 바다를 살펴보던 중 뭔가 주변의 색과 전혀 다른 무엇이 눈에 띄었다. 파랑갯민숭달팽이었다. '심봤다.' 그것은 마치 심마니가 산삼을 발견한 것 같은 기쁨이었다. 게다가 한 마리가 아니라 한쌍이 교미를 하고 있었으니 두배로 감격스러웠다.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된 후에는 정말 다양한 갯민숭달팽이나 유사한 부류들을 많이 만났다. 우리나라에는 딱히 이 부류를 구분하는 명칭이 없어 영어를 차용하자면, 넓은 의미로 바다달팽이류를 통틀어 부르는 영어 표현은 Sea Slug이고 그중에서 갯민숭달팽이에 해당하는 것을 Nudybranch라고 한다. 즉 모든 갯민숭달팽이(Nudybrach)는 씨슬러그지만 모든 씨슬러그가 누디브랜치는 아니다. (https://morefundiving.com/nudibranch-or-sea-slug/)
생물 분류 체계에서는 나새목(Nudibranchia)에 해당하는 것에 '갯민숭달팽이' 또는 '갯민숭이'란 이름을 붙이고 낭설상목은 '갯민숭이붙이'라고 하며 군소목(Aplysiida)은 '군소' 그리고 군소와 비슷한 측새목은 '군소붙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전에는 아가미가 뒤쪽에 있는 생물이란 뜻으로 이들을 모두 후새류라고 불렀으나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이고 정식 분류체계로 인정된 용어가 아니다.
다른 생물을 촬영하다가도 바다달팽이류를 발견하면 렌즈 방향을 돌리지 않을 수가 없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눈에 확 띄는 색과 무늬를 하고 있는 종이 많고 생김새도 독특하다. 그래서 딱히 특별한 이야기가 없더라도 영상에 양념 같이 보는 재미를 주는 피사체이다. 그리고 워낙 다양해서 '이런 생물들이 우리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는데 모르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생태에서는 너무 화려하고 눈에 잘 띄면 독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된다. 실제로 갯민숭달팽이를 비롯한 바다 달팽이들은 천적이 많지 않은 것 같고 다른 생물이 이들을 공격하는 모습도 본 적 없다. 하지만 모든 갯민숭달팽이가 독이 있는 것은 아니며 있다 해도 우리나라에선 아직 맹독을 가진 종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냥 먹으면 불쾌감을 주거나 탈이 나는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바다달팽이의 하나인 군소의 경우 식용하긴 하지만 식중독을 일으킨 사례도 있고 호주에선 해안에 떠밀려온 군소를 핥은 개들이 죽었다는 보고도 있다.
그래도 천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어서 바다거북이나 육식성 갯민숭달팽이 또는 납작벌레(편형동물)가 갯민숭달팽이를 잡아먹는다.
촬영뿐 아니라 체험활동이나 생태 안내를 할 때도 은근히 갯민숭달팽이가 발견되길 기대한다. 참가자들 대부분은 갯민숭달팽이를 처음 보기 때문에 흥미롭고 인상적인 체험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