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검둥이 훈련기
바다에 사는 생물에 관심이 많다고 해도 먹는 분야는 잘 모른다.
생선회를 잘 먹긴 하지만 몇 가지 자주 접하는 것 외에는 회 떠놓은 것을 보고 생선 이름을 맞추거나 맛과 식감으로 구분하는 것도 자신 없다.
돌돔은 모둠회에 몇 점 섞인 것을 먹어본 것 같긴 한데 어떤 식감과 맛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난 돌돔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특별한 기억을 갖고 있다.
물고기 지능에 대한 프로그램 기획을 하던 중 예전에 "SBS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본 물고기 조련사 이야기가 떠올라 유튜브에서 검색해 보았다. 집에서 기르는 물고기를 훈련시켜 고리를 통과하거나 지시하는 방향대로 움직이게 하는 최의봉 씨에 대한 이야기였다. 생각해 보면 물고기를 조련한다는 행위보다 물고기가 훈련이 된다는 것이 더 놀라운 일 아닌가? 물론 나도 물고기를 많이 길러 봐서 물고기가 먹이를 주는 사람을 잘 따른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복잡한 행동을 이해하고 수행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수소문 끝에 겨우 연락처를 알아내서 의봉 씨를 만났다. 이제 더 이상 물고기는 기르지 않고 파충류만 키운다고 하였으나 방송의 취지를 설명하고 출연을 약속받았다. 그리고 훈련에 적합한 어종으로 돌돔을 선정했다. 이미 길들여진 관상어가 기르기도 쉽고 훈련도 잘 될 수 있었지만 특정한 개체가 아니라 무작위로 고른 실험 대상이어야 물고기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깨기에 더 좋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횟감으로 인식했던 물고기가 알고 보니 이렇게 똑똑한 존재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훨씬 극적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린 부산 다대포 수산 재래시장으로 갔다. 이왕이면 더 열악한 곳에서 돌돔을 데려오려고 한 것이다.
물고기들은 큰 수조가 아닌 좌판 형태의 작고 낮은 수조에 담겨 있었다.
다행히도 손바닥 크기의 작은 돌돔들이 꽤 많았다. 아마도 양식산 중 상품 가치가 크지 않은 것들이 공급되는 것 같았다. 자연산이라면 금지 체장에 걸릴 수도 있는 크기였다.
의봉 씨는 경험적으로 건강한 돌돔을 볼 줄 알았다. 그중 지느러미가 깨끗하고 몸에 상처가 적고 줄무늬가 검고 체색이 어두운 것을 골랐다. 물고기들은 상태에 따라 색이 변한다.
2주 후 돌돔은 흰검둥이란 이름도 생겼다. 의봉 씨의 쌍둥이 아들 서준, 서진이가 각각 검둥이와 흰둥이로 부르자고 한 것을 절충한 이름이다. 흰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있으니 아주 직관적인 작명이었다.
그 사이 흰검둥이는 의봉 씨 바라기가 되어 있었다. 오로지 의봉 씨만 바라보며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모든 동물 훈련의 기본은 훈련사에게 집중시키는 것이다.
특히 의봉 씨는 흰검둥이가 의봉 씨의 손을 보도록 했다. 먹이가 손에서 나오니 당연하긴 하다.
수조 아래의 한쪽 귀퉁이로 오게 하는 것이 훈련의 시작이었다. 손을 움직여 따라오게 하고 그곳에서 출발해서 다른 곳까지 잘 따라오면 사료를 주었다. 그리고 돌돔의 이동 경로에 링을 설치하니 자연스럽게 링을 통과했다. 몇 번 성공 후 링의 개수를 늘리거나 각도를 바꾸었다.
시장에서 사 온 지 단 2주 만이다.
단순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똑똑하다는 개나 돌고래, 원숭이도 이렇게 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한 달 후 본모습은 더 놀라웠다. 이제 링의 위치나 개수는 큰 의미가 없을 정도였다. 더 신기했던 것은 손을 따라다니는 정도가 아니라 멀리 떨어져서 손가락으로 방향을 지시하거나 빙글빙글 도는 동작을 하면 그대로 한다는 것이었다.
난 욕심이 생겨 흰검둥이가 시각 정보를 얼마나 잘 파악하는지 실험해보고 싶었다. 만 원 지폐와 오만 원 지폐를 구분하도록 하는 것도 생각해 보았으나 너무 말초적인 느낌이라 탁구공의 색을 구분해서 주둥이로 치도록 해보니 쉽게 성공했다.
시간이 많았다면 더 장기간 키우면서 다양한 실험을 해보고 싶었으나 흰검둥이 에피소드는 이 정도로 충분했고 의봉 씨도 언제까지 이 일에 참여할 순 없었다.
방송이 나가고 몇 개월 후 흰검둥이를 바다에 방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조에 이상이 생겨서 계속 키우기 어려웠다고 했다. 사실 돌돔을 수조에서 계속 사육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돌돔도 견디기 힘들다. 돌돔은 깊고 거친 바다에서 게나 성게, 홍합 같은 먹이를 사냥해 먹으며 7, 80cm까지 성장한다.
바다로 돌아간 흰검둥이가 낚시꾼의 미끼를 호의로 생각해서 물고 나오지 않았기만을 바란다.
흰검둥이가 보여준 모습은 물고기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일반적으로 먹이를 주면 다가온다는 아주 단순한 기계적 반응이 물고기의 한계라고 생각하지만 특정한 사람을 기억하고 그 사람을 따르는 흰검둥이의 모습을 통해 물고기가 사람과 교감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손동작과 링 또는 공의 상관관계를 이해하려면 시각 의미를 추론하는 분석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보면 물고기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다른 대상을 보고 그에 대한 판단을 해서 적절한 반응을 하는 지적 체계를 갖췄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아마 물속에서 다른 생물이나 같은 돌돔들을 만났을 때도 '쟤는 나와 친한 친구, 저 물고기는 나와 상관없는 존재, 저 녀석은 나를 괴롭히거나 해치는 놈' 등을 알고 그에 맞게 대응하리다.
https://youtu.be/lWrEo00N7cw?si=vAPYxgsY6sbsIFg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