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카와 할아버지와 혹돔 요리코
요리코의 길이는 1미터 정도로 다른 혹돔들 가운데 가장 큰 녀석과 차이가 많이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젊은 수컷과는 다른 위엄이 느껴졌다.
할아버지가 위로 올라가 소라 껍데기에 든 집게를 요리코에게 보여주고 내려오자 서서히 할아버지를 따라 내려왔다. 가까이서 본 요리코는 범상치 않은 용모를 갖고 있었다. 온몸에는 40여 년의 연륜과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고 크고 깊은 눈은 웬만한 사람에게서도 느끼기 힘든 위압감을 주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에겐 그저 귀여운 자식 같이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요리코는 밥을 보채는 강아지처럼 할아버지의 손을 향해 입질을 했고 할아버지는 가볍게 밀어내며 장난을 쳤다. 할아버지가 툭 튀어나온 이마의 혹을 쓰다듬자 보기와 다르게 말캉한 혹이 찌그러지며 흔들리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요리코는 과연 할아버지를 알아보고 다가오는 것일까? 임주백박사님이 먹이를 들고 할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해 보았다. 처음엔 경계하던 요리코가 다가오기는 했으나 할아버지에게 하는 것과 달리 상당히 공격적으로 먹이만 채가려고 하고 만지려고 하면 몸을 빠르게 움직여 빠져나갔다.
할아버지는 요리코가 자신을 특별하게 여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이빙벨로 가서 요리코를 불렀다. 다이빙벨은 내부가 보이는 투명한 재질의 플라스틱으로 만든 돔 형태의 구조물인데 그 안에 공기를 넣어 잠시 호흡기를 벗고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요리코가 다이빙벨 아래로 오자 할아버지는 요리코를 끌어안고 공기 중으로 들어 올렸다. 그런데도 요리코는 요동치거나 거부하지 않고 한동안 할아버지에게 안겨있었다. 해석은 다양할 수 있겠으나 이것은 분명 둘 사이에 특별한 유대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는데 일행 모두 동의했다.
돌아오는 배 위에서 아라카와 히로유키 할아버지와 인터뷰를 했다. 요리코와의 인연 그리고 요리코가 자신을 알아보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40여 년 전 이곳의 대장 수컷 혹돔이 도전자에게 패배한 후 떠나버리고 새로운 대장이 된 수컷이 어린 암컷인 요리코를 괴롭혀 요리코에게만 먹이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요리코가 커져 수컷으로 성전환을 했지만 그동안 불러온 요리코라는 이름을 바꾸진 않았습니다. 지금은 또 다른 수컷이 대장 노릇을 하지만 요리코는 여전히 같이 살고 있습니다."
"요리코는 분명 나를 알아보고 오는 것입니다. 곱셈 나눗셈은 할 수 없지만 이 사람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안심하는 것입니다."
가끔 궁금해서 요리코나 할아버지 관련 기사를 찾아보지만 그때 이후 별다른 소식은 없다. 요리코는 아직 건재한지 고령인 할아버지는 건강하신지 궁금하다.
https://youtu.be/8LaB2wllDb4?si=OvyTWCaGnoaHMKR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