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직장 생활을 하다 힘이 들때, 엄마에게 상담을 해본 적이 없다. 엄마의 경험이나 연륜을 무시해서도 아니고, 내가 엄마와 멀리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그냥, 엄마가 이걸 해결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민 상담을 안 해봤을 뿐 아니라, 그냥 부모님께 회사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서울에 ‘빽’은 커녕 친인척 한명 없는 엄마가 뭘 해줄 수 있겠는가. ‘문제’ 해결에 엄마가 해줄 게 별로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고, 항상 나는 내가 답을 내 안에 가지고 있으면서 끙끙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정말 이상하게도, 엄마가 내가 지금 힘들다는 걸 알 리가 없는데...엄마는 절호의 순간에 절호의 말을 하곤 한다.
이전 직장은 큰 맘 먹고 이직한 회사였다. 그동안 해오던 일도 아니었고 연봉도 기존보다 훨씬 높았다. 나는 내내 기자 일을 하고 있었는데 5년 넘게 일을 해도 생활이 달라지지 않았다. 내내 박봉이었고 내내 쳇바퀴만 돌았다. 그래도 이 일이 좋았고, 그놈의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적은 연봉을 견디며 살았다. 그러다 우연히 쇼핑몰로 이직할 기회가 왔다. 그 회사 역시 직함은 ‘에디터’였다. 고민을 많이 했지만 지금 옮기지 않으면 계속 ‘언제 매체가 폐간할지’ 불안해하며, 적은 연봉으로 살아야 한단 생각이 들었다. 5년차쯤 됐으니 이제 직장이 아닌 직업을 바꿔도 괜찮을거란 생각이 들었고 다른 일을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여겼다.
잘못된 결정이었다. 그 회사를 다니는 내내 마음이 힘들었다. 하는 일도 나와 맞지 않았을뿐더러 무엇보다 회사의 사람들이 힘들었다. 팀원들과 마음이 맞지 않았고 내가 '이 회사 이 일‘과 맞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으며 거의 세 달을 마음 고생을 했다. 그래도 이미 저지른 선택이니 꾸역꾸역 일어나 출근을 하고 밤마다 울면서 술을 마시다 잠을 잤다. 연애를 하는 것도, 돈을 모으는 것도, 다른 취미 생활이나 인생의 즐거움을 모르는 나는 ’일‘이 조금만 틀어져도 크게 타격을 입고 비틀거리는 인간이었다. 나에게는 ‘일’이 너무 중요했다. 그만두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다. 사실 갈 데도 없었다. 나는 한번도 다음 스텝을 정하지 않고 회사를 그만둬본 적도 없고 쉬어본 적도 없었다.
그때도 정시에 퇴근을 하고(일은 재미도 없고 보람도 없었고 야근도 없었다), 터덜터덜 정류장을 향해 걷고 있었다.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는 내가 이직을 한 후 “옮긴 회사 어때?”라고 매일 같이 물었고 정말 별 할 얘기가 없었던 내가 “그냥 그래”라고 답하자 무언가 낌새 정도는 차리고 있는 듯 했다. 그날 저녁에도 엄마는 어김없이 물었다.
“뭐해?” “퇴근 중이야” “회사는 어때?” “그냥 그렇다니까 뭘 맨날 물어봐.”
심드렁한 내 대답에 엄마가 말했다.
“어쩌냐...너는 일이 재미있어야 하는 앤데. 그게 중요한 앤데...”
어쩌냐...어쩌냐...전라북도에서 태어나 그 지역을 떠나본 적이 없는 엄마는 말 끝을 길게 늘이는 사투리를 썼다. 엄마는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회사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하지 않아도, 엄마는 다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엄마, 회사가 나랑 안 맞아, 엄마 이 일 재미가 없어, 엄마 회사 사람들이랑 친해지기 힘들어, 엄마 나 회사 그만두고 싶어. 엄마한테 한번도 그런말은 한적이 없었지만 마치 엄마는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어쩌냐......
어쩌냐고. 힘들어서 어쩌냐고...그때 엄마의 걱정스런 목소리, 다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하는 그 목소리를 듣고 길에서 엉엉 울었다. 전화를 끊고 걸으며 엉엉 울었다. 멈춰 서서 울고 싶진 않았다. 아직 집보다 회사가 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한참 정류장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주저 앉아 울었다...어쩌냐...우리 딸 힘들어서 어쩌냐...응, 엄마 나 어쩌지? 나 좆된 것 같아...
엄마는 내 집세와 용돈, 생활비를 책임져줄 형편이 안 된다. 그러니 ‘야, 그렇게 힘들면 그만둬 엄마가 집세 내줄게’라고 해줄 수 없었다. 그러니 다 알면서도 그냥 ‘어쩌냐...우리딸 힘들어서 어쩌냐...’라고만 한 것이다. 내내 그럼에도 참으면서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는 걸까, 적성에도 안 맞고 회사 사람과도 잘 맞지 않고 9시부터 6시까지 힘들게 시계만 보는 이 직장을 다녀야 하나 고민하다가 나는 엄마의 “어쩌냐...너는 회사가 재미있어야 하는 앤데...”라는 말에 결정을 내리게 됐다. 이제 좋아하는 것만 좇을 나이도 아니고, 이제 좀 참을 줄도 알아야 하고 이제 좀 돈도 모아야 하고, 이제 좀 철도 들어야 하지만...이제 좀...이제 좀...근데 이제 못 참겠다. 싶었다. 그러고 나는 일주일 정도 지나서 회사를 그만둔 것 같다. 그 회사에서도 내가 적응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서로가 안 맞는다는 것을 안 우리는 헤어졌다.
지금도 나는 가끔 꿈을 꾼다. "어쩌냐...너는 재미있는 일을 해야 하는데...너는 그런 거 못 참는 앤데..."
그때 엄마가 했던 정확한 '문장'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거기에 한 두문장씩 더한 엄마 목소리가 꿈에 나온다. 당연히 엄마는 내가 회사에서 무슨 일을 당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출근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른다. 나는 서울에, 엄마는 전주에 있고 나는 내 이야기를 엄마에게 안 하니까. 그렇지만 그때 무언가 낌새를 느끼고 '너는 그런 앤데...'라고 말했던 엄마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어차피 엄마가 내가 생각치 않는 이야기로 나를 판단했으면 나는 "엄만 어차피 나를 몰라"라고 화를 버럭냈을 것이다. 그때 나는 그냥 그 소리가 듣고 싶었던 거다. "어쩌냐, 너는 재미있는 일 해야 신나는 앤데, 어쩌냐, 너는 니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인데..." 듣고 싶었던 말을 엄마가 해줬고 나는 결국 백수가 되었다. 엄마는 내가 그 말에 힘을 얻어서 야심차게 직장을 그만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힘들 때 '내 딸은 내가 잘 아는데...'라며 말을 늘렸던 엄마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어쩌냐, 너는 니가 좋아하는 일 해야 하는 앤데...'
응, 엄마 난 그런 애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