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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이름이 깅이와 바당이라구요?

나는 왜 회사 이름을 이렇게 지었나

by 깅이와 바당

게야말로 조간대를 대표하는 동물이고 그 역할과 사는 모습이 척박한 자연을 일구며 살아온 제주 사람들과 닮았다

말똥게-2.jpg 하도리 석호 습지의 말똥게Orisarma dehaani


깅이는 제줏말로 게를 뜻하며 바당은 바다를 말한다. 서귀포 쪽에서는 대체로 겡이라고 한다. 깅이와 바당이라고 하면 다른 지역 사람들은 물론 제주 사람들도 얼른 알아듣지 못한다. 깅이와 바당이란 단어의 조합이 낯설기 때문이다. 천천히 다시 말해 알아듣더라도 횟집이나 해산물 음식점으로 생각하지 프로덕션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다.


물고기는 어려서부터 좋아했지만 내가 지금처럼 게에 관심을 갖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회사 이름에 깅이를 넣은 이유는 게야말로 조간대를 대표하는 동물이고 그 역할과 사는 모습이 척박한 자연을 일구며 살아온 제주 사람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게처럼 바닷가를 기어 다니며 열심히 촬영하겠다는 의미도 들어있다.

love3.jpg 신안군 도초도에서 달랑게Ocypode stimpsoni 촬영 중


게는 심해부터 바다를 벗어난 하천 또는 숲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 진출하여 사는 동물이지만 바닷물이 들고 나는 조간대야말로 게들의 본거지이고 가장 다양한 게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게의 조상이 새우처럼 헤엄치는 능력을 포기하고 네 쌍의 다리로 기어 다니게 된 것도 조간대라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깅이와 바당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 KBS파노라마 <대양을 담은 바다 조수웅덩이>를 방영하고 국립해양생물자원관과 인연이 닿아 해양보호생물을 소개하는 여러 영상물을 제작했다. 그중에는 흰발농게, 달랑게, 갯게, 붉은발말똥게, 눈콩게, 두이빨사각게 그리고 남방방게 등 여러 종의 게가 포함되었다. 그 게들을 촬영하기 위해 제주도는 물론이고 서해안과 남해안까지 가서 촬영하다 보니 다양한 종의 게를 구분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고 왜 어떤 게는 번성하고 어떤 종은 숫자가 줄어들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게를 통해 이해하게 된 생태의 중요한 특성이 있다. 그것은 같은 게라도 종마다 선호하는 서식 환경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서식 환경의 차이가 종을 만들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비슷한 곳에서 발견되는 게라도 완벽하게 똑같은 서식지에 살지는 않는다. 후에 따로 소개하겠지만 2023년, 하도리 석호에 서식하는 게의 공간분포패턴이란 제목의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연구 진행 중 발견한 게는 15종이었다. 모래해안에 사는 달랑게를 제외하면 대부분 크게 다르지 않은 곳에 산다. 그럼에도 이들의 서식지를 나누는 몇 가지 미묘한 환경 조건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염분이고 그다음은 서식지의 바닥이 무엇으로 되어있는가를 말하는 저질과 수면을 기준으로 한 높이 차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말똥게와 방게는 한 지역에서 섞여 살고 있지만 말똥게는 물속보다 물 밖에 나와 있는 시간이 길고 방게는 그와 반대다. 또 말똥게는 바위가 많은 곳을 좋아하는데 방게는 갈대 아래 평평한 진흙을 더 좋아한다.

방게-1.jpg 하도리 석호 습지의 방게Helice tridens

아주 미세한 차이로 종이 나뉘는 대표적인 예가 농게와 흰발농게이다. 흰발농게가 사는 곳 주변엔 대체로 농게도 살지만 농게가 많다고 가까이에 흰발농게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흰발농게만 있는 곳도 없진 않다. 아쉽게도 제주도엔 농게나 흰발농게가 살지 않지만 서남해안 여러 지역에서 이 두 종을 촬영했다. 대표적인 곳이 무안의 황토갯벌랜드이다. 이곳은 복원한 흰발농게 서식지 주변에 경계선을 만들어 보호하고 있는데 게들이 경계선을 보고 넘어가지 않는 것은 아닐 텐데 분명하게 농게와 흰발농게 서식지가 나뉘어 있다. 게를 촬영할 땐 가급적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카메라를 최대한 낮춰 촬영하는데 바닥 높이에서 관찰하면 두 종이 사는 땅의 각각 높이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붉은색의 농게는 조금 아래에 흰색의 흰발농게는 조금 위로 봉긋 올라온 지형에 산다.

농게펄.jpg 고창갯벌센터 옆 질퍽한 갯벌에서 먹이 활동 중인 농게Austruca annulipes
흰발.jpg 거친 입자의 비교적 건조한 모래에서 먹이를 먹는 흰발농게Austruca lactea

높이에 따라 물에 잠겨있는 시간도 다르고 저질도 달라진다. 아무래도 아래쪽은 땅에 수분이 많고 고운 펄(진흙)로 되어 있고 높은 쪽은 건조하고 입자가 굵은 모래로 되어 있다. 물론 아주 큰 차이는 아니고 미세한 차이가 날 뿐인데 이로 인해 사는 종이 달라진다. 이런 차이로 인해 먹이나 먹는 방법 그외 생리적인 적응에도 영향을 주어 사는 종이 다른 것으로 여겨진다.

갯게 생태.jpg 삼달리 갯게Chasmagnathus convexus

인간에 의해 직접적으로 피해를 당해 개체 수가 줄어들고 생존에 위협을 당하는 경우도 있으나 특정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아주 별난 서식 조건, 개발로 인해 귀해진 환경에서만 사는 생물은 수가 줄어들거나 멸종될 위험이 크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고 해양보호생물인 갯게는 말똥게나 방게와 거의 같은 환경에 살지만 상조선(만조의 경계)을 거의 벗어나지 않고 바닥은 진흙으로 되어 있으며 배경에 언덕이나 바위가 있는 곳에 사는데 유난히 예민하고 집에서 멀리 나가 활동하지 않는 등 매우 까다로운 취향을 갖고 있다. 사람이나 생물이나 까탈스러우면 적응이 힘들다.


이처럼 게는 내가 생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 동물이다. 또 다행스럽게도 내가 사는 주변에 아주 흔하고 다양하다. 우리 집에는 비단잉어와 금붕어를 키우는 연못이 있는데 이곳에도 게가 산다. 꽤 여러 마리가 있는데 한 두 마리를 제외하면 자기가 알아서 찾아온 것이다. 물가에서 1km나 떨어진 이곳까지 어떻게 오게 된 것일까? 난 이런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보려 한다. 게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는 흥미로운 생물이다. 다시 생각해 봐도 회사 이름을 잘 지었다. 깅이와 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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