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감독에겐 너무 어려운 유튜브 만들기
첫 번째 업로드
너무 잘 아는 장소와 내용이었지만 무작정 촬영해서는 짜임새 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고 영상의 컨셉과 형식도 아직 확정되지 않아 시행착오가 생겼다.
“감독님은 꼭 유튜브를 하셔야 합니다.”
“유튜브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갖고 있잖아요.”와 같은 말을 많이 들었다.
나 스스로도 언젠간 유튜브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긴 했다. 꼭 유튜브가 아니더라도 내가 가진 많은 영상과 이야기들을 그냥 저장매체에 쌓아두는 것은 아깝다고 생각했다.
특히 자연 다큐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은 딱히 정해진 작품이 없어도 좋은 풍광이나 생물이 나타나면 일단 촬영해야만 하는 일종의 직업병을 갖고 있고 목적이 정해진 경우에도 최종 작품에 사용한 컷은 전체 촬영 테이크의 일부분이라 사용되지 않은 B컷이 많을 수밖에 없다.
난 비교적 계약이나 입금 전엔 촬영을 안 하자는 주의? 지만 그래도 다른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평생 반도 채우기 힘든 크기의 용량을 가진 하드디스크가 쌓여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짜깁기해서 괜찮은 영상이 만들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특히 유튜브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닌 독특한 상품성을 요구하는 시장이다.
평생 영상물을 제작했고 유튜브 활용을 목적으로 하는 제작 용역도 했었지만 의뢰인이나 특정 소비자층이 아닌 미지의 시청자들에게 어필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특히 나처럼 장르와 주제가 분명한 경우 공감대의 폭이 넓지 않을 것이 우려되었다. 그래도 언제까지 머릿속에만 만리장성을 지었다 부수기를 반복할 수는 없는 일이고 일단 저질러봐야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 채널의 방향을 정하고 계정을 만들고 이제 막 첫 편을 제작해 업로드했다.
아는 게 병이라고, 남들이 하는 건 대충 찍어 올려도 되는 것 같은데 막상 내가 하려니 방송 프로그램 제작만큼이나 생각할 것도 많고 공을 들여야 했다.
첫 편을 내 정체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조수웅덩이 생물로 시작하려 했는데 기껏 장비를 챙겨 나가 보면 파도가 너무 높거나 바람이 불고 또 해녀들이 작업을 하고 있어 그냥 돌아왔다. 내가 작업을 방해하거나 해산물을 채취하지 않아도 해녀들은 일단 자기 바당에 누가 들어와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다음은 은어가 바다에서 하천으로 소상하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강정천과 중문천에 답사를 갔는데 올해는 유독 해수온이 낮아 은어가 올라오지 않았다. 그래서 늘 지나다니는 길가의 게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채널 이름도 깅이와 바당이니 오히려 가장 정체성에 맞는 내용이다.
너무 잘 아는 장소와 내용이었지만 무작정 촬영해서는 짜임새 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고 영상의 컨셉과 형식도 아직 확정되지 않아 시행착오가 생겼다.
내겐 성우나 배우가 내레이션 하는 구성이 익숙하지만 유튜브는 내가 주인공이므로 내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는데 현장에서 촬영하며 녹음까지 하는 것은 내 영상 컨셉에 적합하진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부분이 가장 힘들었다. 그동안 같이 작업한 전문가들과 내 목소리가 너무나 달랐고 평소 말도 별로 안 하는 데다가 나이까지 드니 목소리가 가라앉고 갈라져 만족스럽지 못했다. 다른 유튜버들은 그냥 카메라 켜고 주욱 돌아보며 이런저런 이야기하고 대충 길이만 맞춰 편집하는 것 같았는데 내겐 전혀 그렇지 못했다.
기획하고 구성하고 그에 맞춰 촬영하고 가편하고 색보정과 자막, 음향과 음악 그리고 내 목소리로 더빙까지 하는데 어색하지 않고 부드럽게 연결되도록 하는 그 모든 작업이 결코 만만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만들고 보니 이런 스타일이 유튜브에서 먹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방송 다큐도 시청률 때문에 하이라이트를 전반부에 몰아넣는데 내 영상은 너무 귀납법적이고 설명적인 것은 아닌지, 요즘 유튜브 자연다큐엔 잠 안 올 때 보는 영상이란 수식어를 붙이는데 가뜩이나 낮은 목소리 톤 때문에 졸리지는 않을지 이런저런 걱정이 앞선다.
결국 하다 보면 답이 나오리라 본다.
유튜브 하는 지인들이 있는데 어떤 경우는 몇 년을 해도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가 하면 짧은 시간에 급성장하기도 한다. 그 차이는 단순히 운이 아니고 다양한 요소의 영향에 따른 것이라 생각한다. 흔히 유튜브는 자극적이고 말초적이어야 조회수가 나온다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사실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또 지금껏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방법들을 크게 벗어날 생각도 없고 맘먹는다고 그렇게 되기도 힘들다.
나의 정체성과 오랫동안 쌓인 색깔 그리고 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성공적인 유튜버가 되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첫번째 업로드 <제주도 게 보레 옵서게~ 하도 게가 많은 하도리 바닷가 이야기>
https://youtu.be/AnsvRClyJUo?si=vOfSOiA3lGE5UAO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