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는 타고나는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1화에서 광례는 그 당시 경제적으로 가장 큰 수입이 보장되는 직업이 해녀였음에도 자기 딸 애순만큼은 절대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숨병(드마라 속 설정으로 정확한 병명은 아니다)에 걸려 죽을 자신의 운명을 미리 감지한 것일까? 아니면 물질이 너무 힘들어서였을까? 제주 속담에 "여자로 나느니 쉐로 나주"(여자로 태어나느니 소로 태어난다)란 말이 있을 정도로 과거 제주에서 여자로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해녀의 삶은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였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나마 체질적으로 물질이 맞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아마 광례는 후자였을 것 같다. 그럼에도 악착같이 상군이 되었으니 병에 걸리는 것이 오히려 당연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해녀 체질이란 것이 있을까?
최근 유타대의 멜리사 일라도 교수가 서울대와 외국의 여러 대학 연구팀을 이끌고 그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한 결과를 발표했다.
평균 연령 65세의 3대째 해녀를 하는 제주 여성 30명과 제주의 해녀가 아닌 여성, 서울 거주 여성 각각 30명씩 비교한 결과,
찬물에 얼굴을 담그는 모의 잠수 실험에서 해녀 집단의 심박수가 두드러지게 느려졌는데 이것은 유전적 요인이라기보다는 훈련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프리다이버들은 심박수를 조절하는 훈련을 한다.
그런데 유전적으로 제주에 거주하는 여성 중에는 추위에 내성을 가진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많았고 제주인의 33%가 이완기 혈압을 낮추는 유전자 변이도 갖고 있었는데 이에 비해 서울 거주인은 7%만 해당되었다.
이 연구 결과를 놓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그중에는 오해도 있을 수 있다.
잠수할 때 심박수를 낮추는 능력은 어느 정도 타고 날 수도 있으나 훈련으로 강화되는 것인데 후천적으로 획득한 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이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사실이므로 해녀들이 노력해서 그런 유전자를 갖게 된 것이라 할 수는 없다.
또 연구에서는 산소 저장고의 역할을 하는 비장의 크기를 비교했는데 해녀 분 아니라 제주 여성의 비장이 서울 여성보다 컸다. 비장은 고래 등의 해양포유류가 물속 생활에 적응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기로 알려져 있다.
또 이완기 혈압이 서울 여성 < 제주 여성 < 해녀 순으로 높았는데 이런 결과는 유전적 차이에 의한 것임이 확인되었고 잠수 환경에서 유리하며 특히 임신 중 고혈압 합병증을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연구에선 1,200년 전부터 이런 선택압이 있었다고 하는데 역사 기록이 없어 해녀의 기원을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어 정말 그때부터 제주에선 여자들이 잠수를 했는지 증명할 방법은 없다.
결과적으로 해녀가 가진 잠수 능력은 상당 부분 유전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지만 외국인의 시선, 특히 CNN기사처럼 마치 아바타의 물 종족(멧케이나)과 같이 해녀 집단 전체가 일반인과 전혀 다른 유전자를 이어받은 것은 아니고 오히려 체질이 아닌 해녀가 더 많았으며 그들은 그냥 정신력으로 버티고 수련해 온 것이다.
그중에는 애순이처럼 공부를 잘하든가 집안이 부자든가 다른 대안이 있어 물질을 하지 않거나 타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형편이라도 도저히 물에서 견딜 수 없어 포기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우리 앞집에 돌아가신 할머니도 생전에 자기는 바당이 맞지 않아 해녀를 안 했다고 하셨다.
해녀의 유전적 특성은 이런 선택이 오랜 세월 반복되며 비교적 적응을 잘한 사람들의 자손이 비슷한 지역에 거주하며 대대로 물질을 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것이며 그 과정에 많은 사람들의 인내와 고통이 한데 버무려져 있는 것이다.
드라마 속 광례는 아마도 전라도 출신이었던 것 같고 체질적으로 물질이 맞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런데도 악착같이 상군이 될 정도로 잠수를 했으니 병에 걸릴 만도 했다. 과학적 지식은 없어도 경험적으로 그런 사실들을 아는 광례가 자기를 닮은 딸에겐 절대 물질을 시킬 수 없었던 것일까?
https://youtube.com/shorts/ZNP2qiXVHdo?si=q9NvjTJavdg4Vzd3
*잠수병은 스쿠버 다이빙을 하며 수중에서 호흡을 할 때 체내 압력 변화로 질소가 혈관에 녹아 생기는 것인데 상대적으로 숨을 참는 프리다이버는 잘 걸리지 않는다. 다만 해녀는 수없이 잠수를 빠르게 반복하고 오랫동안 하다 보니 잠수병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한다.
관련 논문 : https://www.cell.com/cell-reports/fulltext/S2211-1247(25)00348-1
관련 기사: https://edition.cnn.com/2025/05/07/science/haenyeo-south-korea-divers-evolu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