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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숨어라 집게발 보일라

위장의 달인

by 깅이와 바당

이들은 해조류뿐 아니라 모래나 작은 자갈, 해면, 히드라, 기타 작은 다른 생물까지도 마구 붙여버린다. 그래서 납작하게 엎드려 꼼작하지 않고 있으면 찾아내기가 아주 힘들다.



동물계에서 위장술은 대표적인 생존 전략이다. 강한 포식자는 사냥감에 몰래 다가가거나 매복하기 위해서, 약자는 포식자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몸을 숨겨야 한다.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먹고 먹히는 관계를 도식으로 표현한 먹이 피라미드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삼각형 맨 아래에는 생산자인 초목이 있고 그 위로 초식동물, 작은 육식동물, 대형 포식동물 순으로 올라가며 점점 수가 적어지는 구조다. 그런데 바다와 육상은 조금 차이가 있다. 초식 동물인 소는 아무리 몸집이 커도 작은 토끼나 고양이를 잡아먹지 않으나 바다에 사는 것들은 입에 들어오는 크기면 모두 먹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10cm 멸치가 5mm의 어린 다랑어(참치)를 잡아먹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이 바다다. 이렇게 복잡하게 먹고 먹히는 관계는 피라미드가 아닌 먹이 그물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바다엔 유독 위장의 달인들이 많다. 잘 알려졌다시피 대표선수는 문어다. 두족류들이 대체로 그렇지만 오징어처럼 떠 다니지 않고 바닥에 붙어사는 문어는 훨씬 더 숨기에 유리하다. 문어는 색은 물론 피부의 질감까지 주변과 비슷하게 바꿀 수 있다. 문어의 위장술은 자신을 위협하는 포식자와 먹잇감 모두를 속일 수 있다. 문어가 좋아하는 먹이 중 하나가 바로 게인데 웬만한 게는 문어의 눈에 띄면 살아남기 힘들다.

문어 위장.jpg 보통 돌문어라고 불리는 참문어Octopus vulgaris의 보호색

문어 외에도 게를 좋아하는 포식자는 아주 많다. 게 가운데는 단단한 갑각과 강한 집게발로 맞서는 녀석들도 있지만 반대로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숨어 사는 쪽을 선택한 게 들도 있다. 특히 뿔맞이게과Epialtidae에 속하는 게 들 중 위장과 변신술에 뛰어난 종들이 많다.

가뜩이나 비슷비슷해서 구분이 어려운 데다가 무언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는 게를 동정(종을 특정하는 것) 하기는 매우 어렵다. 물론 아직 내 공부가 부족한 탓이 크다.

해조류로 위장한 뿔물맞이게류

그중에는 해조류로 위장하는 게가 많은데 어떤 종은 한 두 가닥만 붙이고 다니기도 하고 또 어떤 종은 온몸을 해조류로 덮고 있기도 하다. 해조류로 위장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물살에 움직이듯 몸을 흔들 흔들며 걷는 재미있는 모습을 촬영하기도 했다.

입술이마누덕게-1.jpg 모습을 드러낸 입술이마누덕옷게
입술이마 히드라.jpg 독이 있는 히드라를 붙였다

위장하는 게 가운데 제주 조간대에서 흔히 보이는 것이 입술이마누덕옷게Micippa platipes이다. 비슷한 모습의 꼬마누덕옷게M. philyra도 있다. 온몸에 덕지덕지 주변의 물체들을 가져다 붙인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지어 준 모양이다. 이들은 해조류뿐 아니라 모래나 작은 자갈, 해면, 히드라, 기타 작은 다른 생물까지도 마구 붙여버린다. 그래서 납작하게 엎드려 꼼작하지 않고 있으면 찾아내기가 아주 힘들다. 덕분에 바닷가 체험객들은 누덕옷게를 발견하면 횡재한 듯 기뻐하고 신기해한다.

입술이마누덕게 등털.jpg 밸크로 형태의 등털
입술이마누덕게 위장.jpg 해조류를 붙이고 있는 입술이마누덕옷게

관찰해 보니 이들의 등에는 찍찍이라고 부르는 밸크로처럼 끝이 지팡이 손잡이처럼 구부러진 털이 나있다.

그래서 무언가를 올려놓으면 턱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누덕옷게들은 늘 먹기에 바쁜 다른 게들과 달리 하루종일 몸을 가꾸는데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입술이마짝.jpg 손을 마주 잡고 짝짓기 중

우리 눈에는 이들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같은 누덕옷게끼리는 알아보는 모양이다. 운 좋게도 짝을 만나 짝짓기 하는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는데 수중촬영을 하다가 물 밖에 카메라를 세팅하고 촬영할 수 있을 정도로 꼼짝하지 않고 오랫동안 서로 부둥켜안은 채 사랑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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