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낙지

by butapples

촘촘한 초록 그물 사이로 느껴지는 새파란 하늘은 청량했고 그 사이 사이 구름들은 달콤한 맛을 내며 나에게 스며들었다. 그와 동시에 뜨거운 산소가 나를 처음 맞이 해주었다.


점점 스며드는 산소와 함께 나는 “살아있음”과 “죽어감”이라는 윤회적 고리 그 어디쯤에 있는 부정확한 경계를 경험 할 수 있었다.


의식은 희미해지고 나를 둘러싼것은 차디찬 쇳덩이와 플라스틱 뿐이었다. 나는 그 부정확한 경계를 온몸으로 느끼며 몸부림쳤다. 뜨거운 산소가 점점 익숙해 질 때쯤 차디찬 쇳덩이는 나를 도륙내기 시작했고 나는 잘게 잘게 조각났다. 나는 수많은 나를 맞이했고 다같이 하이얀 그릇위에 올랐다.


나는 이 부정확한 경계, 그니까 이 세상에 더 머물고 싶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물과 기름 같이 절대 섞일 수 없을것만 같은 희망과 미련, 기쁨과 슬픔, 사랑과 이별 같은 이유들이 섞여있었다. 그러기에 나는 하이얀 그릇의 깊은 곳으로, 더 깊은 곳으로, 더욱 더 깊은 곳으로 몸부리쳐 나아갔고, 나의 다른 조각들로 나를 덮기 시작했다.


그저 잠시만이라도 더 이 세상에 머물기 위한 최초의 저항이였다.


그렇게 세상이 스며들때쯤 나의 겉조각들은 쇳덩이에 잡혀 저울질 당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 둘씩 나의 겉조각들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는 내 자신이 무너지고있음을 느끼며 다시 한번 최후의 뜨거운 산소를 들이마셨다. 정말 따가웠지만 그와 동시에 정말 시원했다. 그렇게 내 세상 가장 깊은 곳에서 세상을 들이마시던 나는 차디찬 쇳덩이에 잡혀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곳으로 도약되었다.


언제든 경계의 시간은 불안하고 역설스럽다. 마치 섞일 수 없는 것들이 다같이 공존한다. 하지만 그 경계 넘어 그 공간은 무엇이든 분명 모든것의 공존으로부터 오는 것에 “해방“, 즉 ”자유“가 가득한 온전한 “나”의 공간일 것이다.


24.03.01 butapples.


이 글을 찾았을 때 꽤나 오래 전에 썼던 글처럼 느껴졌는데, 사실 그렇게 오래 된 글은 아니였다. 아마 이 글을 쓰고 난 뒤 보낸 시간의 밀도가 빽빽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이때만큼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사실이라고 몸소 느껴졌다. 이 글은 아마 내가 처음으로 머릿속에만 머물던 상상을 언어로 표현한 첫 글일 것이다. 그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초등학교때만 해도 산낙지가 산에서 나는 낙지인 줄 알았다. 정말 순수하다고 해야할지 어리숙하다고 해야할 지 모르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하늘에 가장 가까워질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