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컴플레인받던 날

어리석었던 나 자신을 돌아봅니다.

by Marie Kim

잊지 못할 첫 컴플레인


아무리 성실하고 우수한 승무원이라도,

때로는 손님의 불만을 피할 수 없다.

이유가 어찌 됐든, 우리가 응대하는 수많은 사람 중

단 한 명이라도 불쾌함을 느낀다면 그건 우리 몫의

책임이 된다.


나는 내 이름으로 처음 컴플레인을 받던 그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비행 경력 2~3년 차 즈음.

더 이상 주니어가 아니라는 자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고,

업무에는 익숙해졌지만 마음은 교만해져 있었다.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로

나는 마치 내가 기내의 주인인 양 굴었다.

자신감과 오만함은 한 끗 차이였고,

나는 그 경계선을 넘고 있었다.


그날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이었다.

피곤함이 누적됐고,

여러 상황들이 겹치며 내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문제는,

그런 감정이 고스란히 내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는 것이다.


손님들은 예민하다.

특히 긴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에서의 손님들은 더욱더.


열두 시간의 비행... 후반을 넘기고

한국에 다다를 때쯤이었다.

한 손님은 내게 서류 작성을 위해

펜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 손님은 내가 펜을 드리고 뒤돌아서자

내 뒤에 있던 후배에게 말했다.


“저 승무원 표정이 너무 안 좋네요.

제가 뭐 잘못했나요?

뭐 하나 부탁하기 무서울 정도네요.”


그 말은 핫컴플레인으로 접수되었고,

곧바로 나에게 전달되었다. 순간 멍해졌다.

억울함보다 먼저 밀려온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나는 정말 손님에게 불편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분의 말 한마디는 마치 따귀처럼 나를 깨웠다.


비행 후 귀가하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

내가 비행기에 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물론 안전이 최우선이지만,

동시에 여행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는 사람으로서

승객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 또한 중요한 나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

내 감정에 휘둘려 가장 중요한 본분을 망각했다.

감정 조절도 서비스의 일환임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건 이후 나는 마음가짐을 다잡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승객의 입장에서,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태도.

그건 교육으로만 길러지지 않는다는 걸,

그날 처음으로 뼈저리게 배웠다.


지금도 때때로 그날의 나를 떠올린다.

그리고 다짐한다.

오늘은, 오늘만큼은 내 표정이 누군가에게

편안함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지금도 그날의 나를 떠올릴 때면 마음 한켠이

저릿하다.

그때의 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만 가득했고,

‘사람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려는

마음은 놓치고 있었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그저 유니폼을 입고

기내를 걷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여행의 시작과 끝에 함께하며,

기대와 불안을 함께 껴안아주는 존재였다.

내가 전하는 미소 하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어떤 이에게는 여행의 가장 소중한 기억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 때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 일을 통해

더 나은 승무원이자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단지 능숙한 업무자가 아니라,

타인의 감정을 헤아릴 줄 알고,

따뜻함을 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시간이 흐르고 경력이 쌓여도,


그 마음만은 처음처럼, 진심으로.


비지니스 클래스에서 웰컴 드링크 서비스 하고 웃으며 들어오는 나.ㅎㅎ눈은 왜 감았냐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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