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내가 잘 맞지 않는 톱니바퀴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톱니가 잘 맞물리지 않아 삐거덕거리고 양쪽 톱니에게 상처를 내는. 물론 나 역시 대한민국의 많은 딸들이 그러하듯 고생하는 엄마를 생각하면 애틋하고, 가족 영화를 보면 눈물부터 질질 흘린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항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엄마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사랑하기에 서로 생각까지 같아야 한다고 우기는 순간, 저런 상투적인 대사를 하면서 악을 쓰게 된다.
우리가 부모님을 바꿀 순 없어
우리 자신만 바꿀 뿐이지
영화 <부모님과 이혼하는 방법> 중에서
<부모님과 이혼하는 방법>의 애니 팽(니콜 키드먼) 역시 심각한 ‘부모 문제’를 껴안고 산다. 행위예술가인 부모 때문에 아홉 살 때부터 ‘아이 A’ 역할에 동원됐던 그녀는 어른이 되어 독립했지만 여전히 부모에게 휘둘린다. 작가인 동생 벡스터는 그녀에게 말한다. “설마 두 분이 별안간 바뀔 거란 착각을 하는 거야? 두 분이 하던 일도 그만두고 딴사람처럼 살 것 같아? 별안간 평범한 부모가 돼서 누나 고민도 해결해주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우리는 두 분을 바꿀 수 없어.”
부모와 나는 서로 너무 다른 사람들이지만 같은 자장 안에 살며 영향을 주고받는다. 가장 힘이 되는 것도 부모지만, 그렇기에 큰 상처를 주는 것도 그들이다. 우리가 서로 다른 사람이고, 대화로 서로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서야 나는 조금 편해졌다. 나는 엄마와 따로 살기 전까지는 엄청나게 싸웠다. 엄마와 싸운다는 것은 엄마와 나, 두 사람의 관계만 망가트리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사람에게도 심한 상흔을 남긴다. 다른 사람에게 들은 욕지거리는 쉽게 잊히지만 부모에게 들은 나에 대한 평가는 절대 잊히지 않는다.
입으로는 “엄마는 나에 대해 몰라, 엄마가 뭘 안다고 그래?”라고 하지만, 실은 그 속으로 나를 낳았고 평생 봐왔기에 엄마가 나를 잘 알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나를 저렇게 평가한다니, 실제 나는 그렇게 별로인 인간일지 몰라’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만다. 마음만 상처 받는 게 아니라 이성에도 심각한 브레이크가 걸려버린다.
고3 때 친구에게 크게 사기를 당한 적이 있었다. 엄마도 아는 유치원 동창이었다. 당연히 나는 엄마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서 ‘수빈이에게 이런 일을 당했다’고 일렀다. 그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얼마나 멍청하면 친구한테 그런 짓을 당하냐. 당할 만 했네. 했어.”
친구에게 받은 상처보다 엄마의 그 말이 나를 더 심하게 할퀴었다. 그 친구가 잘못한 게 아니라 당한 내가 멍청했던 거구나. 나는 당해도 싼 멍청한 인간이구나. 자기 자신에 대한 기준이 서기 이전에 귀로 듣는 부모의 말은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준다. 그리고 이후에 그 말들을 극복한 이후에도 상처는 치유하기 어렵다.
사랑하지만, 내 생각에 그들을 끼워 맞출 수 없고 나 역시 그들의 기준에 맞춰 살 수 없다. 물론 나의 부모님은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글도 내 부모님이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많이 숨기고, 부모님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은 이후에야 우리의 관계가 많이 좋아졌다. 이 책의 글들을 보고 나 혼자 이겨냈던 내 지난 세월들을 엄마, 아빠가 알게 되는 것을 나는 원치 않는다. 어차피 우리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가 보고 싶은 만큼 이해하고, 사랑하고 싶은 만큼만 사랑한다. 그것이 부모와 우리가 원만히 서로를 오래 사랑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