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아무 계획을 세우지 않게 된 지 10년이 넘었다. 20대에는 일기도 쓰고, 버킷리스트도 1번부터 10번까지 만들곤 했는데. 이젠 다이어리조차 새로 사지 않는다. 계획 세우면 뭐하나, 어차피 안 할 텐데. 다이어리 사는 돈도 아깝다. 가방 무거워서 잘 가지고 다니지도 않는다. 계획을 세우지 않고, 지키지도 못할 자신과의 약속을 하지 않게 되면서 연말 우울감도 짙어졌다. 나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고, 12월 31일의 일상과 1월 1일의 일상이 크게 다르지 않으니 있는 것을 그대로 탄탄하게 잘 지켜나가자, 라고 다짐하는 성숙한 어른이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보다는 ‘에이, 어차피 이번 생은 끝났어’라고 자조나 하며 맥주나 들이키며 어제가 오늘인지 오늘이 내일인지도 모르게 사는 배불뚝이 아저씨가 된 것 같다. (성별이 남자도 아니면서)
애니웨이, 11월부터 1월까지 거의 두달에서 세달여를 우울하게 살다 보면 살도 부쩍 오르고, 일도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이때에는 일감도 줄어서 시간까지 넘쳐난다. 사실 나는 이런 상태가 싫다. 일도 많이 하고 싶고, 앞으로 쭉쭉 나아가고 싶고 무언가 배우고 싶고 나와의 약속도 잘 지키고 싶고 부지런해지고 싶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되니 이런 내 자신이 싫어지고, 그래서 우울해지고 그런 악순환의 무한반복이다. 이게 왜 연말연시마다 반복되는지 생각해 보면 나이가 들수록 주변 풍경이 달라지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그대로인데 주변 친구들의 상황은 많이 달라진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도 한다. 집을 사고 대출금을 갚아나가기 시작하고, 새로운 직업을 갖고 책을 내거나 영화나 드라마 작가로 입봉을 하는 친구도 생겼다. 서른 초입부터 친구들은 앞으로 쭉쭉 나가는데 나만 제자리걸음, 아니 뒷걸음질을 치는 것 같아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것이다.
남과 비교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만큼 초라한 일이 없는데, 그걸 알면서도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자꾸만 비교를 한다. ‘정상인’의 범주에 든 친구들처럼 열심히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할 자신도 없고 노력도 안 하면서 말이다. 1월도 벌써 중반이다. 요즘은 성취감을 주는 일이 집안일 밖에 없어서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열심히 한다. 고양이 화장실도 열심히 치워주고, 고양이 이도 닦아주고, 고양이털도 빗겨주고, 목욕도 자주 시켜준다.(고양이는 우울증 주인 때문에 귀찮아 죽음) 식물에 물을 자주 줬더니 허브가 3개나 죽어버렸다.
요 며칠 집에 볕이 들지 않았다. 갑자기 추워져서인지 하늘도 어두웠다. 햇빛을 못 본 식물들이 시들해졌다. 레몬부쉬의 잎이 부쩍 시들해서 화분을 1시간 물에 담궈주었다. 아침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잎이 고개를 들어 싱싱해졌다. 좋은 징조다. 1월도 중순이다. 빨리 이 시기가 지나갔으면 좋겠다. 브런치 첫 글은 밝은 걸 쓰고 싶었는데, 왠놈의 새벽 중2병 일기장 같은 넋두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