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만나지 말자!!!!!!
코로나의 시절이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코비드 바이러스.
여러 이름으로 불렸지만,
우리에겐 그냥 ’ 코로나‘라는 말이 가장 익숙했다.
그때 우리는 모두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유럽이나 미주에서는
마스크를 쓰는 동양인을 이상하게 보기도 했고,
심지어 폭행을 당한 동양인들도 있었다.
코로나가 중국에서 발생했다는 이유로..
회사는 곧바로 공지를 내렸다.
“승무원은 레이오버시 방역에 각별히 주의할 것.”
“레이오버시 외출을 자제할 것. “
그리고 해외 각 지점의 비상 연락망을 공유했다.
전 세계 사람들을 매일같이 만나는
우리 승무원들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는 단순한 전염병이 아니었다.
공포 그 자체였다.
공항은 텅 비어 있었다.
출국장은 고요했고,
기내는 마치 멈춘 세상 같았다
300명이 타는
비행기에는 단 스무 명만 탑승했고
비즈니스 석은 좌석 간 거리가 넓다는 이유로
연일 만석이었다.
일부 국가에서는
승무원을 격리시키거나
감금(?)해 놓기도 했다.
호텔에 가둬놓고 문 앞에 밥을 가져다주고
직원은 줄행랑을 치는 나라도 있었다.
우리는 방역복을 입고,
고글을 썼고,
마스크 위에 마스크를 덧댔다.
어떤 날은
비행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기 전,
회사 헬스장에서 샤워를 하고 들어간 적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기기 싫어서.
비행이 없던 시절,
승무원들은 돌아가며 몇 달씩 쉬어야 했다.
어쩌면
“잠시 쉬는 것도 좋겠다”는 말로 위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누군가의 말일뿐.
자취하던 후배들은
월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자
서울 생활을 접고 본가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방에서 출퇴근을 시작했다.
생각해 보라.
천안에서,
청주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일상을.
새벽같이 나와
두 시간 넘게 이동해
비행 준비를 하고,
밤늦게 다시 두 시간 넘게 돌아가는 삶을.
그게 하루, 이틀이 아니라
몇 달이고 계속된다면?
그 시절,
우리 모두는
자기 방식대로
견디고 있었다.
버티고, 참으며, 조용히.
항공업은 수많은 바이러스들을 지나쳐 왔다.
SARS도 있었고, 신종플루와 메르스도 있었고.
하지만,
이만큼 심했던 적은 없었다.
지금은
“그때 그랬지”
하며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시절은 분명히
모두에게 폭력적이었다.
이제 와서야
추억이라는 말로 포장하지만,
그 순간순간은
무서웠고, 외로웠고, 버티는 일이었다.
그런 시절은,
다시는 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