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틀렸다
도널드 트럼프가 성별은 여성과 남성밖에 없다고 했지만 사회학적으로는 물론이고 생물학적으로도 성에는 다양성이 존재한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성이 생긴 이유는 번식의 효율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생물은 DNA 보전을 목표로 하며 자신이 지금 상태 그대로 영속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손을 통해 유전자를 이어나가려고 한다. 종이 다양하고 종마다 생태가 다른 만큼 생식 방법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놀래기과Labridae 물고기들은 어릴 땐 모두 암컷이었다가 자라면서 무리에서 가장 큰 암컷이 수컷으로 성전환한다. 혹돔 요리코도 지금은 수컷이지만 아라카와 히로유키 할아버지와 처음 만났을 땐 암컷이었다.
성전환하는 물고기는 약 500종 정도로 알려져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 니모는 우리나라에 사는 흰동가리Amphiprion clarkii와 같은 속의 크라운피시 중 퍼큘러크라운 Amphiprion percula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영화는 알을 지키다가 엄마가 포악한 바라쿠다에게 잡아 먹히고 아빠 말린 혼자 니모를 애지중지 키우던 중 니모가 사람에게 잡혀가자 말린이 우연히 알게 된 친구 도리(블루탱Paracanthurus hepatus)와 함께 아들을 찾으러 가는 모험담이다.
그런데 사실 이 이야기가 실제 상황에서 일어났다면 아빠 말린은 더 이상 아빠가 아닌 엄마가 되었을 수도 있다. 크라운피시류는 놀래기류와 반대로 암컷이 무리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며 암컷이 사라진 경우 무리 중 가장 지배적인 수컷이 암컷으로 성전환한다. 물론 니모에겐 여전히 아빠겠지만 남성이 아닌 여성 아빠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제주 바다에서 종종 만나는 갯민숭달팽이라는 연체동물이 있다. 이름 그대로 육상에 사는 달팽이와 닮은 친척이다. 달팽이가 그렇듯 갯민숭달팽이 역시 대부분 자웅동체다. 복족류(배로 기어다니는 연체동물) 중 넓은 범위에서 바다달팽이sea slug(Heterobranchia)라고 부르는 부류의 특징 중 하나다. 제주나 섬 지방에서 종종 먹기도 하는 군소 역시 마찬가지다.
생식 방법은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내게 그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자주 들킨 것은 파란갯민숭달팽이와 군소류이다. 파란갯민숭달팽이는 서로 마주치면 매우 높은 확률로 짝짓기를 한다. 그들의 짝짓기를 보고 싶다면 두 마리 이상을 수조에 넣어두면 된다.
이들의 생식공(구멍 형태의 생식기)은 오른쪽 옆구리 중간에 있는데 평소엔 잘 안 보이지만 짝을 만나면 부풀어 올라 튜브 모양이 된다. 쌍을 이룬 갯민숭달팽이는 서로 머리와 꼬리를 반대 방향으로 하여 생식공을 맞대고 서로 정자를 상대에게 전달한다.
군소도 자웅동체인데 교미의 형태는 차이가 있다. 생식기의 위치와 형태도 갯민숭달팽이류와 다르다. 군소는 한 쌍이 서로 정자를 맞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주입하여 암수 역할이 생긴다. 그런데 더 특이한 것은 한쪽으론 다른 군소에게 정자를 주입하는 수컷이면서 또 다른 군소로부터 정자를 받아들이는 암컷 역할도 한다. 그래서 군소의 짝짓기는 두 마리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기차놀이 하듯 여러 마리가 앞 뒤로 길게 연결된 모습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외에도 다른 여러 동물에서 성 역할이란 그저 자손을 만들어 DNA를 보전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이며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종에 따라 또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는 아주 많다. 그러므로 그런 생물의 속성과 진화 과정을 통해 우리 인간 또한 다양한 성정체성을 내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