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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부와 물고기의 43년 우정-1

아라카와 할아버지와 혹돔 요리코

by 깅이와 바당

그때 할아버지가 손가락을 들어 위를 가리켰다.

우리 머리 위로 시커먼 물고기 그림자가 나타났다.




물고기도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사람과 교감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물고기가 특정한 사람을 알아볼 수나 있을까? 물고기는 아무 생각 없이 물속을 왔다 갔다 하며 아무거나 먹다가 낚시에 걸리는 하등 동물로 여기는 사람이 많겠지만 난 취재과정을 통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타테야마.jpg 지바현 타테야마 바닷가, 건너편이 동경 방향

일본 지바현 타테야마시 바다의 하사마 수중공원을 운영하는 아라카와 히로유키 할아버지(현재 87세)는 요리코라는 혹돔Semicossyphus reticulatus과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아라카와2.jpg 아라카와 히로유키 할아버지, 내가 95년도 다이빙을 시작할 때 썼던 것과 같은 수경을 사용하고 있었다.

2022년 촬영 당시 할아버지는 84세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젊고 건강해 보였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하루 3번 정도 다이빙 손님들과 함께 물에 들어간다고 했다. 연안에서 약 500m쯤 떨어진 다이빙 포인트에 보트가 도착하자 할아버지는 일행에게 준비되었는지 묻곤 바다로 뛰어들었다. 빨리 가라앉기 위해 맨몸으로 수영하듯 머리부터 뛰어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다이빙이 일상인 사람들이나 가능한 것이다.


벵에.jpg 할아버지를 둘러싼 긴꼬리벵에돔Girella punctata

급히 따라 들어가니 할아버지는 바닥까지 연결된 가이드라인을 붙잡고 내려가고 있었다. 벌써 할아버지 주변엔 물고기 떼가 마치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었는데 대부분 엄청난 크기의 긴꼬리벵에돔이었다. 웬만한 낚시꾼은 구경도 못할 크기였으니 바다 낚시꾼들이 보면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다이빙벨.jpg 다이빙벨 아래 모인 물고기와 뒤편에 보이는 철제문 그리고 할아버지 앞 구실우럭(바리과)Epinephelus chlorostigma

바닥까지 수심은 17m로 그리 깊은 곳은 아니었고 평평한 모래 지대와 암초가 섞여 있는 지형이었다. 물속에는 몇 가지 구조물이 보였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철제로 된 커다란 문이었고 거기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투명한 플라스틱 재질의 작은 다이빙벨이 있었다. 할아버지 주변에는 온갖 물고기가 다 몰려들었고 벵에돔 외에도 몇 마리의 크고 작은 혹돔과 감성돔 그리고 몇몇 바리류(그루퍼)와 쥐치도 있었다.

망치질.jpg 기둥을 망치로 두드려 요리코를 부르는 할아버지

혹돔 중엔 거의 1m 정도 되는 것도 있어 요리코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할아버지는 이내 다른 곳으로 움직였고 따라가 보니 제단 같은 곳이 있었다. 나중에 뭍에 나와 물어보니 그곳은 주변 절에서 만든 물속의 신사였고 철제 문도 신사 입구에 있는 문 모양이었다. 할아버지는 절의 승려를 대신해 물속 제사를 대행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했다. 그곳에서도 요리코가 보이지 않자 다시 철제문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는 망치를 꺼내 문 기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쾅쾅쾅 소리는 물속에서 멀리 퍼져나갔다.

요리코2.jpg 요리코와 할아버지의 조우

난 이대로 주인공 요리코도 못 보고 물에서 나가야 되나 싶어 초조해졌다. 다음 날은 풍랑이 예고되어 있어 무조건 그날 촬영을 성공해야만 했다. 할아버지도 걱정되는지 망치질을 열심히 하며 주변을 살피던 그때 할아버지가 손가락을 들어 위를 가리켰다. 우리 머리 위로 시커먼 물고기 그림자가 나타났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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