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가 회사 다닐 수 있나요?
대학 시절 나는 아웃사이더였다. 어떤 동아리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학과 생활도 하지 않았으며 당연히 학과 내 학회 같은 것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다행히 고등학교 때 친구가 같은 과에 있어 둘이 붙어 다녔다. 고등학교 때에는 말도 섞어본 적 없었던, 별로 친하지 않았던 친구와 우연찮게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입학해 둘 다 학교 적응에 실패해 같이 다녔다. 지방에서 상경해 서울도, 학교도 낯설었던 우리는 1학년 내내 둘이서만 놀았다. 우리의 대화 소재는 대부분 “서울 애들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유머에 일가견이 있는 내 기준(당시의 내가 건방지게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다)에 전혀 웃기지도 않는 교수의 농담에도 아이들은 자지러지게 웃었고, 한물 간 <개콘>에도 안 나올 농담에도 동기들은 박장대소했다. 나는 재미도 없고 우울해 죽겠는데 다들 이유 없이 생글거리니까 더 싫었다.
방송에 나왔다는 서울의 유명 떡볶이집은 30분이나 줄 서서 들어갔는데도 끔찍하게 맛이 없었고, 전주에서는 그 정도 솜씨로는 창업의 꿈도 못 꿨을 것 같은 맛없는 식당들에 손님들이 바글바글했다. “아니, 서울 사람들은 이따위 걸 음식이라고 먹으며 산단 말야? 불쌍해!!” 소리가 절로 나왔다. 물론, 동기들 역시 낯선 상황에서 서로 노력하느라 애써 웃으며 분위기를 띄웠다는 것을 깨달았고, 내가 아는 게 없어 맛없는 집만 찾아다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러니까 나는 노력도 안 하면서 서울이 나를 받아들여주지 않는다고 구름 낀 얼굴을 하고 다니는 전형적인 지방 출신 ‘아싸’였던 셈이다. 어느 날, 종강 후 동기 모임을 한다는 과대의 설명에 빠르게 교실 밖으로 나가려 가방을 싸던 우리에게 한 친구가 와서 말을 걸었다. “송희야, 00야, 종강 모임 올 거야? 너희 그렇게 아웃사이더처럼 겉돌면 안 돼.”
아웃사이더인 너희에게 말을 걸어주는 착하고 멋진 나에 취해있는(내 눈에 그렇게 보였단 거다) 그 아이의 미소 앞에서 우리는 '띠용'했다. 아니, 이런 청소년 드라마에나 나올 것 같은 대사를 이 세계에서 듣게 될 줄이야! 과 동기 중 리더십 있는 그룹의 일원이었던 그 아이는 나름 아싸인 우리를 챙겨준 것인데, 심사가 꽈배기처럼 베베 꼬였던 내 귀에는 아니꼽게만 들렸다. 자기가 뭐라고 우리를 아웃사이더라고 한담? 아웃사이더한테 아웃사이더라고 하니까 더 듣기 싫었다. 이후 우리는 그 아이를 ‘인사이더님’이라고 뒤에서 부르며 비아냥댔다. 동기 모임도 매일 빠지고 학교에 잘 적응도 못했던 나는 4년을 꼬박 채워 졸업했지만 건너 건너 들은 바에 의하면 인사이더님은 1학년이 끝난 후 수능을 다시 봐서 타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마냥 즐거워 보이고 햇살처럼 빛나던 아이에게도 나름의 고민은 있었던 거다. 그 아이는 그걸 티 내지 않고 현재에 최선을 다하며 보냈던 반면 나는 ‘나 우울해, 불행해, 어울리기 싫어’를 온몸으로 발산하며 다녔던 거고.
학교가 그렇게 싫었던 건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던 게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남자 셋 여자 셋> <논스톱>에서는 대학 가면 다들 신나 보이던데 난 왜 재미가 없지? 학과에 적응도 못하는데, 안 친한 동기 2명과 기숙사 방까지 같이 써야 했으니 얼마나 괴로웠겠나. 아, 별로 자랑스러울 것도 없는 아웃사이더 흑역사를 이렇게 길게 설명한 데에는, 이런 사람도 멀쩡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반에서 제일 시끄러운 아이였고,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는 애가 대학에 가서 부적응자로 4년을 지내다 보면 당연히 자존감이 떨어진다. 졸업반이 되자 '취업이 될까'도 걱정이었지만, '취업해서 회사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까'가 더 고민이었다. 친해지라고 판을 깔아주고 같은 수업을 4년 동안 들어야 하는 동기들과도 친해지지 못했는데 그 무섭다는 사회에 나가서 제대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회사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잘 어울리는 것도 곧 능력인데, 내가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직장인이 될 수 있을까. 게다가 아웃사이더로 지내면서 학교 생활은 안 하고 집에 와 주야장천 <섹스 앤 더 시티>만 재방 삼방 했던 탓에 이력서에 '스펙' 한 줄 쓸 것도 마땅치 않은데 과연 취업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신입생 시절과는 또 다른 우울함이 3, 4학년 시절을 짓눌렀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며 나는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겪어보지도 않고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을. 회사라는 것은 다녀보기 전까지는 그 실체를 알 수가 없다. '잡플래닛'이나 '블라인드' 같은 사이트에서 회사에 대해 현직자들이 써 놓은 솔직한 리뷰들을 아무리 정독해도 내가 다녀보기 전까지는 진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천국인 직장이 또 어떤 사람에게는 지옥일 수도 있다. 물론 100이면 100에게 지옥인 직장이 더 많지만. 돈도 주는데 비전도 제시해주고, 업무도 재미있으며, 배울 것도 있고 상사까지 좋은 사람이고 자기 계발까지 할 수 있는 그런 직장은 세상에 없다. 만약 있다면 제보 바란다. 아마도 그곳은 사이비 종교단체일 가능성이 더 높으니까.
대학보다 더 무섭고 싸늘한 곳이 직장일진대, 대학에도 잘 적응하지 못한 내가 과연 직장 생활이라고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겪어보지도 않고 '나 자신을 비하하는 고민'부터 하고 있으니 막상 회사를 다닌다 해도 능력치를 발휘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위축되고 자신감이 없는 상태니 안 하던 실수도 하게 되고, 배우는 속도도 느리고 쭈뼛대다 타이밍을 놓쳐 사수에게 해야 할 질문도 제때 못 한다. 내가 그랬다. 그랬던 사람도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다 보니 다행히 세상 밖으로 내몰리지 않고 10년 동안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그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서, 대학 시절 내가 얼마나 찌질했는지를 소개한 것이다.
대학생 시절이 자신의 진로와 재능을 파악하고 스펙을 쌓아 미래의 직업을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하는데, 나는 회사를 다니며 나에 대해 알아갔다. 그것도 자주 그만두고 이직하고, 또 그만두고 이직하면서. 내가 무엇을 잘하는 지를 알아가는 시간이었으면 좋았으련만, 아쉽게도 ‘내가 못 견디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게 직장이었다. 겪어보기 전까지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반도 모른다. 내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게 무엇인지, 내가 빛을 발하는 것이 어떤 자리이고 어떤 업무인지 동료가, 상사가, 회사 알려주는 것이다. 물론 상사가 “OO 씨, 우리 티타임 좀 가질까? 내가 겪어보니 OO 씨는 이런 걸 잘하는 사람이니 이런 자격증을 따면 향후 업무 스킬을 키우는 데 참 좋겠어? 우리 업계에서 미래 주력 기술이 이것이라고 하니 10년, 20년 후를 위해 이런 걸 배워두면 좋을 것이야. 허허” 하면서 친절하게 알려주는 일 따위는 없다. 내가 잘하는 줄 알고 제출했는데 나쁜 평가를 받고, 해본 적도 없는 것을 머리 싸매고 공부해서 해봤는데 의외로 잘해서 칭찬받으면서. 그럼에도 내가 잘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라 집에 가서 베개에 머리 파묻고 ‘나새끼, 잘하는 게 뭐야? 이래서 밥 벌어먹고 살겠어?’ 자괴감에 죽을 사자를 백만 번 그리면서 차츰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직장생활의 완벽 마스터, 업무 스킬 만렙 따위의 해피엔딩은 은퇴하기 전까지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왜 한국은 주 4일 출근 국가가 아닌가, 왜 일주일은 월월월월토일인가, 회사 그만두고 혼자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매일매일 이런 고민을 하면서, 그래도 좀 더 잘하고 싶다. 내가 일을 못해서 남에게 피해도 주기 싫고, 더 잘해서 좋은 평가도 받고 싶다. 이런 생각 타래들이 복잡하게 얽힌 채로,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다만, 나에 대해 남보다 내가 더 잘 평가하고 있으면 된다. 남이 뭐라고 나쁘게 평가해도 실은 그게 아니란 걸 내가 알고 있으면 되고, 내 능력치보다 운 좋게 좋은 점수를 받더라도 실제 나는 그렇지 않으니 보이는 것만큼 끌어올리려고 노력하면 된다. 내가 나를 정확히 평가하고 있으면 남에게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물론, 그러려면 퇴근하고도 매일 천만번 흔들리며 ‘나’에 대해 울면서 고민해야 하는 초년생의 길고 긴 터널을 지나야 한다. 다만, 그만두지도 포기하지도 죽지도 않고 울면서 계속 달리면 된다. 영화 대사에도 자주 나오는 말이지만, 인생이란 죽지 않고 살아남으면, 어떻게든 풀리게 되어 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송희야, 아웃사이더처럼 이러고 있으면 안 돼”라는 조언을, 선배도 아닌 동기한테 듣던 사람도 지금 멀쩡히 잘 살아서 뭐라도 되는냥 이런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