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에이 남대문 사장님 이야기
비행을 하다 보면 알게 된다.
이 지구라는 곳엔 우리 교민이 없는 곳이 없다.
북극에도, 사막에도, 아프리카 오지에도
있을 것만 같다.
어딜 가도 반갑고, 어딜 가도 따뜻한 사람들.
그중에서도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얼굴이 있다.
엘에이 남대문 사장님.
처음 엘에이 비행을 갔을 때였다.
열시간남짓의 비행이 끝날 때 즈음
선배님이 물었다
“남대문 갈 거지? “
(그때는 선택지가 없었다.
갈지 말지 물어보는 게 아니다.
가야 한다고 명령하는 것이다. 답정너!!)
순간 나는 동. 공. 지. 진.
내 눈은 말했다.
‘여기… 엘에이인데… 남대문이요??’
(나는 진짜 이렇게 생각했다.)
엘에이에 도착하고
한숨 자고 난 뒤
크루 라운지에 모인 우리는
아시아나 택시를 타고
(정식 택시가 아니다. 크루용 택시.
이 이야기도 나중에 써야겠네 ㅎㅎ)
5분쯤 달렸을까.
도착한 곳은 우리가 아는 국보 1호 남대문이 아닌,
코리아 타운의 고깃집 ‘남대문’이었다.
그곳은 그냥 고깃집이 아니었다.
미국 소고기가 수입되기 전,
비행 다니던 우리들에게나 출장 다니던 한인들에게
비싸디 비싼 소고기를
싸고, 맛있고,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는 성지였다.
그런데 남대문이 나에게 더 특별했던 이유는,
그 음식의 맛도, 상차림도 아니었다.
바로 그곳의 주인, 사. 장. 님 때문이었다.
메뉴판에도 없는 ‘아시아나 세트’는
우리가 도착하면 말도 없이 자연스럽게 차려졌다.
당연한 듯
테이블 위 빈틈없이 깔리는 반찬,
쌓이고 또 쌓이는 고기.
주류 포함 음료는 무료였다.
그때 나는 막내였는데
막내 특권으로 20불도 안 되는 가격에
고기를 진짜, 진짜… 배가 찢어지게 먹을 수 있었다.
(선배님들은 22-3불 정도 냈을까
당사 환율을 감안하면 말도 안 되는 가격이지!!)
명절이 다가오면
사장님은 허니파우더, 할라피뇨 장아찌 같은 걸
챙겨주셨다.
그때는 한국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조심조심 캐리어에 담아 한국에 가져와
엄마께 드리면
엄마는 그렇게, 그렇게~~~~~!!!!!!!!! 좋아하셨다.
그 작은 통 하나에 담긴 사장님의 정이
참 고맙고 따뜻했다.
그리고 사장님은 늘 말했다.
“엘에이 혼자 돌아다니지 마.
언제든, 몇 시든, 몇 명이든, 배고프면 전화해.
혼자라도 상관없어,
어디든 데리러 갈게. 절대 혼자 다니지 마.
여긴 돌아다니면 위험해!!!! “
한인 폭동을 겪었던 사장님은
우리를 늘 걱정하셨고
언제나
할머니 같고, 엄마 같고, 친구 같았다.
그 따뜻하고 포근한 얼굴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막내시절 비행에 익숙지 않아
비행 내내
어리바리, 허둥지둥, 왔다 갔다.
혼나고 또 혼나고…
결국
화장실에서 거울도 닦고
내 눈물도 닦던 그때.
그러다 엘에이에 도착해
호텔방에 들어오자마자
그대로 뻗어 잠들고,
그러다 벌떡 일어나 달려 나가
사장님 된찌맛에 위로받던 그 시절.
그러다 우리 레이오버 호텔이
코리아타운에서 떨어진 곳으로 바뀌고
남대문은 우리 일상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지면서…
그곳은 우리 모두의 기억 속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엘에이 비행 중 누군가 말했다.
“남대문 가고 싶다.”
그러자 누군가 대답했다.
“이제 없어졌어.”
또 다른 누군가는 말했다.
“여자 사장님 돌아가셨대.”
그 순간,
갑자기 심장에서 쿵 소리가 난 것 같았다.
눈물이 쏟아진 건 아니었지만,
그저 가슴 한켠이 ‘푹’ 꺼져버린 느낌.
내 추억 속 그 따뜻한 공간,
이제는 정말 더는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그 사실이,
생각보다 훨씬 더 아프게 다가왔다.
사장님.
그날의 고깃집,
그날의 된장찌개,
그날의 웃음소리.
이제는 경험할 수 없는 그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