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이 사랑받는 글인가. 사람들은 위로를 받고 싶어하고, 몰랐던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싶으며, 분실한 귀걸이 한쪽마냥 작은 반짝임을 글에서 발견하고 싶다. 어쩌면 어여쁜 것, 따뜻한 것, 그러므로 진정 위로가 되는 것이 좋은 글이고 사람들이 원하는 글일 것이다.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인 것, 아픈 상황에서도 일종의 희망을 발견해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살만하고 정녕 아름답다 위무하는 글을 사람들은 좋아한다. 그런데, 사실 나는 그런 글은 잘 쓰지 못한다.(아마 나는 브런치에서도 앞으로도 쭉 인기는 없을 것이다) 부정적인 사람이라서이다.
'글이 너무 부정적인 것 아닌가요'라는 독자의 항의메일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일본 드라마에 대한 리뷰 글이었는데, <꿈의 캘리포니아>라는 드라마였다. 킨키키즈의 도모토 쯔요시와 시바사키 코우, 쿠니나카 료코 등이 출연하는 2002년 작이다. 그 드라마의 전체적인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1회 마지막 회 대사만이 아직도 또렷이 마음에 남아 있다. "계속 살아봤자 좋은 일 따윈 없어" 친구들 앞에서 자살(옥상에서 뛰어내려)하는 한 남자의 마지막 말이었다. 아, 너무 비관적인 내용이다. 오랜만에 고교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들은 '오오 다같이 학교로 쳐들어가보자!'라며 한밤중에 몰래 고교에 잠입하고 그 옥상에서 남자는 떨어져버린다. 고등학생 때 모두의 선망을 받는 인기도 많고 공부도 잘하는 소년이었던 남자는 그저 그런 어른이 되었고, 자신의 '리즈시절'을 보낸 학교에서 죽어버린다. 너무 일찍 인생의 화양연화를 보내버리고, 그 이후의 시기가 내내 재미없고 지루하고 내리막길을 걷는 것이 힘들었던 것이다. 결국 주인공들은 힘을 합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보겠다'는 나름의 희망찬 결론으로 드라마의 마지막을 장식하지만 나는 첫 회의 저 대사만을 기억한다. "앞으로 살아봤자 좋은 일 따윈 없어"
물론 그렇다고 내가 죽음을 시도한다거나 우울증에 걸렸다거나 옆에만 와도 어둠의 아우라를 내뿜는 인간은 아니다. 죽음을 택한 남자처럼 인생의 리즈 시절을 일찌감치 만나서 화려한 청소년 시절을 보낸 것도 아니다. 다만 나는 인생이란 게 어쩌면 내내 시간을 견뎌내고, 계속 되는 고행을 참아가며 마지막까지 버티어내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다 이런 비관적인 인간이 되었는 지 모르겠다. 남들과 마찬가지로 내게도 반반의 좋은 일, 나쁜 일이 번갈아 가며 생기고 때론 신이 나서 꺅꺅거리며 웃기도 하고 여행도 적당히 하며,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어요"(Feat. 지붕킥 신세경) 라며 좋은 나날을 보낼 때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에게 인생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것이고, 젊음-늙음을 막론하고 우리는 시간을 견뎌내며 죽음을 향해 걸어갈 뿐이라는 마인드를 가지게 되었다.
좋은 시간은 빨리 끝나서 아쉽고, 나쁜 시간은 그냥 견뎌내느라 힘들다. 열심히 한다고 모두 보상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예기치 못했던 사건사고가 하루에도 몇 번씩 닥쳐온다. 밖에만 나가면 돈 쓸 일인데 주머니는 항상 가볍고 카드값 내는 날은 꼬박꼬박 잘도 돌아온다. 부모님은 언제 돈 많이 벌고 언제 결혼도 하고 남들 사는 것처럼 사냐고 잔소리고, 직장이든 친구들이든 내가 하는 것만큼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너는 내 맘을 모르고, 나는 니 맘을 모른다. 그게 타인의 관계이고, 내가 살고 있는 평범한 인생이다. 평범하기만도 어려운 건 물론이고...내가 <꿈의 캘리포니아>에서 죽어버린 남자랑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앞으로 좋은 일 같은 건 없을 거'라고 비관하면서도 '그래도 좋은 일이 생기면 좋겠다'고 기대한다는 것이다. 좋은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고, 그에게 예쁜 말을 듣고 싶고, 누가 나를 칭찬해주면 행복하고 싫어하는 사
람보다 내가 더 잘됐으면 좋겠다. 이런 저런 평범한 질투와 욕망이 나를 지탱하고, 실망케 하고 살게 한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느끼지만 역시 나는 예쁜 글은 못 쓰는구나. 깨닫고 나니 다시 쫌 의기소침하게 그르네.